<재벌집 막내아들>과 <그리스 로마 신화> 평행이론? ‘막내아들’ 송중기가 죽어야만 했던 이유

‘재벌집 막내아들’.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이하 <재벌집>)이 끝났다. 주 3회 방영으로 임팩트는 짧고 굵었다. 압도적 존재감을 자랑한 진양철 회장 사망 후 시청률이 반 토막 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지만 최종화 시청률이 전국 기준 26.948%를 기록하며 우려를 종식. <재벌집>은 역대 비지상파/JTBC 드라마 시청률 2위에 올랐다.


이재용 립밤 품절, 재벌 소재는 예견된 성공?

우리는 재벌을 좀 안다. 정확히는 재벌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다. <파리의 연인>서 <자이언트>를 지나 <사랑의 불시착>까지. 그간 드라마에 등장했던 수많은 재벌 주인공들을 떠올려보자. 휘두르면 돈이 쏟아지는 금검을 든 재벌은 내 편일 때는 든든하고 악역일 때는 고약하다. 그런 재벌과 우연히 사랑에라도 빠지면 헤어나올 구멍이 없으니, 더없이 좋은 드라마 소재다.

순양기업 창업주 진 회장 일가. ⓒJTBC

그런데 <재벌집>의 재벌은 좀 다르다. <재벌집> 재벌은 그냥 재벌이다. ‘순양’이라는 대기업의 주인으로서, 혹은 일부분으로써의 재벌. ‘로맨틱한 재벌’이나 ‘사악한 재벌’과 같은 형용사는 그들 앞에 용인되지 않는다. 재벌집의 아들과 딸들. 대체 그 삶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재용의 유리아쥬 립밤, 이재용의 아크테릭스 패딩에 이어 이재용의 빈폴 조끼가 품절되는 대한민국. 우리는 궁금하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재벌집> 등장에 환호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진도준→ 윤현우’ 당연한 결말이나 뒷심과 디테일 부족해

연일 화제를 모은 <재벌집>이 지난 25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 가운데 “용두사미”라는 여론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부정하기 어렵다. 진도준 살해 현장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도 줄곧 “내 기억 속에는 그가 없다”는 윤현우라던가, 그러한 기억상실(?)에도 불구하고 그가 화분 속에 20년 동안이나 고이 보관해둔 살해 증거물 USB의 병치는 참담한 설정 오류다.

두 번은 과해. ⓒJTBC

자동차 사고는 또 어떤가. 한 번은 사고지만 두 번은 습관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을 퇴장시키는 도구로 덤프트럭은 다소 게으른 선택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결점과 오류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확실하다. 흙수저 윤현우가 재벌 3세 진도준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오는 결말은, 시청자의 기대와 그간 쌓아온 설정을 허물지언정 작품의 주제 의식을 배반하지는 않는다.

<재벌집>은 시작부터 꾸준히 재벌의 경영세습을 비판해왔다. 이는 직원은 머슴이고 돈이 곧 정도라는 진양철 회장과 반대로 늘 서민들의 삶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진도준 식 ‘정도경영’, 또 “재벌 세습은 부모가 금메달리스트라고 올림픽 출전시키는 격”이라는 오세현의 대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진양철의 막내손자, 재벌가의 일원인 진도준이 순양기업의 총수가 되는 결말은 진도준의 능력상으론 마땅할지 모르나 작품의 윤리상 용납될 수 없다.

디테일이 아쉬워. ⓒJTBC

혈연이라는 이유로 기업체를 대물림하는 한국 특유의 ‘가족 같은 경영’은 한참 옛날의 왕조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기업 오너 일가의 경영권 대물림은 리스크도 크고 문제도 많으며 무엇보다 세계 시장에서 부적격하다고 받아들여진다.(“코리아 디스카운트!”) 이를 지적하는 <재벌집>은 꽤나 입바르다. 재밌기까지 하니 금상첨화다. 하지만 뒷심이 약해 결승선을 코앞에 둔 채 고꾸라지고 말았다. 콘텐츠는 어디까지나 콘텐츠. 제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도 개연성을 헤집고 설정 오류로 점철된 이야기는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비판을 비껴갈 수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재벌집> 공통점은?

