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에 대한 영화에 대한 영화
★★★★
1996년에 올리비야 아샤야스 감독이 만든 장만옥 주연의 영화. 1915년에 루이 푀이야드 감독이 만든 무성영화 <흡혈귀들>을 리메이크하는 촬영 현장이 배경이다. 장 뤽 고다르의 <사랑과 경멸>(1963)이나 프랑수아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1973) 같은 누벨바그 세대의 ‘영화 현장에 대한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자, 장만옥이라는 피사체에 대한 실험적 접근이다. 문제가 끊이지 않는 필름메이킹의 과정을 통해, 산업과 예술 사이의 경계에서 늘 줄타기를 해야 하는 ‘영화’의 운명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장만옥’의 영화. 27년 전 그녀를 만난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아름다움을 품은 어떤 너절함에 대하여
★★★★
급변하는 영화 산업의 물결을 넘어 도착한 1990년대 프랑스 영화의 위기와 권태는 의미심장하게도 현시대와 닮은 구석이 있다. 뒤늦게 도착한 편지 같은 이 영화는 완벽하게 저물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 시대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에 안도하게 만들며 의도치 않은 위력을 발휘한다. 영화라는 예술이 발휘하는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골치 아픈 산업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와, 30대 초반이었던 장만옥을 만날 수 있는 낭만이 뒤엉켜 독특한 감흥이 인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에 관한 영화, 그 안에서 가장 빛나는 장만옥
★★★★
현재는 거장이 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이름을 전 세계 관객들에게 알린 <이마 베프>가 뒤늦게 개봉했다. OTT와 숏폼 컨텐츠가 뉴 노멀인 지금 <이마 베프>의 연착은 계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의 존재 의미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영화가 무엇인지 묻는 아사야스 감독은 끝내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장만옥은 영화에 관한 영화 안에서 감독도 시나리오 작가도 도달하지 못하는 배우만의 순간을 만들어내는데, 캐릭터에 접신하려는 몸짓과 마침내 그 인물이 되었을 때 보여주는 에너지가 놀랍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라는 기적, 영화 같은 기적
★★★★
홍콩 스타 장만옥이 장만옥으로 등장하는, 영화(현장)에 관한 영화. 프랑스 영화 업계에 대한 자조적인 비판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할리우드 액션 영화 동경에 대한 냉소가 담겨 있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영화인가’에 대한 마법과도 같은 응답도 들어앉아 있다. 총체적 난국으로 치닫는 프로덕션 현장의 악다구니 끝에 기다리는 건 뜻밖의 ‘기적’이다. 신경 쇠약 직전의 감독이 현장을 떠나면서 남긴 편집 영상. 감독이 농담처럼 이어 붙인 이 편집 영상은 기이하게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환상적이다. 그러니까, <이마 베프>는 의도와 예측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의 기적들이 모여드는 게 영화라고 말하는 영화다. 한국에서 27년이나 지각 개봉하면서 증명한 또 하나는, 영화란 시간이 붙잡지 못하는 배우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처럼 기록해 보관하는 매체라는 것. 장만옥이 장만옥한다. 대체 불가한 아름다움이여.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뱀파이어의 생명력처럼
★★★★
27년 만에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개봉한 이 작품을 새롭게 들여다보고 해석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올리비에 아샤야스 감독에게 명성을 안긴 작품으로, 그가 2022년에 8부작 드라마로 리메이크한 원작이라는 점에서 시대를 관통하며 영화와 영화 만들기에 대한 유의미한 질문을 던진다. 고전 무성영화를 리메이크하는 프랑스 중견 영화감독과 그가 의욕적으로 캐스팅한 홍콩 배우 장만옥(매기 청), 촬영 현장에서 이들 각자가 처한 상황과 불안 심리를 블랙코미디와 다양한 영화 기법으로 드러낸다. 이방인, 관찰자, 동양인 여성 배우, 안티히어로 캐릭터까지 겹겹이 두른 역할을 자유자재로 연기한 장만옥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극 중 감독의 편집본은 기존 관습에 도전하는 독창적이고 전위적인 스타일이 들끓는 장면으로 여전히 놀라움과 통쾌함을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