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미싱 영 우먼>, 그 많던 전도유망한 여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 본문에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화는 영화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에게 복수란 어쩌면 가장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일지 모른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가족을 해친 원수에게 앙갚음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생을 바치고, 끝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적 단죄에 성공하고 마는 식의 이야기는 보장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런 복수담은 대부분 소시민들의 현실과 유리돼 있다. 상식이나 도덕, 법을 소소하게 어기는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모종의 암묵적 합의다. 부패한 경찰이나 검찰, 무법 지대의 조직 같은 설정들을 현실과 공유하더라도 일반 관객들에겐 ‘모르는’, ‘몰랐던’ 현실이다. 그래서 영화는 영화로, 관객은 관객으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복수를 다룬 작품에서 그 배경과 보는 이의 현실이 직접적으로 충돌할 때 이 합의는 깨지고, 현실은 그 틈으로 순식간에 밀려 든다. 특히 이미 사회에서 각별히 보호하기로 약속된 약자 집단이 복수극의 설계자로 변할 때 그렇다. 너무나도 자주, 그리고 유사한 내용으로 전해지는 범죄 뉴스는 이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비슷한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만큼 평범한 인물임을 주지시키기도 한다. ‘복수’는 농담일 수 있지만 ‘성폭행 피해’는 농담이 될 수 없다.

현실과 농담의 선을 오가는 ‘성폭행 피해 복수극’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개중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이 특별한 건 주인공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이라는 점이다. 대개 이런 복수극은 주인공인 피해자가 초월적으로 강해져서 가해자를 때려 잡거나,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는 구조를 바꿀 힘을 얻지 못한 채 끝내 현실 앞에 무릎을 꿇는 식으로 펼쳐지기 마련이다. 허나 ‘프라미싱 영 우먼’에서 성폭행 피해자 니나의 실물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극을 이끄는 건 그의 오랜 친구 캐시(캐리 멀리건)다.

‘프라미싱 영 우먼’이 이러한 설정의 복수극임을 곧바로 눈치채기는 어렵다. 시시껍절한 남자들 틈에 홀로 만취한 캐시를 비추는 첫 장면만 봤을 땐 피해자가 그인 줄 착각한다 해도 별 수 없다. 사실은 캐시가 매 주 클럽에서 만취한 척을 하고, 그에게 접근하는 남자의 집에 가서 야릇한 분위기가 연출되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냉정하게 얼굴을 바꾼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땐 캐시가 연쇄살인범이 된 피해자라고 예상할 법도 하다.

영화는 캐시가 접하는 인물들을 통해 그와 니나의 과거를 하나 씩 풀어 놓는다. 그의 부모를 통해 본디 활발하던 캐시가 현재 변변한 직업 없이 본가에 얹혀 생활하고, 애인도 친구도 없다는 걸 보여 준다. 캐시가 늘 아련하게 바라보는 방 안 곳곳의 니나가 지금은 어디에도 없다는 건 캐시를 변하게 한 사건의 피해자가 니나이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뜻이다.

또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에 우연히 찾아온 라이언(보 번햄)은 캐시가 촉망받는 의대생이었지만 돌연 학교를 그만 두고 잠적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치다. 라이언과의 대화에서 알 먼로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굳어지는 캐시의 표정은 니나 성폭행 사건의 주범이 알 먼로라는 방증이다. 이렇게 퍼즐처럼 흩어진 과거들은 영화가 중반으로 가기까지 꾸준히 맞춰지며 캐시의 기행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 당위성이 온전하지 않은 건 캐시가 사건의 주변인이기 때문이다. 낮에, 맨 정신엔 여자와 잘 돼 본 일이 없을 것 같은 남자들을 골탕 먹이고 니나 사건 가담자들을 찾아다니며 복수하던 캐시는 라이언을 통해 다시 사랑을 믿게 된다. 정확히는 자신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얻으려는 듯한 라이언의 행동을 믿게 된 캐시는 다시 이전의 활력을 찾아 간다. 그러던 중 캐시는 니나의 어머니에게 이제 과거는 잊고 새 삶을 찾으라는 말을 듣는다. 피해자의 어머니까지 흘려 보낸 과거에 친구가 집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잊으려던 캐시는 니나 사건을 방관하던 여자 동창생이 꺼낸 또 하나의 진실 탓에 라이언에 대한 믿음을 거두고 만다. 캐시의 깨진 믿음은 모두를 향한 좀 더 확실하고 분명한 복수를 꾀하게 했다. 이때 사건의 주변인이라는 캐시의 입장은 구조가 낳은 피해에 대한 연대자로 승격된다. 단지 가장 친한 친구 니나를 사랑해서가 아닌, 가해자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구조에 대한 복수를 캐시는 감행한 것이다.

영화의 대칭적 미장센과 늘 그 정 가운데에 위치한 캐시의 모습은 구조에 갇힌 그와 니나에 대한 은유다. 전도 유망한 젊은 남성을 보호할 목적으로 전도 유망한 젊은 여성을 지우기에 거리낌이 없던 바로 그 구조 말이다. ‘유죄를 입증하기 전까지 무죄’라는 핑계를 내세운 구조는 본 목적처럼 억울한 누명을 막는 대신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지 못한 니나와 사적으로라도 친구의 복수를 하려는 캐시를 조롱하는 괴물이다.

구조적 폭력의 수혜자이자 가담자인 클럽의 남자들과 알 먼로 패거리는 캐시의 복수 앞에 오열하고, 애걸하다가 마지막에는 “너는 깨끗하냐”며 욕을 한다. 애석하게도 캐시의 복수는 “네가 옳다. 됐지?”라는 답변을 듣는 선에서 해결된다. 그가 전도 유망한 미래를 포기하고 파스텔 톤의 20대 초반에 머무르기를 택하며 벌인 복수극은 그들을 잠시 괴롭게 했을지언정 반성을 이끌지는 못했다. 가해자들에게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죗값을 치르는 건 구조의 맨 위층에서 지하로 떨어지는 일인 탓이다.

영화에서 구조란 괴물의 자녀는 차갑게 응시하는 것 만으로 잠깐 정신을 차리지만, 그렇다고 괴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캐시의 무력한 순교 위로 만화 ‘마이 브로큰 마리코’의 시이노와 영화 ‘한공주’의 공주가 겹쳐 보인다. 끔찍한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등진 친구 마리코의 죽음을 마주한 세이노는 가해자인 아버지를 찾아가 유골을 훔쳐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성폭력 피해자인 여자 고등학생 한공주는 한강 다리까지 밀려난 끝에 자신만의 생존 여행에 나선다. 아무도 돕지 않아 홀로 싸워낸 그 처연한 무력과 가련한 탈주가 아프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제73회 미국 작가 조합상과 제26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탔다. ‘인생 연기’를 보여 줬다는 평을 듣는 캐리 멀리건도 크리틱스 초이스와 제46회 LA 비평가 협회상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선 2021년 개봉했으며, 2022년 5월 현재 넷플릭스와 유튜브 영화에서 감상할 수 있다.


칼럼니스트 라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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