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플로이테션의 로맨틱한 소환: 넷플릭스 오리지널 <내 이름은 돌로마이트>

자유와 이상이 지배하는 것 같은 할리우드지만 이면은 달랐다. 할리우드는 그 산업의 초기인 1920년대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반 세기 가까이 ‘제작코드 (production code)’라는 일련의 자진 검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표현의 자유를 통제했다. 미국 전역에 포진하고 있는 학부모 단체와 종교 단체가 문제가 될 만한 영화를 보이콧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막이었다. 가령 동성애나 이혼 등과 같이 청교도 윤리에 어긋나는 설정은 영화에 등장할 수 없었다. 성과 폭력 묘사에 있어서는 거의 부재에 가까운 최소한의 재현 (예를 들어 부부사이라도 침대 위에서는 보여질 수 없었다)만 허락했다. 검열에 어긋나는 재현이 있을 시에는 “씰 (seal)” 이라고 불리우던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고 도장이 없으면 미국의 메이저 극장에서의 상영이 불가했다.

MPPDA (The Motion Picture Producers and Distributors of America) 이 검열을 통과한 영화에게 부여했던 씰

이토록 철저히 ‘’표백’된 할리우드 영화였지만 60년대에 들어 영화산업이 텔레비전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하고 표현수위가 높은 유럽영화들이 대량 유입되면서 구시대적 제작코드로는 산업도, 관객도 통제가 불가능했다. 당시 MPPA (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의 회장이었던 잭 발렌티는 1968년, 자진 검열의 시대를 종영하고 등급제를 도입했다.

등급제의 도입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는 처음으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메이저 영화들의 수위가 전반적으로 높아졌고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엑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이 성행했다. 같은 시기에 등장했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Blacksploitation)’ 은 엑스플로이테이션의 흑인 버전으로 흑인 창작자들에 의해, 흑인 캐스트로 만들어진 (수위 높은) B급 영화들을 말한다.

할리우드에서 평등한 기회를 얻지 못했던 흑인 영화인들은 이 장르를 통해 백인들이 만들어 독점하던 영화나 시리즈물, 예를 들어 <드라큘라>를 <블라큘라> (Blacula, 1972)로, <프랑켄슈타인>을 <블라켄슈타인> (Blackenstein, 1973)으로 패러디해서 백인들의 인종차별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희화화 했다. 당시 인기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을 리메이크하거나 오마주 하는 작품들이 꾸준히 제작되었는데 새뮤얼 잭슨이 주연을 맡았던 <셰프트> (Shaft, 2000)는 블랙스플로이테이션으로서 가장 인기를 누렸던 형사물, <셰프트> (1971) 시리즈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드라큐라>의 흑인 패러디, <블라큘라> 포스터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인기는 대단했다. 1970년대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노골적인 섹스와 폭력 묘사,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 과장된 연기 스타일 등은 흑인 관객 뿐만 아닌 전세계의 많은 시네필들을 매료시켰다. 세기의 시네필,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분야의 스타였던 팸 그리어를 주연으로 한 <재키 브라운> (1997)을 통해 장르를 향한 그의 애정을 담기도 했다.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을 향한 러브레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그 중 최근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내 이름은 돌로마이트> (Dolemite is My Name)는 당시에 활약했던 코미디언, 루디 레이 무어를 통해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산업의 뒷이야기를 조명한다.

<내 이름은 돌로마이트>

루디 레이 무어 (에디 머피)는 야망을 가진 스탠딩 코미디언이지만 빛나는 재능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줄어가는 일자리와 생활고로 고군분투하던 중 그는 우연히 홈리스 노인이 읊조리던 야하고 거친 농담을 엿듣다가 그것을 녹음해서 그의 쇼에서 그대로 재현한다. 반 이상이 욕인 데다가 노골적인 성적 농담이 가득한 (그러나 흑인 커뮤니티의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그의 공연에 클럽의 군중은 열광한다.

도시를 돌며 유명세를 키워가던 중, 그는 동료들과 극장에 가게 된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 잭 레몬의 코미디에 백인 관객들이 열광하는 것을 본 루디는 곧 자신들을 위한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다.불행하게도 전 재산과 앨범의 저작권까지 투입해 만든 그의 첫 작품, <돌로마이트>는 배급사도 찾지 못해 창고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당시 로저 코먼의 ‘디멘션 픽쳐스’에서 극적으로 영화의 배급을 결정하면서, 루디의 첫 주연작, <돌로마이트> (1975)는 30여년 동안 장수하는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시리즈로 태어난다.

<내 이름은 돌로마이트>의 감독, 크레이그 브로워는 래퍼가 되는 마약상의 이야기를 다룬 <허슬 앤 플로우>(2005)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그 재능을 인정 받은 바 있다. 이번 작품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브로워는 밑바닥에서부터 수년 혹은 수십년을 걸쳐 서서히 부상하는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이미 성공실화로 주목받은 실제 인물을 그리는 만큼, 이 영화들이 다소 예측 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감독은 이미 대중과 공유된 인물의 일화를 다양한 설정과 주변 캐릭터들을 통해 훨씬 더 흥미롭고 영화적으로 탈태(奪胎)한다.

예를 들어 코미디만 했던 루디가 처음으로 베드신을 찍어야 하는 대목에서 그는 자신의 형편없는 몸과 연기에 절망한다. 루디는 동료인 ‘레이디 리드 (다바인 조이 랜돌프)’의 조언을 구하는데 그녀는 본래 설정인 수위 높은 소프트 코어 베드신을 루디만의 과장되고, 다소 유치한 코믹톤의 베드신으로 고쳐 볼 것을 권한다. 루디는 그녀의 아이디어를 반영하고 이는 나중에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새로운 관습이 될 정도로 아이코닉한 설정이 된다.

루디와 그의 친구이자 동료들

이 장면에서 브로워가 조명하는 것은 루디의 탁월한 재능이 아닌 그가 신뢰했던 동료들의 재능과 그들의 의견을 언제든 반영하는 루디의 성향이다. 유명인 혹은 위인을 다루는 영화에서 흔히 주인공의 ‘비범함’을 영화의 중추로 쓰는 것과는 상반된 브로워의 경향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의 엄연한 주인공인 에디 머피의 활약도 뛰어나지만 그의 상대역 조연으로 등장했던 웨슬리 스나입스의 빛나는 대목들이 영화의 중심에 자리하는 것, 그리고 이 장면들이 스나입스의 커리어에 있어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기록되는 것도 브로워의 이러한 경향이 발현된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이름은 돌로마이트>는 잘 만들어진 인물 영화이자 블랙스플로이테이션에 대한 연가(戀歌)다. 동시에 영화는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역사, 그리고 그 산업의 언저리를 차지하고 있던 흑인 커뮤니티의 역사를 가장 유쾌하고, 위트 있으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재현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로맨틱한 소환이 어디 있겠는가.


김효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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