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원망스러워! <맨 프롬 토론토> 빵빵한 사운드로 즐기면 더 좋았을 극장용 액션

지난 3년 동안 팬데믹으로 개봉을 미룬 영화들의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끝까지 극장 개봉을 고집했는데 엄청난 흥행을 거둔 <탑건: 매버릭> 같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영화들은 개봉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퇴장해야 했다. 이 시기 아예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OTT로 넘어간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 시리즈를 연출한 패트릭 휴즈 감독이 2020년 메가폰을 잡는다고 밝혔던 <맨 프롬 토론토>도 마찬가지다. 당초 주연이던 제이슨 스타뎀이 하차하고 우디 해럴슨이 섭외되는 우여곡절까지 겪었던 이 영화는 연기되는 개봉 일정 탓에 결국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했다.

영화 <맨 프롬 토론토>

<맨 프롬 토론토>는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비슷하고 성급하게 제작된 여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과 큰 차이가 없는 듯 보인다. 한 명은 어리숙하고 한 명은 냉철한 두 남성 콤비가 등장하고, 처음엔 서로를 혐오하다가 함께 우여곡절을 겪으며 브로맨스를 펼치는 식의 스토리는 이미 넷플릭스 영화들 이전에 <나쁜 녀석들> 시리즈부터 시작된 전통 같은 클리셰다. 여기에 돈 자랑을 하듯 굳이 벌집이 되는 슈퍼카와 필요 이상으로 큰 폭발 장면들은 덤이다. 안 봐도 본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 영화엔 몇 가지 미덕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대형 헬스장의 영업사원 테디(케빈 하트)는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딴 운동기구들을 팔아 보려 하지만 모든 것이 어설프다. 영업사원이 아닌 트레이너로서 커 보고 싶지만, 유튜브 영상도 운동기구도 팔리지 않는다. 그러던 중 ‘비접촉 복싱’이라는 황당한 아이템을 고안, 헬스장 사장에게 가져가 사업을 해 보자고 말한다. 그러나 사장은 테디의 제안에 그간 참아 왔던 ‘해고’ 카드를 꺼내고 만다.

테디는 이 사실을 숨긴 채 아내의 생일을 기념해 분위기 좋은 오두막집을 예약한다. 그런데 집 프린트기의 잉크가 부족했던 탓에 주소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이 곳이겠거니’ 하고 들어간 오두막에서 로맨틱한 밤을 준비하던 테디 앞에 험상궂은 남자가 나타나는데, 그는 테디에게 만신창이가 된 또 다른 남자를 고문해 필요한 정보를 토설하게 달라고 요청한다. 솔직히 신분을 밝혔다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 같아 영업사원으로서 갈고 닦은 허풍을 발휘하는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정보를 얻어내는 의외의 상황이 펼쳐진다.

영화 <맨 프롬 토론토>

알고 보니 테디가 도착한 오두막은 예약했던 곳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고문 기술로 유명한 킬러 토론토(우디 해럴슨)가 당도할 예정이었던 장소였다. 겨우 상황을 모면하려는 찰나 FBI가 현장을 덮치고, 이미 범죄집단에게 토론토로 인식된 테디는 강제로 사건 해결에 투입된다. 결국 테디는 프린터 잉크를 제때 갈지 않은 탓에 토론토 행세를 하게 된 셈이다.

할아버지가 곰에게 먹히는 것을 본 트라우마로 어둠의 세계에서 살길 택한 토론토는 졸지에 테디에게 임무를 빼앗긴 상태다. 클라이언트가 테디를 토론토로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죽일 수도 없다. 그래서 토론토와 테디는 얼떨결에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된다.

영화 <맨 프롬 토론토>

케빈 하트와 우디 해럴슨은 <킬러의 보디가드>에서 라이언 레이놀즈와 사무엘 L. 잭슨 콤비를 만든 패트릭 휴즈 감독의 또 다른 남성 2인조로 훌륭하게 거듭난다.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구강 액션’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케빈 하트가 담당했고, 따뜻한 본성까지 죽이지는 않은 ‘웃픈’ 트라우마의 킬러이자 액션 담당은 우디 해럴슨이 했다. 처음에는 테디가 온탕, 토론토가 냉탕처럼 보였지만 사랑 앞에서 역전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19세기 영국 고전시를 좋아해서 클라이언트와의 암호도 시 구절을 인용하는 토론토와 테디가 시인 존 키츠를 두고 나누는 대화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시인이 누군지도 몰랐던 테디는 존 키츠를 ‘그녀’라 칭하고, 금세 토론토에게 ‘그’라고 지적당한다. 하지만 테디는 존 키츠가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했을 지 어떻게 아냐며 되레 목소리를 높인다. 황당해 하며 테디의 뻔뻔함을 꼬집을 것만 같았던 토론토가 자리에 있는 클라이언트의 부하들에게 멋쩍게 사과하는 장면이 웃음을 준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도 단순하지만 일관적이다. 생활은 영업사원으로 영위하지만, 진짜로 하고 싶은 트레이너 일은 비대면으로 하려는 테디의 부족한 용기는 그가 성공시키려는 ‘비접촉 복싱’으로 은유된다. 하지만 토론토와 만나 대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실제로 능력을 펼치는 것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획득한다. 자신에게 20년 동안 명령을 하달하는 인물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혼자 일하던 토론토 역시 테디와의 만남으로 살인 목적 이외 인간과의 접촉에 성공하며 깊이 묻어두었던 온기를 회복한다. 그리고 이 모든 건 프린터 토너가 모자라 정확히 보이지 않았던 종이 위 숫자가 가져다 준 인생의 우연이었다. 처음 테디의 손에 들린 오두막 예약 문서에서 시작된 이 우연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수미상관으로 꽉 닫힌 결말을 펼쳐 보인다.

영화 <맨 프롬 토론토>

촬영과 연출이 새롭지는 않지만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만든 만큼 액션은 스케일 자체가 몹시 크다. 총과 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토론토의 원거리 및 근거리 액션은 <킹스맨> 시리즈와 비슷한 ‘칼각’이 돋보인다. 예상대로 쓸데없이 비싼 차들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대목이 몇 군데 존재하지만 이를 코믹하게 묘사하며 겉돌지 않는 시퀀스가 완성됐다.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과 입체적 사운드 시스템에서 관람했다면 ‘익숙함’에서 오는 아쉬움이 상쇄됐을 테다.


칼럼니스트 라효진

Must Read

Related Articles

Enable Notifications OK No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