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데 다르다?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이 선택한 새로운 길

<돼지의 왕>이 나온다. 이름이 익숙하다 싶을 텐데, 맞다. 2011년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드라마화된 것이다. 18일부터 티빙에서 독점 방영하는 드라마 <돼지의 왕>은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토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를 마쳤다. 어딘가 비슷한 듯, 원작과는 또 다른 구색을 갖춘 <돼지의 왕>의 독특한 지점들을 알아보자.


연상호와 먼 듯 가까운 그것



<돼지의 왕>

한국 영화계에서 파이가 작은 독립 영화, 그중에서도 시장이 진짜 작은 애니메이션이 당시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아무도 몰랐다. 2011년 개봉한 <돼지의 왕>은 일반적인 관념 속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달랐다. 내용부터 학교 폭력을 겪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뤘고, 작화와 표현이 거칠었으며, 인물들의 움직임 또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저예산이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 난폭함을 다루는 이야기와 맞아떨어져 시너지를 냈고, 약 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입소문을 탔다.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이제는 영화, 드라마까지 활약 중인 연상호 감독의 ‘라이징’이었다.



<돼지의 왕> 제작은 <사이비>(맨 위)를 <구해줘 2>(위)로 리메이크한 히든시퀀스가 맡았다.

연상호 감독은 최근 <방법>의 각본을 쓰고 <지옥>의 연출까지 도맡았기 때문에 <돼지의 왕>도 그가 관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다. 정답은 아니다. 이번 드라마는 연상호 감독이 원작일 뿐, 직접적으로 관여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기대를 접어두긴 이른데, <돼지의 왕>의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과 히든시퀀스는 이전에 연상호 감독의 작품을 훌륭하게 실사화한 바 있기 때문. 두 제작사는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를 토대로 드라마 <구해줘 2>를 제작했다. <구해줘 2>는 한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16부작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알차게 채워 입소문을 타면서 마지막 회에서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이처럼 훌륭한 전례가 있어서인지 연상호 감독이 먼저 히든시퀀스에게 “<돼지의 왕>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언질을 던졌고, 히든시퀀스가 리메이크로 화답한 것. 연상호 감독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어도 완성된 드라마를 보고 “재밌게 봤다” 하니 기대해 봄 직하다. 


Q. <돼지의 왕>에 여성 배우는 처음이다/아니다?



강진아 역의 채정안

원작을 아는 사람이 드라마 <돼지의 왕> 출연진을 보면 약간 의아해할 수도 있다. 김동욱, 김성규와 함께 채정안이 주연 배우이기 때문. <돼지의 왕>에 여자 캐릭터가 있었나? 물론 원작은 남자들의 과거 이야기이므로 여자 캐릭터가 없긴 했다. 채정안의 출연이 이번 드라마의 다른 점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가 맡은 강진아는 강력 2팀 형사로 어떤 연쇄살인을 쫓는데, 그 사건이 바로 원작의 두 주인공 황경민과 정종석에게 이어지는 것이다. 두 캐릭터는 각각 김동욱과 김성규가 맡았는데, 이름이나 설정만 빼면 직업과 성격도 모두 원작과 거리가 있는 편이다.



원작 <돼지의 왕>에서 목소리 출연했던 김혜나, 김꽃비, 박희본

그런데 사실 원작을 알았다면, 채정안이 드라마에 새로 추가된 캐릭터를 맡았을 거라고 바로 떠올리지 못했을 수도. 왜냐하면 원작 <돼지의 왕>에는 여자 배우가 세 명이나 있었기 때문. 중년 경민(오정세)과 종석(양익준)이 만나서 회상하는 어린 시절, 그 시절 김철, 경민, 종석은 모두 여자 배우들이 목소리를 맡았다. 김철은 김혜나, 경민은 박희본, 종석은 김꽃비. 그래서 원작 캐스팅을 알았더라면 채정안이 새로 만든 캐릭터라기보다 원작의 연장선에서 캐스팅된 것이 아닐까 추측했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다. 알고 보니 드라마를 위한 오리지널 캐릭터였지만.


과거 아닌 지금의 이야기

<돼지의 왕> 원작(왼쪽)과 드라마 포스터.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캐릭터들의 시점이 두 작품의 차이를 보여준다.

원작에서 드라마로 가장 큰 변화는 이야기의 시점일 것이다. 원작은 어른이 된 경민과 종석이 오랜만에 재회해 과거를 회상하는 전개로 이야기를 이끈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두 사람의 현재로 장식하지만, 그 근본은 결국 어린 시절에 겪은 일에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결말에 다다랐을 때 두 사람이 그동안 덮어두었던 과거에 대한 씁쓸함이 관객에게까지 전이된다. 더 이상 되돌릴 수도 없고, 마냥 잊을 수도 없기 때문에.

드라마는 이 이야기를 12부작으로 확장하면서 과거가 아닌 현재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부딪힐 것인가. 그 변화의 중심은 황경민으로 결정됐다. 드라마의 황경민은 체념하지도, 멈춰 서지도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가꾸고 이끌어왔는데, 그 원동력은 과거의 순간들에 있었던 것이다. 경민은 결국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 복수를 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형사가 된 종석과 일면식이 없는 형사 진아가 추적하게 된다. 



황경민 역 김동욱(왼쪽), 정종석 역 김성규

이런 전개의 변화는 드라마 제작진 원작의 컨셉을 어떻게 확장할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원작이 성인 애니메이션이 된 이유는 어른이 된 두 사람의 심리적인 여운보다 회상 장면의 극단적인 묘사와 욕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드라마는 이 점을 현재 시점까지 끌어왔다고 볼 수 있다. 원작의 학창시절 중 폭력에 현재 피해자의 복수가 더해진다면, 성인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면서 가져올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취한 것.



김철은 드라마에서 어떻게 그려질까.

또 원작처럼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드라마 전체를 채운다면(물론 그건 그것대로 엄청난 성과겠지만), 이야기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점이 없으므로 시청자 입장에선 금방 지치기 십상이다. 그동안 사랑받은 복고풍 드라마를 떠올려보라. 현재 기점의 추리를 넣거나(<응답하라> 시리즈의 남편 찾기 등) 아니면 아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슬립 장르를 취하곤 한다(<라이프 온 마스> 등). 그러나 이런 장르가 <돼지의 왕>의 소재(학교폭력)와 어울리지 않으니 아예 그 문제를 현재까지 연장한 복수극으로 꾸민 것으로 보인다. 비록 원작과 크게 달라진 것 같아도 “원작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겠다”는 탁재영 작가의 발언이 결코 거짓은 아니었다.


드라마 <돼지의 왕>은 3월 18일부터 매주 2회씩 공개한다. 많은 드라마에서 학교 폭력을 소재의 일부로 다루는 와중에 <돼지의 왕>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듯 이야기 깊숙이, 캐릭터 깊숙이 새겨 넣었다. 과연 <돼지의 왕>은 시청자에게 ‘사이다’를 안겨줄 수 있을까. 원작처럼 씁쓸한 뒷맛으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할까. 매운맛을 넘어 찐한 맛으로 돌아온 <돼지의 왕>, 배우들의 열연이 펼칠 복수극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어떨까.

돼지의 왕

감독

연상호

출연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박희본, 김꽃비

개봉

201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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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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