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뉴 할리우드 전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하이웨이맨>

텔레비전의 부상과 파라마운트 판결(1948)로 인한 수직계열화의 붕괴, 전쟁 이후 일어났던 소비/레저 패턴의 급변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할리우드는 하향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황금기에 제작되었던 스타 중심의 고예산 프로젝트들이 거의 멸종하다시피하고, 신인배우와 감독이 이끄는 작은 영화들이 할리우드의 새로운 패턴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가 바로 ‘뉴 할리우드 시네마 (New Hollywood Cinema)’의 시작이다.

뉴 할리우드의 시초로 언급되는 1967년에 개봉한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원제, Bonnie and Clyde)는 당시 신인이었던 페이 더너웨이와 워렌 비티를 주연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립 프로덕션에 가까운 작은 예산의 영화였지만 누벨바그를 할리우드로 그대로 안착 시킨 듯한 새로운 작법 (점프 컷과 슬로우 모션 등), 파격적인 주제와 전례에 없던 섹스와 폭력의 재현 등 기존의 주류 할리우드 영화의 대부분의 요소를 전복하는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뉴 할리우드 신호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물론 파격적인 영화 한 편이 바로 시스템의 변화를 불러오거나, 경향을 형성하진 않는다. 주목할 것은 이 영화 자체의 ‘비관습성’ 보다 이 영화가 만들어 낸 작은 기적들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성공은 숨을 잃어가던 박스오피스를 회생시키고, 젊은 관객층을 형성시켰으며, 영화매체에 대한 희망을 잃었던 평론가들에게 불씨가 되었다. 당시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가 ‘냉혈한’으로 변해버린 1960년대의 미국사회를 정확히 정의하고 있다고 말하며, 1967년의 최고작으로 평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1967, 아서 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실제로 대공황 시기에 활동했던 은행털이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를 중심으로 한 영화다. 이들은 2여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은행을 털고, 경찰을 살해했지만 수려한 외모와 개인이 아닌 거대 은행을 범죄대상으로 삼는다는 이유로 대중들에게는 ‘미국판 로빈 후드’로 인식되며 인기를 누렸다. 커플은 1934년 5월 23일 잠복해 있던 6명의 경찰들에 의해 사살되었다.

로맨스 장르로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여러 장르가 뒤섞여 있지만 궁극적으로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로맨스 영화다. 영화는 이들의 범죄 행각보다 이들이 어떻게, 얼마나 서로를 사랑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 커플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시골생활이 지겹기만 한 보니의 눈 앞에서 멋진 수트를 입은 클라이드가 보니 엄마의 차를 훔치고 있다. 보니는 이 남자를 말리는 것이 아닌, 그 차를 타고 같이 갈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이 전설적인 커플의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의 상당부분은 범죄의 묘사보다는 이 둘이 함께 피크닉을 가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커플씬에 할애되어 있다. 특히 보니의 경우, 클라이드가 성불구인 것에도 전혀 개념치 않고 한결같이 그를 사랑하는 순애보적 인물로 그려진다. 당시 보니 캐릭터는 패션 아이콘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페이 더너웨이가 영화 속에서 입었던 베레모와 펜슬 스커트가 영화의 개봉 이후 패션 매거진의 커버를 뒤덮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다소 로맨틱한 시선으로 메인 캐릭터를 재현하고, 이 연인의 사랑이 영화의 중추인 만큼, 이들이 잔인하게 사살되는 장면을 디테일하게 그린 엔딩은 모두에게 충격으로 남았다. 실제 경찰 기록에 의존해 만든 이 엔딩에서 보니와 클라이드는 6명의 경찰이 경고 없이 발사한 총격으로 적어도 120발의 총상을 입고 즉사한다. 영화가 제작된 196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전례에 없던 이 잔인한 총격씬은 범죄자들에 대한 단죄라기 보다 구세대의 신세대를 향한 처형으로 비춰진다. 아마도 아서 펜은 대공황 시대에 노동계급을 구제하지 못한 미국 정부와 공권력, 그리고 1960년대 베트남 전쟁 시기를 관통하는 닉슨 정부와 공권력을 어쩌면 같은 사회악, 즉 젊은 세대의 천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주의와 독기가 혼재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뉴 할리우드의 신호탄을 알리고 50여년이 흘러 보니와 클라이드를 소재로 한 새로운 영화가 탄생했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하이웨이맨> (2021)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보니와 클라이드 사건을 커플이 아닌, 이들을 소탕했던 두 텍사스 레인저의 시점으로 재현한다. 전설적인 총잡이이자, 텍사스 레인저였지만 지금은 은퇴해서 아내와 조용한 삶을 살고 있는 ‘해머’ (캐빈 코스트너)에게 악명 높은 보니와 클라이드를 소탕해 달라는 주지사로부터의 ‘비공식적’ 요청이 들어온다.

