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아이디어죠? 홍보·마케팅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영화들

개봉 전 관객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단계인 마케팅. 마케팅은 영화 흥행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단계다. 영화와 관련 없는 요소들을 끼워 맞추며 본질을 흐리는 등, 홍보 단계에서 각종 이유로 논란에 휩싸인 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스토리 창작형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다. 내전의 여파로 혼란스러운 1944년 스페인을 배경으로, 지하 세계에서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하는 소녀의 모험을 담은 작품. 참혹한 현실을 반영한 판타지 명작으로 손꼽히지만, 개봉 당시엔 잘못된 홍보로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기괴한 크리처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일품인 이 작품을 아동용 판타지 모험극으로 소개한 것. <나니아 연대기> <해리 포터>를 떠올리며 극장에 간 많은 이들이 동심 파괴의 충격(!)을 견뎌야 했다.

스카우트

포스터만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임창정의 코미디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스카우트>. 하지만 우리가 단번에 떠올린 그 영화들과 확연히 다른 결을 지닌 영화다. <스카우트>는 1980년, 연세대 야구부에 최고의 투수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에 내려간 호창(임창정)의 고군분투를 그린 코미디로 소개됐다. 알고 보면 야구는 소재일 뿐, 영화는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한다. 반전을 너무 꽁꽁 감춰두었던 탓일까. 2007년 백상예술대상의 영화 시나리오상을 수상했고, 임창정은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지만 <스카우트>는 개봉 당시 31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지구를 지켜라!

<스카우트>보다 더 유명한 ‘반전’ 영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다. 포스터 속 ‘범우주적 코믹 납치극’이란 홍보 문구와 해맑은 신하균의 표정을 보자. <지구를 지켜라!> 는 SF 코미디 영화로 홍보됐다. 외계인이 있을 거라 굳게 믿는 주인공의 황당한 납치극을 그렸을 거라 추측됐던 이 영화에 강도 높은 고문 신이 포함되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포스터엔 코믹이라 적어놓고, 장르는 스릴러로 구분한 이 영화의 페이크 마케팅에 당한 관객들의 후기가 입소문을 탔고, 이는 흥행 실패의 결과로 이어졌다. 이 작품으로 장준환 감독은 국내는 물론, 해외 영화제에서까지 상을 휩쓸었지만, 차기작을 극장에 걸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파닥파닥

역시 포스터가 잘못한 사례다. 고등어의 횟집 탈출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파란 하늘 위로 생동감 넘치는 고등어 이미지를 얹은 <파닥파닥>의 포스터는 활기찬 모험극의 분위기를 띈다. 자유를 갈망하는 횟집 수조 안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피비린내나는 절박함과 처절함의 몸짓이었다는 건 영화를 본 후에야 알 수 있다. <파닥파닥>은 한국판 <니모를 찾아서>를 떠올리고 극장에 간 이들에게 한동안 횟집의 수조도 바라볼 수 없을 만큼의 트라우마를 안겼다. 국내 포스터보단 해외 포스터가 그나마 영화의 분위기와 가까운 편. “여기 들어온 순간 너희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야”란 문구와 함께, 뼈만 남은 물고기 시체 이미지가 우측 하단에 위치하고 있다.


캐릭터 왜곡형

세상을 바꾼 변호인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을 그린 영화다. 남성이란 이유로 보육비 세금 공제를 거부 당한 보육자의 사건을 접한 후, 이는 남성의 역차별 사건이며 성차별의 근원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임을 직감한 루스(펠리시티 존스)가 세기의 재판에 나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차별과 편견에 맞서 세상을 바꾼 영웅으로 불리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을 다뤘으니만큼, 해외에선 Leader(리더), Justice(정의),Marvelous(놀라운), Heroic(영웅적인)의 문구를 사용해 영화를 홍보했다. 한국에선 이 콘텐츠 위로 힙스터, 데일리룩, 꾸.안.꾸한 날, 러블리한 날, 핵인싸 등 영화와 관련 없는 문구를 사용해 질타를 받았다. CGV 아트하우스 측은 논란에 대해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해외 이미지를 활용해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의 의미를 본의 아니게 훼손했다” “영화의 의미에 맞는 적절한 콘텐츠 구성을 할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알라딘

