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세븐’은 어떻게 탄생했나.

데이빗 핀처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세븐>이 재개봉한다. 모건 프리먼과 브래드 피트가 어둡고 축축한 뒷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로 등장한다. <나를 찾아줘>, <조디악> 등 비정한 세상에 갇힌 사람들, 그리고 그 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주로 등장하는 데이빗 핀처 특유의 인장이 찍힌 스릴러 영화다.

<세븐>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 때 북미에서 개봉한 10편의 데이빗 핀처 전작 중 가장 크게 흥행에 성공했다. 전세계 성적을 합산하면 <나를 찾아줘>가 가장 많은 수익을 벌어들였다. <세븐>은 3위다. 이 영화는 당시 약 3천 3백만 달러 예산이 책정됐고, 시나리오가 너무 칙칙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다가 비정한 결말을 가지고 있어 제작사에서 대부분 영화화하길 꺼려 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던 영화다. 허나 개봉과 동시에 분위기는 반전됐다. 북미에서만 1억 달러, 전세계 3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둬들였다. 규모가 작거나 혹은 그다지 상업적이지 못한 영화만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던 제작사 뉴라인 시네마의 입지 역시 빠르게 상승했을 정도.

불과 서른 살의 나이에 <에일리언 3>로 영화계에 데뷔를 하고, 이제 막 두 번째 영화를 연출했던 신인 감독 데이빗 핀처는 어떻게 이 영화를 흥행과 동시에 스릴러, 네오 누아르 영화 계보의 걸작 반열에 올릴 수 있었을까. 아직 이 영화를 접하지 못했던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정보가, 이미 수도 없이 봤던 팬들에게는 추억을 되살리게 해줄 제작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7번의 살인사건

<세븐>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각본가 앤드류 케빈 워커는 약 2년 동안 힘들게 작업했던 시나리오를 사줄 영화사를 찾기가 어려워지자, 범죄, 스릴러 영화 각본가들의 에이전트 명단을 만들어서 그들이 관심을 가져줄 때까지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고 한다. 그의 집념의 승리일까. 절박한 상황에서 탄생한 영화의 이야기는 히어로 영화에 나올법한 범죄 도시를 배경으로 어둡고 음울한 기운을 쏟아냈다.

은퇴를 일주일 앞둔 서머셋(모건 프리먼) 형사가 한 살인사건을 떠맡게 된다. 엄청난 거구의 남자가 식탁에서 스파게티를 먹다가 배가 터져 죽은 사건이 발생했는데 단순 사고사인줄 알았던 그의 머리에서 총구 자국이 발견된 것이다. 그가 죽기 전에 협박을 당해 억지로 먹다 죽은 것이 증명된 셈. 그리고 다음날, 유능한 변호사가 집무실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범인은 피해자의 피로 바닥에 ‘탐욕’이란 글자를 써놨고 살을 정확히 1파운드만 도려내 저울에 올려놨다. ‘베니스의 상인’ 모티브로 한 살인 사건인 것. 서머셋 형사는 연쇄 살인사건임을 직감하고 손을 떼려 하는데 서장은 어쩔 수 없이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는 하필 새파랗게 젊은 다혈질의 밀스(브래드 피트) 형사를 파트너로 임명한다.

7개의 악을 가장해 마치 심판하듯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범인의 패턴을 깨닫게 된 두 사람은 탐식, 탐욕, 나태, 욕정, 교만을 주제(?)로 한 연쇄 살인사건 현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용의자 존 도우(케빈 스페이시)를 발견하고 추격전을 벌이지만 결국 놓친다. 그런데 범인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경찰서를 찾아와 자수를 하면서 시기와 분노, 두 개의 아직 벌어지지 않은 살인사건을 예고하고 나선다.

각본가 앤드류 케빈 워커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서머셋 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서머셋 형사가 후배인 밀스 형사와 함께 살인사건을 추적해나가는 이야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악의 도시를 만들어내다

〈세븐〉에서 미치광이 살인마 존 도우가 연쇄 살인사건을 일으키는 도시의 배경은 현실에 존재하는 도시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서머셋 형사의 경찰 배지에는 특정 지역명이 없고 메트로폴리탄이라고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가상의 도시인 것이다. 서머셋 형사는 자신들이 평생을 살았고 이제는 지긋지긋해진 도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무관심해. 강간을 당할 때도 비명을 지르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차라리 ‘불이야”라고 외치는 게 낫다고.”.

바로 이런 비정한 도시의 분위기는 영화 내내 장대비가 쏟아지는 설정과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런 가상 도시의 폐쇄적이면서도 우울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은 채도를 확 낮추고 필름의 거친 질감을 살리는 현상 방식,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을 활용했다. 이 영화의 색감이 뚜렷하지 않고 잿빛처럼 느껴지는 건 바로 이 기법으로 현상을 했기 때문이다. 이 기법을 활용하면 채도가 낮고 콘트라스트가 높으며 거친 색감을 얻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세븐〉은 극중 서머셋과 밀스 형사가 현장에서 들고 다니는 플래시를 활용해서 빛의 긴장감이라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최근 봉준호 감독과 <옥자>를 함께 작업하기도 했던 다리우스 콘지 촬영 감독은 조명으로 배우의 캐릭터를 강조해야 할 때, 빛의 세기를 가지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빛의 방향을 통해 톤을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또 빛으로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것을 강조하는데 <세븐>은 그의 빛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한 영화였다. 그리고 이러한 빛의 설정은 결국 영화의 후반부에서 반전을 맞이하는데 비가 그치고 해가 반짝이는 날에 시야가 탁 트인 광활한 장소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다.