그래서, 재벌은 무엇인가. 그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고 대를 잇는가. 그 질문에 대한 <재벌가>의 대답은 15회 말미에 나온다. 진양철 회장의 장손 진성준은 아내 모현민의 갤러리에서 한 점의 그림을 소개받는데. 바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다.

프란시스코 고야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JTBC

끔찍하지 않은가. 아들의 머리를 뜯어먹는 아버지라니. 놀랍게도 이 그림에서 무시무시한 비주얼로 아들을 잡아먹고 있는 거인은 괴물이 아니라 신이다. ‘너의 아들 중 한 명이 너를 몰아낼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신 사투르누스(크로노스)가 이를 막기 위해 일찌감치 아들을 잡아먹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뱃속에서 빠져나와 부활한 자식들, 그러니까 올림푸스의 12신들은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예언대로 그 자리를 찬탈한다. 그리고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신들의 왕이 된 제우스, 그 역시 평생을 자식의 반란에 쫓겨날까 전전긍긍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신화의 별로 아름답지 않은 조각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왕권 수호를 위해 ‘아들을 잡아먹는 아버지’ 신화는 <사도>의 뒤주를 거쳐 <재벌집>의 정심재 문을 두드린다. 문은 쉽게 열린다. 아들 진성준과 순양그룹 회장직을 두고 경쟁하다 끝내 그를 사지로 몰아넣는 아버지 진영기. 그런 아버지를 무너뜨리려 역습을 가하는 진성준. ‘이기는 편 내 편’ 외치며 강 건너 불 구경하는 형제들까지. 가족같은 기업을 이어받기 위해 가족을 잡아먹는 일도 불사하는 것. 그것이 <재벌집>이 그리는 재벌의 본질이자 신들의 가정사, ‘높으신 분들’의 생리다.


재벌 세습 포기 좋으나 “참회” 진정성 없어

기회가 아닌 참회. ⓒJTBC

‘막내’ 제우스처럼 진도준이 진양철의 뒤를 이어 순양의 후계자가 됐더라면 그간 진도준과 함께 달려온 우리의 속은 일단 통쾌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습의 굴레는 그대로 남아 있다. 홀대받는 자식의 아들이란 이유로 승계권 구도에서 밀려난 진도준, “돈으로 순양을 사겠다”고는 하나 그 역시 막내 손주로서 입은 특권에서 비롯된 것이니.(분당 땅 5만 평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온 것인지 떠올려보자)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대동소이하다. 진영기나 진성준이 회장이 되면 장자 승계고 진도준이 회장이 되면 그냥 승계인 것이다.

재벌의 세습경영을 비판하는 이 드라마의 주제는 지지받아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 어느 정도의 설정 구멍은 ‘흐린 눈’으로 넘어가줄 수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걸리는 것이 있다. 바로 윤현우가 말한 “참회”의 진정성이다. 살해된 진도준이 대표로 있던 미라클 인베스트먼트에 들어가 고급 외제차를 몰며 광고의 한 장면처럼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윤현우의 빛나는 옆얼굴에, 참회는 그림자도 없다. 진도준으로 산 17년이 “기회도 기적도 아닌 참회”였다면 그는 진도준의 죽음에 대해 확실한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나. 결국 <재벌집>의 이 엉거주춤한 결말은 속죄와 승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무리수다. 그 결과 주제 의식을 옹호하는 이들에게는 미지근한 지지를, 진도준의 성공신화를 응원하던 이들에게는 날선 비판을 받게 된 형국이다.



허프포스트코리아/씨네플레이 유해강 기자

Must Read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