버디무비로 재탄생한 <하이웨이맨>

해머는 자신의 파트너였던 ‘골트’ (우디 해럴슨)를 찾아간다. 알코올 중독이 되어 딸의 집에 얹혀 살고 있던 골트는 이전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이 기회가 반갑기만 하다. 해머와 골트는 그들을 견제하는 주지사 직속 수사기관과 FBI의 텃세 그리고 보니와 클라이드를 숭배하는 대중의 비협조를 극복하고 결국 커플의 친구 아버지, 아이비와 접촉하는데 성공한다. 아들을 살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보니와 클라이드의 체포에 협조하기로 한 아이비는 자신의 집으로 통하는 숲길로 그들을 유인한다. 숲에서 매복하고 있던 해머, 골트와 동료 경찰들은 커플이 막다른 길에 이르자 이들을 저격해 사살한다.

<하이웨이맨> (2019, 존 리 행콕)

기획으로만 보면, <하이웨이맨>은 훌륭한 프로젝트다. 사건으로도, 영화로도 전설이 되었던 보니와 클라이드를 이들이 아닌, 이들을 대적했던 경찰의 시선으로 본다는 컨셉은 흥미롭고, 영화로서의 잠재가 풍부하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시초는 현재가 아니라 15년 전인, 2005년이다.

이 영화는 원래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를 주연으로, 이들이 주연했던 <내일을 향해 쏴라> (1969)의 ‘경찰 버전’ 같은 프로젝트로 구성이 되었으나 실현되지 못했고, 2017년 넷플릭스가 기획을 가져오면서 현재의 캐스팅으로 바뀌었다. 두명의 경찰이 중심이 되는 버디무비, 혹은 캅 무비로서의 <하이웨이맨>의 캐스팅은 탁월하다. 우디 해럴슨과 케빈 코스트너는 이 영화에서 마치 듀얼 (duel)을 벌이듯 연기의 정점을 교환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의 존재가 영화의 에너지를 수혈하지 못한다. 가령 극중 해머와 골트는 마치 하나의 캐릭터를 두개로 갈라놓은 것처럼 흡사하다. 약간의 취향을 제외하고 이들의 성격, 행동 패턴, 사고까지 비슷하게 설정이 되어있어 일반적으로 버디무비에서 보는 ‘티격태격’ 재미는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다.

(골트역의 우디 해럴슨과 해머역의 케빈 코스트너)

또한 영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보니와 클라이드는 영화 속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롱 샷에서 희미하게 비춰지거나 부분 클로즈 업, 예를 들어 이들의 발이나, 어깨 등의 파편적 이미지로만 등장을 하는데, 얼굴을 볼 수 있는 장면은 엔딩 씬의 사살장면 딱 한 군데 뿐이다. 화제가 되었던 이들의 패션이나 외모도, 미디어가 앞다투어 다루었던 그들의 기사거리도 이 영화에서는 부재하거나 마이너한 디테일로 전락한다. 따라서 이 영화의 메인 스펙터클은 두 명의 은퇴한 노장이 젊은 냉혈한 두 명을 잡아들이는 다소 예측 가능한, 지난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시장으로 열연했던 캐시 베이츠)

안타깝게도 앞서 언급한 이유로 이들의 캐릭터가 2시간 11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구제할 정도의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영화사의 또 다른 전설까지는 아닐지라도 희대의 사건을 새로운 시선으로 목격할 수 있는 영화적 ‘랜드마크’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이 작품에서의 우디 해럴슨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시나리오 속 대사와 설정으로는 차별화 될 수 없었던 캐릭터를 오롯이 배우의 역량으로 가장 빛나는 인물로 빚어내기 때문이다. 성공할 뻔 했던 캐릭터 스터디, <하이웨이맨>의 동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디 해럴슨이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효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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