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도감, 혹은 학교에서 처음 암모나이트 화석을 봤을 때의 감상을 떠올려 보자. 암모나이트는 공룡보다 훨씬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해 1만 종이 넘는 형태로 진화할 만큼 번성했지만, K-Pg(백악기-팔레오기) 멸종 때 공룡과 함께 사라진 존재다. 눈 앞의 암모나이트 화석은 못 해도 1억 년 전의 것일 텐데도 그다지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별날 것도 없이 그저 커다란 달팽이 껍데기로만 보였기 때문일 테다. 화석 치고는 지금도 발에 채이도록 많아서, 희귀형을 고집하지 않고 암모나이트 화석을 손에 넣으려 한다면 단돈 1만 원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레어템’의 세계가 그렇듯 암모나이트 화석도 색이 예쁘거나 무늬가 선명하게 보존돼 있는 경우 비싸게 팔린다. 그 중에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형태와 전혀 다른 모습의 ‘이상돌기’ 암모나이트도 있다. 암모나이트의 둥글게 말린 듯한 껍데기 중심을 위로 잡아 뺀 듯한 나선형 모양의 이 고생물의 기원에는 아직 정론이 없다. 누군가는 이들의 껍데기가 과잉 진화로 인한 기형의 산물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그저 생태 환경에 적응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좀 더 낭만적으로 말하자면, 이상돌기 암모나이트는 특별하다.
그 특별함이 반드시,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종종 잊힌다. 한때는 지구를 뒤덮었을 암모나이트들 사이에서 이상돌기 암모나이트가 어떤 존재였을지는 모를 일이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로 ‘남다름’이 늘 가치 있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공동체가 파편화하고 사람 간의 유대가 옅어질수록 개인은 스스로를 유일하고 특별한 것으로 칭하며 그 안으로 도피하려는 경향이 짙어진다. 공기를 마구 주입해 부풀린 개인의 이상적 모습은 타인 혹은 사회와 부딪히며 그 거짓됨을 폭로 당하기 마련이다.
현대인은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 모두가 무조건 ‘가치 있는’ 특별함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하기를 강권받는다. 관계 맺기에 있어서 비대해진 자기애의 부작용을 예측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심한 경우엔 스스로 빚어낸 만든 이상적 자신과 현실의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그 세계관을 위협하는 외부의 인물들에게 공격성을 표출하는 경우도 목격된다. 영화 <제멋대로 떨고 있어>의 요시카(마츠오카 마유)가 바로 그 사례다.
요시카는 스물 여섯 살이고, 성 경험이 없으며,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 이는 일체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단순 사실의 나열이다. 하지만 요시카는 위의 문장을 이렇게 고쳐 쓸 것 같다. ‘스물 여섯 살인데 성 경험도 없고 연애를 해 본 적도 없다’. 그에게 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 한 적 없는 비밀이다.
영화는 인형처럼 예쁜 단골 카페 점원에게 하소연을 하는 요시카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만 들어 보면 요시카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나를 사랑하는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비련의 주인공 같다. 같은 부서의 쿠루미(이시바시 안나)가 회사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털어놔도 심드렁한 요시카는 10년 전 중학생 때 처음 만난 ‘이치'(키타무라 타쿠미)를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당시 이치는 모두가 좋아하는 인기인이었고, 교실 한켠에서 조용히 만화를 그리던 요시카는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요시카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자신의 행동을 10년 동안 ‘거리 두기’로 포장한 채였다. 그리고 누울 때마다 10년 전의 이치를 몇 번이고 머릿속에 소환하는 시간을 보냈다.
요시카에게는 도도새나 암모나이트처럼 멸종된 동물 정보를 찾아보는 취미가 있다. 그의 집에 놓인 커다란 암모나이트 화석은 10년 전의 이치와 요시카처럼 보였다. 이상돌기 암모나이트 화석은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지만, 요시카는 이상돌기가 과잉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믿으며 자신과 동일시한다. 언젠가는 현재의 이치에게 고백하는 진화를 꿈꾸면서 사는 요시카 앞에 영업부 직원 ‘니'(와타나베 다이치)가 난데없이 ‘사귀어 달라’라며 고백을 해 온다.
난생 처음으로 남자와 사적인 관계로 얽히게 된 요시카는 여전히 심드렁한 척하지만, 고백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콧노래를 부를 만큼 기뻐한다. 매년 이치의 망상만이 퇴적된 그의 회색 현실에 색이 입혀진 것이다. 하지만 요시카는 이치를 생각하며 보낸 10년을 공허하게 만들 수 없었고, 연락이 완전히 끊긴 이치에게 고백하기 위해 동창회를 조작한다.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는 자신이 부끄러워 인기 있던 친구를 사칭해 동창들을 부른 요시카. 결국 이치와의 재회에 성공하고,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멸종된 동물에 깊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그러나 이치가 멸종된 동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요시카와 달랐다. 이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고생물들의 일그러진 생김새에 끌렸고, 특히 이상돌기 암모나이트는 과잉 진화 같은 것이 아닌 단순 환경 적응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동상이몽에도 그저 맞장구를 치던 요시카는 이치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진짜 이름이 아닌 ‘이치’로 불러 왔던 환상 속 존재에게, 또 그를 10년 동안 사랑하는 ‘만들어진’ 자신에게 빠져 있던 요시카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혼자만의 10년차 연애를 끝낸 요시카는 다시 니를 찾는다.
영화에 나오는 요시카, 이치, 니의 행동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되는 건 왜곡된 형태의 자기애다. 언급했듯 요시카는 이상적인 자신이 사는 세계와 현실을 분리하지 못해 10년 동안 망상 속에 살았다. 이는 결국 과잉된 자의식을 만들고, ‘연애 한 번 못 해 본 나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매몰시켰다. 이치는 요시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학창 시절 요시카만이 눈길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니의 사랑은 표면적으로 요시카에게 퍼부어지는 듯하지만 스스로를 향한다. 요시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준비해 내밀고, 요시카의 존재를 알아 본 자신의 안목이 탁월하다며 뿌듯해 한다. 이 셋은 손을 뻗어 타인의 실존을 확인하는 대신 그저 ‘본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믿음이 너무나도 깨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태연한 척 하면서도 제멋대로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다. 끝내 니의 진짜 이름을 부른 요시카의 성장은, 이상 속의 과잉 진화된 자신을 파괴한 현실 적응의 ‘진일보’였음이 분명하다.
칼럼니스트 라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