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스>, 고요히 폭정이 시작되는 곳

나라마다 “오렌지 대가리”는 다 있다

<바이스>는 예사롭지 않은 자막으로 영화의 문을 연다. “다음 이야기는 실화다. 혹은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다. 딕 체니는 역사상 가장 비밀스러운 지도자였으므로. 하지만 우리도 좆나게 최선을 다했다,” 모종의 결기와 유머감각이 어우러진 표현에 피식 웃다가 문득 궁금해진다. 대체 얼마나 최선을 다했기에 애덤 매케이는 영화 대문에다 비속어까지 새겨가며 자신의 노력에 대해 강조한 것일까.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어떤 엄격한 과정을 거쳤을까. 머릿속은 호기심과 의심으로 살짝 어지러워지지만, 불신하던 마음은 이내 슬며시 빠져나간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자신만만해 보이던 고백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로 자연스레 다가온다. 아니, 이보다 더 열심히 만들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관객이 영화에 연루되다

<바이스>는 정공법을 구사하고 재치를 발휘한다. 장르영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매케이의 전작들을 따라온 관객이라면 당연히 짐작하겠지만, 이 영화의 묘미는 독보적인 미학이나 존재론적 고민 같은 데에 있지 않다. 그것은 대중적인 화법에 있다. <바이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관한 조사서와 같은 영화 <빅쇼트>(2016)와 혈연관계에 놓여 있다. 말하자면 “무던하고 관료주의적인 부통령” 딕 체니(크리스천 베일)가 행정부와 의회, 국방부를 장악해가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쥐는 과정을 묘사하고, 9·11 테러 이후 세계의 불안한 정세를 이용해 인권유린을 자행해가는 과정을 기록한 집념 어린 보고서와 같은 영화다. 달리 말하면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의 사태를 이해하기 쉽고 즐길 만한 이야기로 만든 영화다. 하지만 매케이의 대중적인 화법을 활발한 소통 정도로만 이야기한다면 그건 미진한 작업이 될 것이다.

매케이는 적극적으로 관객을 영화에 연루시킨다. 그는 해설자 커트(제시 플레먼스)를 등장시켜 영화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관객에게 상세히 부연한다. 게다가 이 친절한 해설자는 ‘단일 행정부’, ‘형평의 원칙’ 등과 같이 익숙하지 않은, 혹은 강조해야 하는 용어가 등장할 때마다 세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어조로 그 용어에 대해 설명까지 해준다. 그러니까 영화는 복잡한 정세를 읽어낼 수 있는 키워드를 효과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관객을 적극적인 청취자로 끌어낼 뿐 아니라, 적극적인 해석자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또한 체니를 비롯한 공화당 정치인들이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을 해석하고 미디어를 이용해 규제를 철폐하는 에피소드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이 모든 과정에 관련된 사회 네트워크를 관객이 파악하기 쉽도록 설명한다.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이 사회 네트워크는 어느 국가에도 대입할 수 있는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서, 관객 개개인과 영화 속 상황이 실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명료하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매케이는 다른 방식으로도 관객과 해설자와 결속을 다진다. <바이스>는 훌륭한 배우들은 많지만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캐릭터가 없다. 아무리 뛰어난 배우들이 나와 탁월한 연기를 펼친다 해도 관객이 딕 체니나 린 체니(에이미 애덤스), 또는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와 같이 영혼을 잃은 야심가들에게 이입되기는 힘든 일이다. 우리는 그들의 신념을 알지 못한다. 젊은 시절의 체니는 럼즈펠드에게 신념에 대해 묻지만 비웃음만 돌아올 뿐이고, 체니 또한 자신의 신념에 대해 자문하기를 멈춘 것 같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영화에 삽입되는 시민들의 초상이 우리들의 초상과 닮았다는 걸 알지만, 그들은 익명의 존재들이다. 하지만 영화 초반부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커트만은 다르다. 평범한 가장에다 노동자이며 정치가들이 일으킨 전쟁에 참전한 군인에게서는 얼마간의 친밀감이 느껴진다. 그러니 그의 심장이 딕 체니에게 이식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무심코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커트는 이 상황 또한 유머러스하게 표현하지만, 체니의 구덩이처럼 어두운 가슴속으로 그의 심장이 들어갈 때는 어떤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감독이 이 수술 장면들과 체니와 공조한 정치가의 얼굴들, 그리고 그들이 초래한 만행의 현장을 교차 편집하여 보여주며 역설하는 내용 때문일 것이다.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도 이들은 끈질기게 잘 살아낸다는 사실.

엔딩 크레딧까지 꼭 보아야 하는 이유

그러니 매케이가 정치에 비유하는 플라이낚시는 그가 둘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수였던 것 같다. 침묵을 지키는 체니의 알 수 없는 의중과, 새로운 일을 도모할 때마다 어둠에 잠겨 검은 실루엣으로만 비치는 그의 얼굴, 깊은 구덩이처럼 보이는 그의 가슴속과 무엇이 잡혀 올라올지 모를 수면 아래 이 모두는 고요하고 예측할 수 없어 더 위협적인 이미지로 통한다. 이 이미지들을 하나의 축에 엮어내며 영화는 딕 체니의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플라이낚시법을 체니가 구사하는 전술과 나란히 두고서 양자가 얼마나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는지를 재치 있게 강조한다. 체니가 부통령 자리를 제안한 부시(샘 록웰)와 협상을 벌이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낚시질에 비유하는 재기발랄한 대목 외에도 체니의 전술은 플라이낚시로 통한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강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듯 정치판 깊숙이 들어가는 기술, 화려하고 그럴싸해 보이지만 곤충이나 벌레 모양을 본떠 만든 플라이로 물고기를 유인하듯 허황된 이야기도 논리가 있고 명분이 있는 것처럼 둔갑시키는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수면에 오랫동안 플라이를 유지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듯 오랫동안 침묵하며 움직일 시기를 기다리는 기술이 그것이다. <바이스>는 이 단순한 전술에 뛰어났던 체니의 정치 행보를 집요하게 조사해 세계 역사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대중적인 화술로 펼쳐놓는다.

하지만 애덤 매케이는 애초부터 체니가 마지막까지 “난 당신들 요구대로 했을 뿐”이라고 뻔뻔하게 늘어놓는 장면에서 영화를 멈출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혹은 이 이야기가 이보다 훨씬 앞선 지점, 그러니까 영화 중반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지점에서 멈췄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다. 체니가 딸 메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일말의 신념을 지키려 정계에서 물러났던 그 시기. 하지만 역사는 그리 흘러가지 않았으니 할 수 있는 건 지금의 현실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었을 테다. 되도록 재밌고 강하게. 그래서 어떻게 보면 <바이스>는 엔딩 크레딧과 쿠키 영상이 더 중요해 보인다. 엔딩 크레딧에 보이는 화려한 플라이훅들은 어쩌면 매케이가 지금의 현실정치를 바라보는 견해 혹은 논평에 가까울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위험하고 치명적인 플라이훅과 같다고. 그리고 진정 이렇게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쿠키 영상 속의 남자처럼 “오렌지 대가리가 나라 말아먹고 있”다고. 그러므로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까지 꼭 보아야 한다. 매케이의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쿠키 영상을 본 후 더욱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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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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