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뱀파이어=좀파이어! <데이 시프트>로 보는 좀비와 뱀파이어물 계보

전 세계에서 해마다 극장을 통해 개봉되는 영화들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들을 합쳐 가장 꾸준히 제작되고 사랑받는 장르는 아마도 좀비와 뱀파이어 영화일 것이다. 좀비 영화는 2000년대 초에 부상했지만 그 탄생은 훨씬 이전이다. 하이티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은 좀비 이야기는 최초로 1932년에 <화이트 좀비>(빅터 할페린)라는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이후로 1940년대까지 꾸준히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렇게 한 동안 사향길(?)을 걷던 좀비 장르는 1968년 개봉된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속편, <시체들의 새벽> (1978)이 모두 성공을 거두면서 부상하게 된다. 그럼에도 기억해야 할 것은 조지 로메로는 헐리우드의 메이저 그라운드가 아닌, B급영화 감독이었고 그의 작품은 언제나 매니아층 위주의 컬트 영화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조지 로메로의 영화들은 한번도 매이저 시장에서 견줄 만한 상업영화들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좀비 영화가 지금과 같은 큰 스케일의 상업 영화들로 제작되고, 성공을 거둔 것은 2000년대 초 부터다. 일본의 ‘바이오 헤저드’라는 비디오 게임을 영화화한 <레지던트 이블> (2002)이 제작비에 3배가 넘는 1억 3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영화는 속편에 속편을 이은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레지던트 이블> 1편이 이 큰 성공을 거두고 <새벽의 저주>, <28일 후>와 같은 일련의 좀비 영화들이 흥행을 이어가며 좀비 영화는 더 이상 호러 영화의 하위장르, 혹은 B급 영화의 대표장르가 아닌 그만의 상업적 장르로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밀라 요요비치 주연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그리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2008년, <트와일라잇> 1편이 개봉했다. 뱀파이어 로맨스, <트와일라잇> 1편은 기존의 좀비 영화를 포함한 모든 환타지 장르물의 인기를 흡수하고, 초월할 정도의 거대한 팬덤을 형성했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되었던 HBO 시리즈, <트루 블러드>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뱀파이어 전성시대의 신호탄을 알렸다. 엄밀히 말해서 뱀파이어 영화들은 좀비 영화들 보다도 앞선, 영화 매체의 발명 이래부터 (예. <노스페라투> F.W. 머나우, 1922) 존재했던 장르다. 공백기가 있었던 좀비 영화들과는 달리, 뱀파이어 영화들은 메이저 시장에서 꾸준히 제작되고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90년대에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1992)와 닐 조던 감독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1994)가 연이어 흥행에 성공을 거두면서 장르의 상업적 가치를 입증했다.

탐 크루즈, 브래드 피트 주연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그럼에도 과거의 뱀파이어 영화들과 2000년대에 <트와일라잇>과 함께 탄생한 새로운 뱀파이어 영화들은 큰 차이점을 보인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뱀파이어가 더 이상 어둠에 갇혀 있는 은둔자가 아닌, 인간 세상에서 함께 공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시스템과 질서를 가지고 나름 ‘합리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더 이상 인간의 포획자나 적이 아닌, 협력자 혹은 로맨스의 상대로 등장 한다. 그런 의미에서 <트와일라잇>과 <트루 블러드>에서 그리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랑은 장르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시도였던 것이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데이 시프트> (J.J. 페리, 2022)는 2000년대에 탄생한 네오 뱀파이어 장르에 또 하나의 혁신을 가미한다. 바로 그것은 기존의 뱀파이어에 좀비의 특성을 배합한 하이브리드 뱀파이어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뱀파이어 헌터, ‘버드(제이미 폭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버드는 과격한 스타일로 인해 속해 있던 ‘뱀파이어 퇴치 유니언’에서 쫓겨난 상태다. 현재 그는 유니언 몰래 혼자 뱀파이어를 잡아 앞이빨를 전당포에 파는 것으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 나간다.

제이미 폭스 주연의 좀파이어 영화, <데이 시프트>

버드의 직업을 청소부로 알고 있는 버드의 전 부인, 조슬린은 양육비도 책임지지 못하는 버드를 떠나 딸과 함께 플로리다로 이사를 가기를 원하지만 버드의 만류로 며칠의 시간을 더 주기로 한다. 버드는 양육비를 위해 닥치는 대로 뱀파이어를 잡아서 이빨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나 버드는 실수로 고위층(?) 뱀파이어의 딸을 죽이게 되고 그녀의 엄마이자 LA 뱀파이어들의 여왕, ‘오드리’는 복수를 위해 버드를 쫓기 시작한다.

앞서 언급했듯, <데이 시프트>는 이제껏 등장했던 뱀파이어들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뱀파이어를 보여준다. 뾰족한 앞이빨이나 창백한 얼굴 등 겉모습은 뱀파이어의 전형을 갖추고 있지만 각기춤을 추듯 몸을 움직이는 모습과 떼로 몰려다니는 습성 등 영화 속 뱀파이어들은 좀비의 특징을 그대로 답습한다. 더구나 이들은 기존의 뱀파이어처럼 ‘흡혈’을 하는 것이 아닌 좀비들이 섭식을 하듯 살을 뜯어 먹는다. 한 영화 안에서 ‘제이슨’과 ‘프레디’를 보는 것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굳이 원한다면 <프레디 VS. 제이슨>(2004)을 보시면 된다) 만큼이나 어색하긴 하지만 버디와 뱀파이어와의 전투씬이 거듭될수록 이 영화가 창조해 낸 ‘좀파이어’의 존재는 흥미롭게 느껴진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취약함과 클리쉐의 남용을 그럼에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결국 버드는 버드의 가족까지 인질로 잡고 있던 오드리와의 대결에서 살아남는다. 조슬린은 남편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지만 그를 용서하고 재결합에 동의한다. 버드는 유니언에 복귀할 수 있게 된다.

궁극적으로 <데이 시프트>는 뱀파이어 장르의 전통을 전복하고 좀비와 합체된 새로운 형태의 뱀파이어를 설정함으로서 아마도 현존하는 영화들 중 가장 독특한 뱀파이어를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이 스펙터클이 한시적으로 이야기의 허술함을 가리는 역할은 수행 했을지라도 모든 것이 너무나도 쉽게, 예상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방향으로 해소되는 영화의 후반까지 구해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바로 영화의 오프닝 액션 시퀜스 때문이다. 제이미 폭스와 ‘좀파이어’가 벌이는 7분에 육박한 액션 시퀜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아울러 모든 뱀파이어 영화들과 견주어도 훨씬 우월한 수준급 스턴트를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데이 시프트>의 두 영웅, 제이미 폭스와 스눕 독

덧붙이고 싶은 추천 이유가 또 하나 있다면, 이 영화 이후로 좀비와 뱀파이어를 교배하는 시도는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고전이 될 것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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