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티 르로이> – 가상 인물과 사기죄

영화 <제이티 르로이>는 베스트 셀러 작가 로라(로라 던)가 필명 ‘제이티 르로이’로 쓴 소설이 화제가 되자 로라가 자신의 남자친구 제프리(짐 스터게스)의 여동생 사바나(크리스틴 스튜어트)로 하여금 ‘제이티 르로이’를 연기하게 만들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줄거리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실화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면, 2000년에 로라가 쓴 소설이 출판되어 화제가 되었고 2006년에 ‘제이티 르로이’가 허구의 인물이며 더구나 현실에서 ‘제이티’인 척 연기한 사람은 작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미국 문학계를 발칵 뒤집은 이 사건이 우리나라 법에 의하면 사기죄가 될 수 있는지 영화 속 상황에 따라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필명으로 소설을 출판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요

로라는 ‘사라’라는 소설을 ‘제이티 르로이’라는 필명으로 출판합니다. 필명으로 소설을 출판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되는지 여부는 경우의 수를 나눠서 생각해봐야 하는데요. 먼저 ‘제이티 르로이’가 필명이라는 것을 밝히는 경우인데, 대부분 필명을 쓸 때는 여기에 해당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본명이 아닌 다른 이름을 사용하면서 필명이라고 밝혔다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연예인이 필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데, 요즘은 이니셜을 쓴다든가 누가 봐도 본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과거에는 실재하는 이름 같은 필명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는데, 후자가 필명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이 경우에도 대중들은 연예인의 이름이 무엇이든, 연예인의 동일성 자체에는 혼동이 없기 때문에 (즉, 홍길동이라고 불리든 김길동이라고 불리든 인물은 동일함) 설령 홍길동이 ‘김길동’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영화에서 로라가 ‘제이티 르로이’가 필명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어도 대중들에게 자신이 ‘제이티 르로이’라고 했다면 그 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이죠.


2. 타인의 사진을 허구의 인물이 실존하는 것처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까요

그러나 로라는 ‘제이티 르로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사람들이 궁금해하자, 우연히 취득하게 된 알지도 못하는 소년의 사진을 ‘제이티 르로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그 사진 속 소년에 대한 초상권 침해가 문제되고 아직 대중들에 대해서는 사기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만약 소년의 사진이 저작권이 인정되는 사진 저작물에 해당한다면(예를 들어, 소년을 모델로 촬영한 사진)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촬영 작가에 대해서 저작권 침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3. 타인이 허구의 인물을 실존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은 문제가 될까요

로라와 사바나의 행동은 점점 대담해져 갑니다. 처음에는 사바나가 로라가 만든 ‘제이티 르로이’의 이미지에 부합하게 변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 정도에 그쳤지만, 급기야 사바나는 변장을 하고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제이티 르로이’가 실존하는 인물인 것처럼 연기를 하는데요. 이 단계가 되면 대중들에 대해서도 사기죄가 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이 경우도 여러 가지 상황이 가능한데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로라와 사바나한테 속아서, 즉 ‘제이티 르로이’가 실존하는 인물이라고 믿고 ‘처분행위’를 했는지 여부입니다.

우리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범인의 기망행위 외에 이에 속은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즉, 범인의 기망행위가 있고 이에 속은 사람(피기망자)이 있는데, 피기망자가 그 기망행위 때문에 어떠한 행위(처분행위)를 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범인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해야 사기죄가 되는 것입니다. 처분행위란 직접 재산상의 손해를 초래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말하는데, 재물을 직접 교부하는 행위, 범인이 재물을 가져가는 것을 수인하거나 묵인하는 행위, 범인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는 계약 체결, 노무제공, 채무면제 의사표시, 청구권 행사포기도 처분행위가 될 수 있어요. 주의할 점은 피기망자의 처분행위로 피해자의 재산상 손해가 발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에요.

영화 속 상황을 통해 하나씩 살펴보면, ‘제이티 르로이’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점을 숨기고 로라가 사바나로 하여금 ‘제이티’인 것처럼 연기하게 만든 행위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로라가 만든 ‘제이티’의 이미지를 사바나가 현실 속에 구현해냄으로써 그 이미지에 대중들이 열광하여 사바나가 ‘제이티’인 것처럼 연기하면서 잡지 속 모델로 등장하고, 소설을 영화화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단계까지 간다면 모델촬영 계약의 상대 당사자와 영화제작 계약의 상대 당사자, 그리고 그 계약에 투자하는 등으로 계약 관계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인들에 대해서는 사기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만약 ‘제이티’가 로라가 만든 이미지를 연기한 사바나가 아니라 로라의 필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로라를 모델로 하여 촬영을 할 것인지, 영화로 제작할 것인지 여부를 따져봐야 합니다. 영화로 제작하려는 이유가 로라가 쓴 ‘사라’라는 소설 내용이 주된 영향을 미친 것인지, 아니면 ‘사라’를 쓴 작가(라고 대중들이 믿은) ‘제이티’라는 인물이 영화화를 결정한 중요한 요소였는지를 판단해서 사기죄가 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즉, 사바나가 연기한 ‘제이티’라는 허구의 이미지를 실존한다고 속은 착오와 영화제작 계약을 체결한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이것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이 사건이 사기죄로 처벌까지 받았는지 여부는 잘 모르지만,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다면 사기죄로 형사 처벌까지 받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영화제작 계약 등 처분행위에 대해서는 착오를 이유로 취소하는 것이 다른 요건을 충족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해 보입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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