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텍스트 안보다는 밖이 더 흥미롭다

자본주의 체제의 잔혹함을 비판하는 매끈한 자본주의 상품이, 얼마나 잘 팔리는가로 평가받으며 다시 자본주의적인 열광을 받는 이 흥미로운, 아니, 사실은 뻔한 자가당착.

<오징어 게임>이 여타 서바이벌 데스 게임 장르물들과 도드라지는 차이점이 있다면, 아마도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미장센일 것이다. 동심의 세계로 만들어진 게임장과, 피가 난무하는 게임이 부딪히는 데에서 오는 콘트라스트를 통해 잔혹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영화 <배틀로얄>(2000)도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의 싸움이고,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2012)에도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소녀 루(아만들라 스텐버그)가 참전한다는 점에서 ‘순수’와 ‘잔혹’의 대비는 서바이벌 데스 게임 장르의 전통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만큼 노골적이지는 않다.

<오징어 게임> 속 다양한 스테이지를 잇는 계단과 통로는 온통 알록달록한 색깔로 칠해져 있고, 참가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는 단체 취침실 벽면에는 아기자기한 픽토그램이 그려져 있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길과 놀이터, 주택가 공터 등을 재현한 스테이지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시절 뛰놀던 골목과도 같은 공간에서, 그 시절 친구들과 했던 게임을 하면서,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 잔혹함. 서구권 시청자들이 환호하고 열광하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잔혹함을 강조하기 위해 유년의 순수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버린 <오징어 게임>의 과감함이다.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한국 콘텐츠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지만, 정작 <오징어 게임>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오징어 게임>이 소비되는 양상이다. 시청자들은 이 끔찍한 서바이벌 데스 게임을 설계한 호스트와, 궁지에 빠진 이들을 모아 죽음의 게임장으로 몰아넣은 프론트맨, 사람을 말 취급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게임을 관람하는 VIP들을 증오한다. 부디 이 가혹한 게임장 안에서 기훈(이정재)이, 새벽(정호연)이, 알리(아누팜 트리파티)가 살아남길 간절히 바라며. 저런 비인간적인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이들이 끝끝내 처벌을 받기를 바라며.

하지만 시청자가 마음을 준 캐릭터가 살아남기를 바라며 <오징어 게임>의 다음 에피소드를 클릭하는 일과, 황금가면을 쓴 VIP가 자신이 베팅한 캐릭터가 살아남기를 바라며 프론트맨에게 다음 라운드 경기를 빨리 알려 달라고 재촉하는 일은 얼마나 다를까? 물론 시청자가 가상의 데스 게임에 아무리 열광해봤자 실제로 죽는 사람이 나오진 않는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라운드마다 더 강력한 스릴과 처절한 투쟁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게임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시청자와 VIP 사이에는 의미심장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어른 세계의 잔혹함을 표현하기 위해 아이들의 세계를 멋대로 차용하는 행위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대신 새롭다며 열광하고, 자신이 미워했던 캐릭터가 죽을 때에는 내심 통쾌해하고, 각 라운드에 펼쳐지는 게임의 필승법을 연구해가며 적극적으로 이 게임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시청자들 또한 또 하나의 VIP인 셈이다.

바로 그 이유로, 서바이벌 데스 게임 장르물은 어느 정도의 자가당착을 피하기 어렵다. 일본의 우경화와 군국주의, 전체주의와 치열한 경쟁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배틀로얄>이 역으로 “은유된 것일 뿐이지만 현실이 이렇다”는 메시지의 강화에 기여했고, 미디어를 이용한 이미지 정치의 선동과 엔터테인먼트를 이용한 우민화 전략을 정면으로 비판한 <헝거게임> 시리즈는 엄청난 엔터테인먼트 상품이 되어 29억 6450만 달러라는 성적을 거뒀다. 물론 <헝거게임> 속 세 손가락 경례가 전세계적으로 압제에 대한 저항의 심볼이 됐다거나, 사람들이 잔혹한 입시경쟁을 비판할 때 <배틀로얄>을 예로 드는 것처럼 목표했던 순기능 또한 어느 정도 이루긴 한다. 그러나 게임 자체의 스릴과 잔혹성을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제공한다는 점에 그 비판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가 도사리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라고 다르지 않다. 적자생존이라는 게임의 구조와, 하나도 평등하지 않은 게임을 설계해 놓고 “이 안에서만큼은 평등한 경쟁을 해야 한다”며 공정한 척 구는 프론트맨 등을 통해, <오징어 게임>은 돈이라면 상대를 죽여야 하는 게임이라도 참여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의 잔혹함을 비판한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의 성취는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1위를 했는지로 평가되고, 극 중 참가자들이 입었던 초록색 트레이닝복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해외 쇼핑몰에서 팔리고 있는지가 화젯거리가 되며,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을 만드는 데 든 예산이 200억 원인데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얼마나 더 많은 예산을 들여 웰메이드 작품을 기획 중인지가 뉴스가 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잔혹함을 비판하는 매끈한 자본주의 상품이, 얼마나 잘 팔리는가로 평가받으며 다시 자본주의적인 열광을 받는 이 흥미로운, 아니, 사실은 뻔한 자가당착.

황동혁 감독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즌1을 찍으면서 이가 여섯 개가 빠졌다며, 당분간은 시즌2를 찍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노골적으로 다음 시즌의 존재를 예고하며 끝났다. 그렇다면 다음 시즌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면 좋을까. 이 잔혹한 게임 자체를 부숴버리고 누구도 서로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꾸는 내용이라면 어떨까.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달고나 뽑기 하나 잘못 뽑았다고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는 드라마는 현실적이고?


이승한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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