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 죽겠어!!! 회사 업무는 도저히 끝이 안 보이고, 상사는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해서 내 일에 태클을 건다. 동료들과 짧은 점심시간을 수다로 보내고, 회사로 복귀해 퇴근 시간만 기다리다 무거운 몸을 지하철에 싣는다. 월화수목금금금. 아, 쳇바퀴처럼 도는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은 걸까? 넷플릭스 <사랑이야>(감독 숀 폴 피치니노)가 어쩌면 당신을 위로해줄지도 모른다.
소피아(라일리 댄디)는 비서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2년을 버텼다. 드디어 상사와 독대한 자리. 이제 자신의 디자인 재능을 일을 달라고 정중히 요청한다. “너 말고도 석사 학위 받은 디자이너들이 내가 일 주기만을 기다려. 전화 받고 일정 조율하는 일은 6개월이면 그만두던데, 2년이면 오래됐네. 이제 그만해”
순식간에 해고당한 소피아. 이른 낮에 집으로 돌아갔더니, 이럴 수가! 고등학생 때부터 만났던 남자 친구 리처드(브라이언 크레이그)가 딴 여자와 함께 있다!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돌아서려는데, 그만 계단에서 굴러 마지막까지 못난 모습을 보였다! 발목을 접질려 깁스한 그녀. 단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것도 서른 번째 생일에!
분위기를 전환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내가 바뀌든가, 환경을 바꾸든가. 직장도, 사랑도 잃고 30년 인생사 최악의 날을 맞은 그녀는 엄마(낸시 레네헌)가 있는 고향으로 떠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다. 학위가 없어 직장에서 일다운 일을 못 받은 것 같은데, 대학원에 가서 석사 학위를 받아 볼까? 고향에서 일자리를 찾아 엄마와 호젓하게 지낼까? 고민하지만 사실은 무기력한 삶 속에서 이런저런 상념들로 머리가 복잡할 뿐.
사회에서는 ‘무쓸모’로, 남자 친구와의 관계는 바람으로 자존감이 뚝 떨어진 그녀에게 손 내밀어주는 건 단연 한없는 사랑의 엄마다. 엄마의 해결책은? 스페인 레스토랑의 요리 수업에 무려 ‘커플’로 등록한 것. 한사코 거절하던 소피아는 결국 떨떠름하게 참석한 첫 수업에서 미소가 매력적인 스페인 셰프 마티아스(아이작 곤잘레스 로시)를 만나고 첫눈에 끌림을 느낀다.
자신도 모르게 마티아스에게 끌리지만, ‘스페인 남자는 여자에게 친절한 게 본능’이라는 둥, ‘몇 주 후면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갈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자기의 감정을 속이는 소피아. 하지만 젊은 남녀가 만났으니 스파크가 튀는 건 당연지사. 결국 두 사람은 서서히 가까워진다.
둘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는 짐작한 대로 스페인 요리다. 특별한 레시피의 오믈렛에서 시작해 가장 스페인적인 음식 빠에야, 하몽, 만테고 치즈, 가스파쵸, 올리브 그리고 포도주 한잔까지 곁들이면 이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 심지어 둘의 만남이 이뤄지는 배경은 캘리포니아 최고의 와인 생산지인 소노마 아닌가! 눈까지 즐겁게 해주는 스페인 요리와 아름다운 소노마의 풍광을 배경으로 한 두 남녀의 사랑에 더 이상 뭐가 필요할까?
<사랑이야>를 연출한 숀 폴 피치니노 감독은 전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캘리포니아 크리스마스>에서 이미 로맨틱 코미디를 실험한 전력이 있다. 특히, 실제 부부를 주연 배우로 캐스팅해 사실감 넘치는 배우 케미를 보여준 바 있다(영화는 1년 뒤 2편까지 제작됐다). 하지만 <사랑이야>의 소피아와 마티아스 사이의 장르와 소재의 한계가 분명한 로맨틱 코미디 플롯을 감안한다 해도 극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갈등이 발생하는 방식이 전형적인데다, 이를 대하는 감독의 태도 역시 전작과 달리 지나치게 너그러워졌기 때문이다.
일과 사랑을 잃은 한 여자가 매력적이고 자유분방한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 꽁냥꽁냥한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는 엄마와 마티아스의 가족들…. 가끔은 마티아스의 답답한 헤어스타일이 몰입을 방해하긴 하지만, 굵직굵직한 사건들도 한 치의 예상도 빗나가지 않고 해결되긴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야>를 보는 내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건 이미 우리가 두 사람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는 방증이다.
이대로 소피아와 마티아스는 해피엔딩으로 향해 갈까? 갈등이 출연해야할 때다. 마티아스를 어장 관리하는 여자친구와 소피아와 재결합을 원하는 옛 남자 친구의 등장으로 두 사람은 이별에 봉착한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이 사건 속에서 소피아는 다시 혼자가 된다. 하지만 이번의 홀로서기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번의 홀로서기는 이전과 다른 이유다.
그녀가 홀로서기를 선택한 진짜 이유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마티아스와의 이별이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기회를 얻기를 기다렸던 2년, 그리고 믿었던 남자친구의 배신 같은 사건처럼 자신을 갉아먹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롯이 홀로서기를 선택한 소피아는 그때부터 오히려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채우기 시작한다. 엄마가 줌바 강사로 있는 에어로빅 댄스 학원에서 땀을 흘리고,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그래픽 대학원에 원서를 낸다. 그리고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배운 레시피로 요리하며 하루하루 꽉 찬 일상을 보낸다. 외부로부터의 변화가 아닌, 자신 안에서 시작된 변화는 힘이 세다.
이제 당당해진 그녀. 옛 남자 친구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스페인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하지만 마티아스는 이미 공항으로 떠난 상황! 아, 이보다 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있을까 싶지만, 계속해서 소피아를 응원하게 된다. 공항에서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을까? 그것보다 놀라운 반전이 영화 말미에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우리는 과연 잘살고 있는 걸까? 과연 소피아의 인생 최악의 날을 보며 위로만 받으면 되는 걸까? 서른 아니 마흔이 넘어서도 아직 내 꿈이 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는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소피아의 엄마는 이렇게 조언한다.
“나이 서른에 모든 답을 알 수는 없으니까. 인생은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게 아니야. 두 발로 적극 뛰어들어야 해. 어디 떨어질지 몰라도 말이지.”
소피아는 30년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을까? 마티아스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황금레시피를 찾았을까? 우리 안에 소피아의 홀로서기 같은 용기가 있을까? 어쩌면 당신 차례일지 모른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행복한 끝을 위해서 말이다. 뜬금없는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사랑이야>가 지금 우리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윤상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