<알라딘> 속 자스민(나오미 스콧)이 자신의 외모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질색하고 퇴장해버리는 장면은 보지 못한 걸까? <알라딘> 역시 캐릭터의 외향을 우선시하는 시각에서 제작된 홍보 콘텐츠로 논란에 휩싸였다. <알라딘>의 자스민을 소개하며 “예쁨주의보 제대로 터짐. 그래서 메이크업은 어떻게 하는 건데?”란 홍보 문구를 내건 것. <알라딘> 속 자스민은 진정한 사랑을 찾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현명한 술탄이 되길 꿈꾸는 인물로 진화해 호평을 받은 캐릭터다. 한 발짝 앞서간 영화를 따라잡지 못한 홍보 콘텐츠.

토이스토리4

<토이스토리 4> 역시 비슷한 경우다. 거추장스러운 치마를 뜯어내고 돌아온 보 핍(애니 파츠)은 주어진 숙명에 안주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방식을 터득한 캐릭터다. <토이스토리 4> 관련 상품을 홍보하는 콘텐츠에서 보 핍은 ‘우디 여친’이라는 수식어로 소개됐다. 우디와 관객을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이번 작품의 핵심 캐릭터, 보 핍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다. 논란이 일자 디즈니 코리아는 해당 콘텐츠의 문구를 ‘자유로운 탐험가! 다시 돌아온 보핍으로 변신’으로 수정했다.


SNS 문구 수정 요청 형

밤쉘

홍보 콘텐츠, 영화를 소개한 SNS 문구에 대한 지적을 받은 영화들도 적지 않다. 아름다운 얼굴로만 유명했던 배우 헤디 라머가 알고 보면 위대한 발명가였다는 사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밤쉘>. CGV 아트하우스는 ‘이 얼굴 실화?’‘공대 아름이의 원조’ 등 영화의 본질과 동떨어진 문구로 헤디 라머, <밤쉘>을 소개하며 비판을 받았다. 해당 게시물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레슬러

<레슬러> 측은 영화의 스틸 이미지를 공개하며 ‘[단독]체육관에서_타이트한의상_입은_A씨_유출사진 모음’이란 문구를 사용했다. 해당 문구는 불법 촬영인 몰카나 불법 촬영물 유포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측은 소개 문구를 수정한 후, 댓글을 통해 “몰카를 연상시키는 악의적인 용도로 작성한 문구는 아니며 유해진 씨가 맡은 ‘귀보’라는 캐릭터가 전직 레슬러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레슬링복을 조금 더 재미있게 표현하고자 작성했던 문구”였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특정 성별 우대형

의견은 갈리지만 특정 성별을 우대한 시사회 역시 마케팅 단계에서 자주 논란에 오르는 이벤트 중 하나다. 이 사례에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영화는 <아수라>와 <존 윅 3: 파라벨룸>. <아수라>는 ‘진정한 남자들만 먼저 만난다’는 문구를 내걸고 남성 관객만 응모 가능한 온리 브로 시사회를 열었다. 최근 개봉한 <존 윅 3: 파라벨룸> ‘남성 취향 저격 영화’를 만나보는 ‘남성 전용 시사회’를 개최했다. 두 영화 모두 주요 관객층으로 예상되는 남성에 집중한 홍보 이벤트를 구성한 것. 그러나 “액션 영화를 남성 관객들만 좋아하리란 법은 없다”는 지적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남성 전용 시사회가 화두에 오르며 여성 관객만을 대상으로 한 여성 전용 시사회도 논란을 피해 가지 못했다. 롯데시네마는 <그린북> <미쓰백> 등을 비롯해 다수의 영화를 통해 여성 전용 시사회를 개최한 바 있다. 최근 개봉한 <마담 싸이코> 역시 ‘여성들만을 위한 특별한 시간’이란 문구를 내걸고 여성 전용 프리미엄 시사회를 열었다. 여성 전용 시사회 역시 “영화의 타깃을 특정 성별로 제한할 필요가 있냐”는 비판을 받았다. 남성 시사회, 여성 시사회에 대한 논란을 두고 한편에선 “성별 제한 시사회 이벤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성별을 떠나 주요 타깃 층을 대상으로 한 시사 이벤트는 이전부터 여러 차례 진행되어온 바 있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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