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의 첫 심부름>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면서 잔잔한 인기를 끌고 있다. <나의 첫 심부름>은 1991년부터 비정기적으로 방영된 일본의 장수 예능 프로그램으로 난생처음 혼자서 심부름을 하러 가는 만 5세 이하의 어린이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부탁으로 광어, 꽃, 간장 조림 곤약, 경단, 차 등 갖가지 것들을 얻기 위해 길을 나선다. 아이들을 관찰하는 단순한 형식에 회당 10분 내외로 러닝타임이 짧아 ‘뭐 볼 게 있나?’ 싶지만, 그들이 낯선 거리에 홀로 떨궈져 난관을 헤치며 임무를 수행할 때, 서스펜스와 휴머니즘이 공존하는 특별한 서사가 탄생한다.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의 감상은 다양하다. ‘노키즈존’은 ‘아동거부업소’의 다른 말일뿐이라며 아동 배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 아이들에게 ‘심부름’이라는 것이 가진 상징을 문학 작품과 엮어 설명하는 사람, 어떤 이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환호하고, 다른 이는 낯선 곳에서 아이들이 홀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눈물짓는다.
나에게 <나의 첫 심부름>은 낯선 공간 속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환대와 지지를 경험하는 따뜻한 휴먼 드라마로 읽힌다. 물론, 모든 것이 철저한 준비 속에 진행되는 ‘쇼’일뿐이지 않냐 반문할 수도 있다. <나의 첫 심부름>에서 어린이를 담는 카메라맨은 굳이 숨으려는 수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히 카메라에 잡힌 아저씨가 아이의 굴러떨어지는 사과를 주워주는 장면에 이르면 각본 너머의 세계가 펼쳐진다. ‘<나의 첫 심부름> 속 어른들처럼 상대의 서투름을 관대하게 품어준다면, 아이들도 그것을 기억하여 누군가의 실수를 너그럽게 품어줄 테지. 그렇게 세상은 좀 더 살만해질 테고.’라는 감상이 솟구침은 물론이다.
공개된 20편 중 우연과 우연이 겹쳐 눈을 뗄 수 없는 회차는 단연 8화. 8화의 주인공 소타는 아빠가 직접 잡은 물고기를 단골 생선가게에 가서 회를 떠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거기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동생의 분유와 이유식용 사과까지 구매해야 한다. 호기롭게 아이스박스에 생선을 받아 들고 집을 나서는데, 글쎄 박스 끈이 똑 끊어지는 게 아닌가? 멀리서 지켜보던 엄마를 부르러 갈까 생각하지만, 주변에 생선을 노리는 고양이가 있다. 대단한 서스펜스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미끌미끌한 생선을 겨우 붙잡아 박스에 넣는 것까지 성공했지만, 끊어져 버린 끈은 고사리 손으로 도저히 소생 불가다. 소타는 주변에서 풀을 정리하고 있던 아저씨에게 부탁해 임시방편으로 끈을 고쳐 다시 길을 떠난다. 한데 끈이 또 끊어져 버린다. 이제 끈은 포기다. 소타는 두 손으로 박스를 받쳐 들고 겨우 횟집에 도착한다. 힘들었을 아이를 위해 대단하다 칭찬해 주며 손을 씻어주는 생선가게 노부부. 생선회를 가지고 떠나는 소타를 향해 신호등 잘 보고 가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분유와 사과 구매까지 성공한 소타, 이제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1.6킬로의 분유와 사과, 회를 짊어지고 오르는 오르막길.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멈춰 섰는데 아뿔싸, 봉지 안 사과가 내리막길을 따라 떼굴떼굴 굴러간다. 울음을 터뜨릴 법도 한데 꽤 의연하게 사과를 집어 들고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야속하게도 오르막길 꼭대기에서 다시 한번 사과가 굴러떨어진다. 이때 길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구르는 사과를 받아 소타에게 건네고 거드는 한 마디 없이 무심하게 자신의 차로 돌아간다. 무사히 모든 심부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소타가 ‘선물이야’라고 길에서 꺾은 민들레를 엄마에게 건네는 마무리까지. 기승전결의 완벽한 서사구조를 보여준다.
서스펜스는 덜 하지만, 10화에 등장하는 코이키는 너무 귀여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울보’ 코이키는 아빠가 집에 두고 간 도시락을 집에서 1.2킬로 떨어진 항구로 배달하는 미션을 받는다. 멀리, 배에 탄 아빠가 보이지만, 큰 소리로 부를 용기가 나지 않아 입만 뻐끔거리던 코이키에게 옆에 있던 스태프가 ‘크게 불러 보면 들리지 않을까?’ 용기를 준다. 코이키는 그 한 마디에 힘을 내 ‘아빠’하고 힘껏 불러본다. ‘울보’ 코이키에게는 대단한 도약이다. 한번 터진 외침은 거침없이 이어져 항구를 가득 채운다.
<나의 첫 심부름>을 보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를 둘러싸고 다양한 인물들을 배치한다. 특히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가 아닌, 사회에서 만나 우영우와 관계를 맺는 정명석(강기영), 최수연(하윤경)이 눈에 띈다. 정명석은 우영우의 직장 상사로 장애를 가진 우영우가 변호사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심하며, 처음에는 대표를 찾아가 입사 취소를 부탁하기도 한 인물. 하지만 우영우가 천재성과 끈기로 맡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보며 그의 편견을 사과하고 고쳐나간다. 그는 잠적한 우영우가 돌아올 때까지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기다리기도 하며 팬들 사이에 ‘서브아빠’라 불리게 된다.
최수연은 어떤가?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에 변호사 시험 1500점 이상 득점, 한 번 본 건 절대 잊지 않는 완전 기억능력까지 있는 천재 우영우가 입사 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무직 상태였다는 사실을 콕 집어, ‘부정 취업’ 의혹이 사실은 ‘차별’의 결과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사자후로 뱉어 내기도 하고, 소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우영우를 위해 생수병을 따주기도 한다. 로스쿨 시절에는 보이지 않은 배려로 영우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최수연은 우영우에게 ‘봄날의 햇살’이 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선함과 무해함은 사실 판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우영우 신드롬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으로는 누군가에게 권모술수가 되기보다는 봄날의 햇살, 서브아빠가 되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첫 심부름>에서 소타가 심부름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끊어진 박스 끈을 묶어주었던 아저씨, 굴러떨어진 사과를 주워준 아저씨, 그의 도전을 응원해 준 생선가게 노부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울보’ 코이키가 울지 않고 큰 소리로 아빠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옆에 있던 누군가의 한 마디 응원 때문이었다. 문득, 어린이들이 세상에 대한 좋은 인식을 만드는 순간들에 조연처럼 서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아’라고 부드럽게 위로해주는 어른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과를 잡아주는 어른으로, 정명석과 최수연처럼 배제의 언어보다는 존중과 배려의 언어로 감싸주는 사람으로.
<나의 첫 심부름> 속 주인공들이 단지 어리기 때문에 일방적인 존중과 배려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인간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타인의 배려와 희생 위에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뿐이다. 서로 간의 존중과 배려를 위해서는 먼저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오롯한 인정이다. 김소영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도 그들 나름의 사회생활 속에서 품위를 지키고 싶어하고, 한 사람으로서 체면이 있고 그것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고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 양식을 고민하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존재임을 다양한 일화를 통해 보여준다. ‘아동’을 그저 미숙한 존재로 바라보며 베푸는 시혜적 배려와 그들을 하나의 ‘오롯한 존재’로 인정하며 베푸는 배려, 그 면모는 많이 다를 것이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