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물과 좀비물의 영리한 하이브리드, <데이 시프트>

* 기사에 <데이 시프트>의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호러 작가 H.P. 러브크래프트는 ‘공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인류가 느낀 가장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며,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존재로부터 온다고. 이 말대로 호러 장르는 공포를 유발하기 위해 다양한 미지의 존재들을 내세우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분명한 세계관을 가진 고전적 소재는 단연 흡혈귀, 뱀파이어다.

가장 유명한 뱀파이어는 영국 작가 브렘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백작이다. 그전부터 유럽을 떠돌던 뱀파이어물의 기본 설정들은 대부분 이 책에서 취합됐다. 흡혈귀는 인간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 넣어 피를 빨아먹어야 살 수 있으며, 흡혈귀에게 물려 죽은 인간은 흡혈귀가 된다. 또 신체적 능력이 인간보다 월등한 뱀파이어들은 늙지 않고 영생하는데, 십자가 등의 성물이나 마늘을 두려워한다. 심장에 나무 말뚝을 박거나 은으로 공격하면 뱀파이어를 죽일 수 있으며, 햇빛을 받으면 몸이 타들어간다.

영화 <트와일라잇>

원체 세계관이 뚜렷하다 보니 뱀파이어물은 오랜 시간 다양한 변주를 통해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를 위협하는 막강한 상대 좀비물이 나타났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로 호러계 인외존재의 대세는 좀비였다. 시체가 생전의 기억과 감각을 잊은 채로 인간을 공격한다는 기본 설정만 지키면 되는 좀비물은 그야말로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뱀파이어물의 자존심을 겨우 지키는 듯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 시리즈는 ‘뱀파이어가 나오는 로맨스물’로 평가된다.

영화 <데이 시프트>

넷플릭스 역시 어김없이 1년에 수 편의 좀비 영화와 드라마를 내놓는 중이다. 배우와 미세한 극 중 상황만 갈아 끼워도 어느 정도의 흥행은 보장되기 때문일 터다. 이런 좀비물의 오랜 득세 중에 나온 넷플릭스 뱀파이어물이 <데이 시프트>다.

버드(제이미 폭스)는 집집마다 수영장이 있는 따뜻한 도시 LA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외용 직업이고, 사실 버드는 뱀파이어를 죽이고 송곳니를 뽑아 파는 일을 한다. 자신이 뱀파이어 헌터라는 사실을 가족에게도 숨긴 탓에 아내와의 신뢰는 깨지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신세다. 그럼에도 가족 사랑은 매우 극진한 인물이지만, 아내는 안정된 삶을 위해 딸을 데리고 플로리다로 떠나겠다고 말한다. 정확히는 당장 딸의 학비와 치아 교정비가 없어 집을 팔겠다는 선언이다.

영화 <데이 시프트>

가족과의 재결합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그에게 일주일 안에 1만 달러를 벌어야 한다는 미션이 생겼다. 버드에게 돈 나올 구멍이라곤 오로지 뱀파이어의 송곳니뿐. 그런데 잦은 규칙 위반으로 뱀파이어 헌터 협회에서 쫓겨난 버드는 송곳니를 제값 받고 팔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버드는 오랜 동료 빅 존(스눕 독)의 도움으로 다시 협회원 자격을 얻는다. 다만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책임자 시거(에릭 랭)는 현장에서 버드가 협회 규칙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라며 사무직 세스(데이브 프랭코)를 동행시킨다. 말이 감시지, 규칙 위반을 빌미로 버드를 다시 쫓아낼 계획이다. 세스는 단 한 번의 현장 경험도 없고 몸 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시거의 승진 약속에 결국 버드를 따라나선다.

그런데 버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물 뱀파이어 오드리(칼라 소우자)의 타깃이 된 상황이었다. 과거 버드가 죽였던 뱀파이어 중 하나가 오드리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돈 벌기도 바쁜데 최강 뱀파이어 집단의 공격까지 받게 된 버드-세스 콤비는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오줌을 지리게 하는’ 극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스턴트 배우이자 <존 윅 – 리로드>의 무술감독을 맡았던 J.J. 페리 감독의 첫 연출작이어서인지 액션 장면에 매우 공을 많이 들인 모양새다. 인간 대 인간 액션과 달리 죽는 모습을 더 분명히 드러내야 하는 뱀파이어물인 만큼 철저히 계산된 합이 엿보이며, 동양 무술을 응용한 동작들이 눈에 띈다. 최근 좀비물에서도 무작정 고개와 팔을 꺾기 보다 무용을 연상케 하는 유연한 액션을 선호하는데, <데이 시프트>의 뱀파이어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데이 시프트>

분명 뱀파이어 영화지만 유행하는 좀비 액션의 비중이 꽤 높다. 하지만 이 영화는 뱀파이어물과 좀비물의 설정들을 기준 없이 대충 버무려 내놓은 작품들과 차별화를 꾀한다. 극 중 뱀파이어계에 네 개의 계급이 있으며, 갓 뱀파이어가 된 ‘주비’ 계급은 좀비처럼 움직이고 인간의 피를 소화하지 못해 동물을 잡아먹는다는 내부 세계관을 정확히 ‘주비’들과의 결투 이후 제시한다. 버드를 타깃으로 삼은 오드리는 가장 상급인 ‘우버’ 뱀파이어로, 여느 뱀파이어들과는 능력 자체가 다르다. 부동산 업계의 큰 손으로 인간 세상에 스며들어 있는 점 역시 이를 시사한다.

영화 <데이 시프트>

뱀파이어의 특징은 <드라큘라>의 고전적 설정을 크게 고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면서, 현대적 감성을 코믹한 방식으로 적절히 가미한 것도 <데이 시프트>의 미덕이다. 이를테면 햇빛에 약한 뱀파이어들이 전용 선크림의 재료로 거북이 등껍질을 쓰는 바람에 바다거북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거나, 뱀파이어가 된 세스가 피를 권하는 버드에게 자신은 페스코 베지테리언(생선, 동물의 알, 유제품은 섭취하는 채식주의자)이라며 거절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이 밖에도 <데이 시프트>의 세계관은 속편을 염두에 둔 것처럼 매우 촘촘히 짜여 있다. 뱀파이어의 송곳니가 예전 코끼리의 상아처럼 비싼 값에 거래된다는 대목은 뱀파이어에게 유일하게 재생되지 않는 신체 부위가 송곳니라는 설정과 상응한다. 우버 뱀파이어들의 노예로,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숨길 수 있는 사역마가 존재하며 처음에는 버드를 이용하던 사역마 히스(나타샤 류 보르디초)가 자유의지를 갖고 뱀파이어 헌터들의 편에 선다는 스토리도 독창적이다. <웜 바디스>나 <아이 엠 어 히어로> 등의 좀비물도 인간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좀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나, <데이 시프트>에서는 인간과의 공생 및 소통이 완벽히 가능한 뱀파이어가 나온다.

영화 <데이 시프트>

제작부터 연출, 각본까지 <존 윅> 시리즈에서 독립한 크루들이 만든 만큼 뱀파이어 버전 <존 윅> 같다는 느낌도 지울 수는 없다. 세계관과 관련한 설정이 적지는 않지만 뱀파이어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자들에겐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사제지간에서 동료로 거듭나는 버드와 세스의 콤비 플레이와 ‘블랙 카우보이’ 스눕 독의 엄청난 존재감은 속편을 기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충분하다.


칼럼니스트 라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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