영화 내내 비가 내린 것에는 연출자의 의도가 아닌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실제 촬영 기간 동안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브래트 피트의 첫 촬영날 비가 내렸고, 배우의 스케줄 때문에 촬영을 미룰 수 없었던 제작진은 그 이후에도 계속 비가 내리는 설정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게다가 데이빗 핀처 감독은 프로덕션 디자인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서머셋 형사가 범죄에 영향을 줬을 책들을 읽는 도서관 장면의 분위기를 위해서 〈세븐〉의 미술팀은 그에 걸맞은 건물을 섭외, 무려 5만권이 넘는 분량의 가짜 책을 채워넣었다고. 범죄 현장의 비좁고 음습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천장의 높이를 일상공간보다 낮게 설정해서 조명을 설치한 것도 영화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 현장 노하우 중 하나다.


온몸을 던진 브래드 피트

데이빗 핀처 감독과 가장 많이 작업한 배우는? 바로 브래드 피트다. 그는 핀처 감독 영화 중 3편이나 출연한 유일한 배우다. 브래드 피트는 안하무인 다혈질 형사 밀스를 연기하고 700만 달러를 받았다. 핀처 감독은 또 여주인공을 캐스팅하는 데도 그의 도움을 받았는데 영화 <악몽>에 출연한 기네스 팰트로를 캐스팅하고 싶어 브래드 피트에게 직접 부탁했다고 한다. (당시 브래드 피트는 기네스 펠트로와 연인 사이로 알려졌다.)

또한, 영화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브래드 피트에 관한 재미있는 비하인드가 있다. 영화 중반, 연쇄 살인마인 존 도우와 밀스 형사가 빗속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브래드 피트의 팔이 자동차 앞유리에 박히는 사고로 수술을 받았다. 이후 브래드 피트의 부상은 영화 속에서 그가 연기하는 밀스 형사가 부상을 입어 깁스를 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처리됐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화의 오리지널 각본에도 밀스 형사가 그 장면에서 손을 다친다는 묘사가 있었다고 한다.

케빈 코스트너, 니콜라스 케이지, 실베스타 스탤론, 덴젤 워싱턴 등의 배우가 밀스 형사 역에 거론된 적 있거나 캐스팅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 중 덴젤 워싱턴은 시나리오가 너무 어두운 분위기라서 거절했지만 나중에는 그 결정을 후회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세븐 7’이 뭐길래

<세븐>의 연쇄살인마는 단테의 <신곡>,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밀턴의 <실낙원> 등을 토대로 인간의 7대 죄악과 연관된 살인사건을 일으킨다. 그래서일까, <세븐>이라는 영화의 제목과 관련해서 지독하리만치 흥미로운 설정이 숨겨져 있다.

7번의 살인사건이 7일 동안 벌어지는 시간 전개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에는 영화 시작 7분 만에 주인공인 밀스 형사가 연쇄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기 7분 전에 서머셋 형사가 밀스 형사에게 “저 놈이 이길거야”라고 말한다. 또 오프닝 장면에 등장하는 빌딩의 개수가 7개이며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배달되는 소포가 오후 7시에 도착하도록 설정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정한 시작과 끝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븐>의 타이틀 시퀀스와 엔딩 장면은 장르 영화, 특히 네오 누아르 영화사의 게보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고 있다. 영화의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세븐>의 오프닝 장면은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카일 쿠퍼의 작품이다. 이 타이틀 시퀀스에서 인상적으로 쓰였던, 존 도우가 쓴 일기는 전부 실제 제작진이 손으로 작성했다. 그 일기장 소품을 만드는 데 약 1만5천 달러의 제작비가 소요됐다. 영화 속에서 서머셋은 경찰들이 그것을 다 읽는 데만 두 달이 걸릴 거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는데 이는 농담이 아닌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세븐>의 엔딩 장면은 당시로서도 너무 파격적이라서 거의 모든 영화사에서 말렸다. 심지어 제작사인 뉴라인 시네마의 임원들도 말렸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핀처 감독이 시나리오의 비극적인 엔딩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느껴진다. 그 때문에 엔딩도 여러 버전이 논의되었는데 영화의 완성된 최종 엔딩은 어쨌든 오리지널 각본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스포일러 때문에 구체적인 설명은 피한다. 제작자가 중간에 다른 엔딩, 그러니까 조금 더 나은 해피엔딩으로 바꾸려고 시도했는데 배우들이 엔딩에 손을 대면 출연을 고사하겠다고 고집을 피웠을 정도다. 지금의 엔딩을 지키기 위해 뒤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의 마지막, 서머셋 형사의 내레이션 대사인 “헤밍웨이가 말했지.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고 그렇기에 싸워서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나중에 첨가된 것이다. 블라인드 내부 시사를 거친 뒤에 도저히 반응이 안 좋아 어쩔 수 없이 감독이 덧붙인 대사였다. 원래 감독은 영화의 끝을 더 차갑게 맺고 싶었고 실제 그런 버전의 엔딩을 만들었다. (또 다른 엔딩 원본은 DVD, 블루레이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스토리를 알고 완성된 영화를 보면 핀처 감독이 적당히 타협하는 대신에 밀스 형사의 분노의 감정을 더욱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끝까지 지지는 않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느껴진다.

결국, 지금의 최종 엔딩은 평생을 어둠의 도시에서 악인들과 싸우며 일했던 서머셋 형사가 경건한 마음으로 출근을 하던 영화의 첫 장면과 조응한다. 누군가는 나서서 끝까지 이 도시의 악과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 것. 그러니까 영화에서 완전한 해피엔딩따위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쓰러지지도 않을 거라는 어떤 다짐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또한 <세븐>이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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