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마음을 읽는 사람들>, 어쩌면 나도 박반장의 공범이었겠지

설령 눈앞에 있는 상대가 의심의 여지없는 죄인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인권의 원칙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범인에게서 순순히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경찰이 폭력을 휘두르는 게 코미디의 소재로 쓰이던 시절이.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용의자를 ‘통닭구이’(야구배트나 쇠파이프 등 긴 막대기에 용의자의 오금과 손목을 걸쳐서 묶고는, 막대기 양 끝을 데스크 위에 올려서 용의자가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리게 만드는 고문)하는 장면이나, <공공의 적>(2002)에서 강철중(설경구)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용의자 ‘산수’(이문식)를 발로 걷어차는 장면에서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별 위화감 없이 까르르 까르르 웃었다.

그때라고 경찰이 사건을 빨리 종결해 버리려고 애먼 사람을 고문해 가짜로 범인을 만드는 일이 없었던 게 아니다. 사회가 형식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지 얼마 안 된 시점, 오히려 경찰을 향한 불신은 지금보다 심하면 더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용의자를 발로 걷어차고 ‘통닭구이’를 하는 장면을 보며 사람들이 깔깔 웃었던 건, 보편인권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지금보다 적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쁜 일을 한 범죄자한테 인권이 어디 있어. 맞을 짓 한 놈은 맞아도 돼. 그런 생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시절, 사람들은 시원하게 용의자를 두들겨 패는 경찰을 보며 웃었다. (“진실의 방으로”라는 대사를 남긴 <범죄도시>(2017)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아직 경찰의 폭력 사용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은 그리 나아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라고 뭐가 달랐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극장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고 온 친구들끼리 쉬는 시간을 틈타 대걸레 자루와 책상을 동원해 ‘통닭구이’ 씬을 재현하고는 낄낄 웃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매달린 놈도 “야, 이거 진짜 힘들어!”라고 킥킥대고, 매단 놈들도 “자, 아는 대로 불어보실까?”라며 킥킥대던 기억은 지금 떠올리면 아찔하다. 어디 따라할 게 없어 고문 기술을 따라하면서 놀았을까 싶다가도, 아는 건 많지 않고 혈기만 왕성했던 중학생 시절이었던 걸 감안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정말이지, 그때 아무도 안 다쳤으니 다행이다.

경찰 조직 밖의 민간인들도 ‘나쁜 놈 잡는데 쓰는 폭력’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이던 시절, 경찰 조직 내의 일선 형사들에게 폭력은 얼마나 일상이었을까. 개개인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변 조직 구성원들이 모두 다 같은 언어인 ‘폭력’을 활용하는 걸 보다 보면, 자신도 그 문화에 물들기 쉽다. 다들 이러니까. 일이 되게 만들어야 하니까. 목숨 걸고 미친 듯이 발품 팔아 잡아온 용의자가 뻔뻔스레 입을 안 여는데, 조금만 쥐어박으면 그제서야 술술 입을 여니까. 형사를 우습게 보는 용의자의 기를 꺾어놓는 일종의 심문 기술인 거니까. 그리고 그렇게 폭력에 물든 조직 안에서, 누명을 쓰고 가짜 범인이 되는 사람들도 탄생했던 거겠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국내 1호 프로파일러로 유명한 권일용 교수와, 한겨레 기자 출신의 고나무 작가가 공저한 동명의 논픽션 르포를 원작으로 한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2022)에는 그런 장면이 나온다. 애인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붙잡혀 온 용의자 방기훈(오경주)을 윽박지르던 서울동부경찰서 강력반장 박대웅(정만식)은, 눈에 띄는 외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권투 글러브를 끼고 방기훈을 두들겨 팬다. 이렇다 할 알리바이는 없고, 현장에서 본인의 혈흔과 지문도 나왔는데, 계속해서 혐의를 부인하며 결백을 주장하는 방기훈이 괘씸하다는 이유였다. 자주 드나들며 함께 시간을 보낸 연인의 집에서 지문과 혈흔이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이미 심증을 굳힌 박반장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박반장은 방기훈에게 자술서를 받아낸다. 방기훈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말을 죽어라 안 듣는 청개구리 같은 후배 형사 송하영(김남길)의 이견 따위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에피소드는 나중에 과학수사와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진범을 찾아내는 주인공 하영을 돋보이게 하면서, 아직 수사기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한국 경찰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마련된 에피소드일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내가 부끄러워졌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속 ‘통닭구이’ 장면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던 내가, 강철중이 의자에 묶어둔 산수를 자꾸 발로 걷어차는 장면을 보고 폭소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단호하게 ‘설령 죄를 지은 것이 확실한 용의자라 하더라도 심문할 때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이야기했더라면, 세상에 ‘맞을 짓을 해서 맞아도 싼 사람’ 같은 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더라면, 일선 형사들도 사람을 때려가며 심문하지는 못했으리라. 그러니 영화 속 경찰이 용의자를 때리는 장면에서 키득키득 웃었던 중학생 시절의 나도, 사실은 광의의 공범이었던 셈이다. 나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박반장도 안심하고 방기훈을 두들겨 팼던 거겠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그 시절의 경찰이 진화된 수사기법을 익혀가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인 동시에, 우리 사회가 오랜 야만을 조금씩 벗어온 과정을 그린 드라마이기도 하다. 설령 눈 앞에 있는 상대가 의심의 여지없는 죄인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인권의 원칙. 정확하게 잡아 합당하게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수단은 폭력이 되어서는 안 되며, 바로 그렇기에 더 정교한 수사기법이 필요한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악의 마음을 읽는 사람들>을 통해 보고 싶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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