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당신은 최수연인가요, 권민우인가요?

21세기의 소비 시장에서 ‘2030’ 만큼 막강한 키워드는 없을 것이다. 모든 유행을 수집하고 선도하며, 다른 세대에 비해 지갑을 잘 열고, 고객으로 만들면 미래의 구매력까지 확보할 수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2030’은 Z세대라 불린다. 이 호명이 관성적 세대론에 입각해 나이 구분만 해 놓은 거친 일반화라는 점은 잠시 차치하자. 일각에서 Z세대를 잡겠다고 내놓는 콘텐츠는 짧고 자극적이며 특히 탈정치화한 모습이지만, 이를 옳은 분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긴 힘들다. Z세대 중 가장 목소리가 큰 그룹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건 ‘공정’과 ‘정의’다.

다만 Z세대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부 그룹이 공유하는 공정과 정의의 함의는 이전 세대의 것과 다르다. 이들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은 ‘나’와 ‘나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어야 한다. 공정과 정의가 이념 영역이 아닌 나의 생존 영역에서 작동하길 원한다. 그래서 이들은 상대적 평등과 기계적 평등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와 비슷해 보이는 아이 손에 들린 사과가 내 손에 없는 상황에 일단 분노한다. Z세대가 ‘탈정치화’했다는 말은 잘못됐지만, ‘탈이념화’했다는 지적은 맞는 이유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다. 등장인물들은 그를 가운데 두고 동심원을 그린다. 제일 가까이엔 미혼부인 아버지 우광호(전배수)가 있고, 조금 더 밖엔 오랜 절친 동그라미(주현영)가, 그 바깥의 회사엔 이준호(강태오), 정명석(강기영), 최수연(하윤경), 권민우(주종혁) 등의 동료들이 있다.

장애인, 특히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을 다룬 작품이 주인공과 비현실적 조력자의 성공 서사를 통해 감동을 준다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좀 다르다. 우영우 주변의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를 비추는 데도 무게감을 둔다. 이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가족과 친구, 혹은 그들을 단순히 불편해 하는 비장애인으로 이분화된 캐릭터 작법이 아니다. 장애인이 사회에서 독립적 존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날 법한 캐릭터들을 섬세하게 배치한다. 우영우의 말을 빌리자면,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좌절감을 주는 캐릭터들이다.

대개 ‘밥벌이’를 하게 된 순간부터 자타공인 어른으로 대접받는 이 사회에서 주목해야 할 건 우영우가 법무법인 한바다에서 만난 정명석, 그리고 최수연과 권민우다. 한바다는 우영우가 로스쿨 졸업 후 6개월 만에 겨우 얻은 직장이다. 졸업 전부터 취직이 결정된 동기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날 때 로스쿨 수석졸업자만이 무직으로 남아 있었다. 반 년 동안 이곳저곳 지원서를 내 봤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취직마저 쉽지 않게 만들었다.

그런데 한바다 대표 변호사 한선영(백지원)이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던 우영우를 로펌으로 불러 들인다. 우영우가 한선영의 눈에 띈 건 법대 선배 우광호의 딸이었기 때문임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한선영에게는 우영우를 채용할 분명한 당위가 있다.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에 변호사 시험 1500점 이상. 어떤 로펌이건 탐낼 스펙이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영우의 상사인 정명석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신입이 변호사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의심한다. 하지만 함께 맡은 첫 사건부터 14년차인 자신보다 신선하고 합리적인 법리 해석을 내놓은 우영우를 곧바로 인정한다. 편견 탓에 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변호에서 배제된 우영우를 위해 자신도 변호에서 손을 떼기도 한다. 변호사를 그만 두겠다며 잠적한 우영우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정명석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떠나 현실 세계에서 볼 수 없는 환상 속 동물 같은 존재다. 모두가 정명석이거나, 정명석이 되길 원한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보통 사람들이 동료로서 우영우를 만난다면 아예 무관심하기를 택할 것이다. 대다수는 학창 시절 괴롭힘을 당하는 우영우를 보고도 못 본 체하던 반 학생들일 것이고, 로스쿨 시절 늘 1등만 하던 우영우가 취직을 못 하고 있다는 사실에 시큰둥하던 동기들일 것이다. 그러나 우영우와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접점이 있는 경우엔 최수연이나 권민우가 된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실 최수연은 매우 평범하다. 따라잡기를 포기할 만큼 늘 1등만 하는 우영우가 약 오르고, 그럼에도 배려를 해 줘야 하는 것을 억울해 한다. 어쩌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탓에 소근육이 약한 우영우 대신 병뚜껑을 따면서도 몇 번은 분했을 지도 모른다. 회전문을 통과하지 못해 몇십 분을 그 앞에서 서성였을 우영우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

하지만 최수연은 우영우가 병뚜껑을 자력으로 따지 못하는 걸 확인한 후에 도움을 주고, 퇴근하지 못하는 우영우 옆을 찬 바람 불도록 지나가 놓고는 결국 돌아와 회전문을 잡아 준다. 대학 때는 우영우가 모르는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 범위를 알려 줬다. 그것들은 비장애인의 세상에선 너무 작고 평범한 배려지만 우영우에겐 봄날의 햇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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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우는 ‘평범하다’라는 말 보다는 ‘흔하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는 나와 나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공정과 정의가 가장 중요한, ‘Z세대 중 가장 목소리가 큰 그룹’의 한 사람이다. 권민우는 ‘비서울대’ 로스쿨 출신으로 국내 2위 로펌에 입사해 더 나은 스펙을 가진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자신을 연민한다. 스스로가 너무 가여워 평생을 차별과 싸웠지만 ‘어차피 1등’인 우영우는 강자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우영우가 ‘낙하산’이라는 심증 만으로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둔다. 우영우를 무조건 감싸는 것 같은 한수연과 정명석에게 반감을 갖고, 우영우의 존재를 억울하게 느끼는 것 같지만 결국 도움을 주는 최수연은 약자와 강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계몽의 대상으로 본다. 재밌는 건 권민우는 단 한 번도 우영우를 배려한 적이 없으며, 우영우 때문에 손해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권민우의 분노가 폭발한 건 우영우가 회사 차량의 남은 한 자리를 양보 받았을 때다. 우영우가 회사 차를 탔기 때문에 권민우와 최수연은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그 순간 권민우는 “우영우는 우리를 매번 이기는데 정작 우리는 우영우를 공격하면 안 돼”라고 울부짖는다. 권민우의 이 말을 명제로 본다면 ‘참’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 하고 싶었을, ‘우영우는 우리를 매번 이기기 때문에 우리는 우영우를 공격해도 돼’라는 말은 틀렸다. 우영우는 권민우를 공격한 적이 없고, 권민우는 우영우를 이기기 위한 업무적 노력이나 성취를 보인 적이 없다. 하지만 고작 회사 차 대신 택시를 타야 하는 일 때문에 그는 쌓아둔 분노를 터뜨린다. 약자를 괴롭힐 목적으로 공정과 정의를 방패 삼는 권민우의 화는 너무나도 흔해서 당장 내일이라도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사회 속의 인간은 매우 다면적이어서 어떤 곳에선 약자이지만 어떤 곳에선 그렇지 않다. 누구든,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나온 2022년, 우리는 이제 결정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보고 대할 것인지 말이다. 짐으로 대하면 짐이 되고, 발을 맞춰 걷는다면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독립적 개인이 된다. 권민우는 우영우의 부정취업을 고발하겠다며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 “그야말로 도둑맞은 기분”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우영우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


칼럼니스트 라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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