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엄마’ 아닌 ‘너’는 누군데?” <리미트>, 모성의 굴레에서 쳇바퀴 도는 K-엄마들

※스포주의: 영화 <리미트>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엄마니까”

영화 <리미트>는 엄마로 시작해서 엄마로 끝나는 작품인 만큼, 역시 엄마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속 세 주인공 소은, 혜진, 연주는 모두 저마다의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엄마’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 타인의 아이를 이용하기를 서슴지 않는 엄마부터 총 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이를 구하는 엄마까지. 그야말로 극강의 엄마들이 벌이는 ‘내 아이 잘 키우기’ 싸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만큼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은유일까? 혹은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낡은 문구의 반영일까. 온갖 고초를 다 겪는 이 인물들의 경험과 동기, 목적은 ‘모성’이라는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여 납작하게 압축된다. 모성. 엄마. 그게 도대체 뭐길래.

불충분한 서사, 당연시되는 모성애

소은(이정현)

여기 초등학생 아들을 둔 싱글맘 소은(이정현)이 있다. 소은의 직업은 경찰이고 소속은 생활안전과다. 그런 그의 두 번째 직업은 바로 다단계 판매원이니, 소은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생활안전을 위협(?)하는 생계형 경찰인 셈이다. 이를 나무라는 엄마에게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대꾸한다. “이거 팔면 다현이 영어학원 간다” 소은이 경찰이면서 다단계 판매원인 이유, 그토록 악착같이 사는 이유는 다름 아닌 외아들 다현의 남부럽지 않은(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생활이다.

‘아이를 위해 뭐든 하는 엄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참으로 익숙한 캐릭터다. 마치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작중 소은은 오직 아들밖에 모르는 엄마지만, 그 이유인 ‘왜’는 빠져 있다. 소은이 ‘왜’ 아들을 그토록 아끼고 위하는지, 관객은 충분히 설득되지 못한 채 함께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야 한다.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서사적 특징도 있거니와, 모자(母子) 관계의 정형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캐릭터 설정도 그 원인일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불사? 엄마가 뭐길래!

연주(진서연)

유감스럽게도 아들밖에 모르는 경찰 소은이 휘말리는 사건은 하필이면 아동유괴사건이다. 납치된 아이의 엄마인 연주(진서연)를 대신해 유괴범의 전화를 받아야 하는 소은. 그는 연주에게 연민을 느껴 대화를 청하는데, 이때 연주가 이상한 질문을 한다. “만일 아이가 죽어서 돌아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러자 고민 끝에 “(내 아이 죽인 놈을) 죽여야죠. 엄만데”라고 답하는 소은과 ‘역시’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연주. 그 앞에서 나는 동의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그럴 수야 있지만, 모든 엄마가 그럴 거라고 일반화할 수 없으니까. 무엇보다 두 엄마 소은과 연주가 어떻게 그러한 ‘모성’을 획득했는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았다. “죽여야죠”라는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자기 확신의 근거로 제시된 “엄만데”는 도리어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래서, ‘엄마’가 뭔데?”

그러나 <리미트>의 러닝타임은 고작 87분. 긴박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엄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깊이 빠져들 여유는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지는 사건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들의 액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숨 가쁘다. 연주의 딸 아진에 이어 곧 소은의 아들 다현이 같은 일당에게 납치되자 결국 소은은 경찰이 아닌 엄마로서 추격에 나선다. 여기에 경찰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말하기도 입 아픈 클리셰다. 여태껏 나온 수많은 범죄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리미트>의 경찰은 이 끔찍한 유아납치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아니, 해결하지 못하기 위해 등장한다. 그래야 소은이, 엄마가 뭔가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엄마”라는 감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판 테이큰” 아이 위한 헌신이 타인 향한 폭력되기도

혜진(문정희)

“엄마판 테이큰”이라는 말까지 나왔듯 <리미트>는 엄마들이 맹활약하는 영화다. 특히 소은 역을 맡은 이정현은 산에서 구르고 땅에서 구르고 한눈에 보기에도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게 느껴진다. 진서연, 문정희 역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을 보여줬으며, 소은과 혜진(문정희)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격돌하는 부둣가 씬은 이 영화에서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문정희가 연기한 아동연쇄유괴범 혜진은 나름의 사연이 있는 악역인데, 폭력가정에서 동생 준용(박명훈)을 데리고 나와 사실상 아들처럼 키우다보니 어둠의 인물이 됐다는 것이 요지다. 연주는 또 어떤가. 아이를 납치당한 무고한 피해자로 보이던 그는 사실 딸의 간 이식 수술을 위해 다른 아이의 생명을 빼앗은 범죄자다. 뿐만 아니라 유아납치 브로커들의 뒤를 봐주는 등,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

이렇게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엄마 혜진과 연주 그리고 소은. <리미트>는 이들에게 엄격한 선악의 굴레를 씌우지 않는다. 작중 벌어지는 사건은 전부 ‘엄마’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갖가지 헌신들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헌신이 타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폭력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엄마’가 아닌 당신의 본질은 무엇인가

“내 아들 없으면 내 인생도 없는데!” 소은은 말한다. 비단 소은뿐일까. 아마 연주와 혜진도 딸 아진과 동생 준용을 두고 그렇게 말할 게 분명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연쇄유아납치극이라는 영화 속의 비극은 애초에 없었을 테니까. 이들의 삶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삶은 지키고 보살펴야 할 어린 자식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리미트>가 제시하는 ‘모성’과 ‘엄마’란 그런 것이다. (자식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본질은 아닌 것. 폭발적인 액션과 넘쳐흐르는 감정, 연쇄 추돌처럼 벌어지는 사건의 틈에서 소은과 연주는 자주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마치 자신의 감정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듯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너’는 누군데?”

뭐가 어떻게 되든 내 아이만큼은 내 손으로 구하겠다는 서사는 그 절박함과 개연성이 뒷받침되는 만큼 감동적이다. <테이큰>이 그랬고 <괴물>이 그랬다. <리미트>도 만만치 않다. 자식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동차, 엽총, 권총에 사슬낫까지 동원되어 주조연을 막론하고 다들 굉장한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엄마이기 이전에 오롯이 ‘나’인 캐릭터가 <리미트>에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아이를 위해 뭐든 하는 엄마’에 결여된 것. 아니, 간과된 것. 그것은 바로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만약 소은과 혜진, 연주가 듣는다면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 또 당신은 뭐라고 답하겠는가?


씨네플레이 유해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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