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등 4월 셋째 주 개봉작 전문가 평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폭주하는 욕망의 심연
★★★
초반에 제시되는 사건은 인물들의 폐허를 들여다보기 위해 통과하는 일종의 진입로다. 영화의 진짜 핵심은 모녀라는 관계의 심연.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과 엄마로서의 삶 사이에 선 이들의 진짜 이야기가 밝혀지는 순간, <앵커>는 욕망으로 폭주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얼굴을 드러낸다. 다만 사건과 인물들을 엮는 연결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으며, 중반 이후에 맞춰지는 모든 퍼즐은 기계적 배치라는 인상도 남긴다. 각본과 연출에서 발생하는 아쉬움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건 연기다. 천우희는 앵커로서의 자부심과 불안, 사랑과 증오라는 양가감정 사이를 계속 진동하는 세라를 통해 여전히 예리하고 섬세한 실력을 선보인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욕망하는 여성들
★★★
‘애증과 애정’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모녀 관계를 뿌리에 단단히 박고 달리는 영화다. 작품 전체 분위기를 과감하게 뒤집는 중반부 전개가 호기심을 붙잡고, 현재와 심리 치료 너머 무의식의 세계가 교차하며 맞물리는 장면에서의 서스펜스도 상당히 흡입력 있다. 후반부 휘몰아치는 속도감에 비해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방식은 종종 덜컥거리지만, 천우희라는 배우가 품은 다양한 얼굴의 결이 개연성의 누수를 막아내며 극을 감싼다. 곳곳에 스민 이혜영의 존재감, 신하균의 묵직함도 눈에 띈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장단점이 너무 명확한 오락 영화 
★★★
오락적 요소는 충분한데 애매하다. 모처럼 로맨스 어드벤처 장르를 잇는 영화라는 점에선 반가운데 새롭지는 않다. 스타배우 산드라 블록과 채닝 테이텀의 시너지가 코미디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빛나는데 로맨스는 살짝 부족하다. 로맨스 소설가와 책 표지 모델이 콤비가 되어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모험을 한다는 설정은 신선한데 전개가 진부하다. 악역에 다니엘 래드클리프를 캐스팅한 건 참신한데, 배우까지 놀리는 건 좀 심했다. 카메오로 출연한 브래드 피트의 존재감이 어마한 것도 장점이자 단점이다. 중장년 관객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젊은 관객들의 취향을 저격하기에도, 가족 관객들이 거리낌 없이 즐기기에도 걸림돌이 나타난다. 조율이 아쉽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고려인 4세 박루슬란 감독이 연출하고 한국, 카자흐스탄이 합작한 범죄 스릴러 드라마. 1970년대 후반 소비에트연방(소련) 카자흐스탄에서 실제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의욕이 충만한 형사가 여성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연쇄 살인마와 맞닥뜨리며 겪는 심경 변화와 강력 범죄 사건을 통해 당시 사회 체제를 반영한 점에서 <살인의 추억>(2003)을 연상시킨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의 전형을 따르면서 과감함과 모호함을 오가는 연출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열기로 가득 찬 스타일리시 네오 누아르 
★★★☆
중국의 신인감독 샤이페이 웬의 장편 연출 데뷔작. 자동차 사고로 사람을 친 에어컨 수리기사와 그가 사고로 죽인 남자의 아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범죄 드라마다. 빛과 색을 강조한 영화의 스타일에 주목할 만하다. 뜨겁고 끈적한 느낌의 열대야,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 이상으로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는 두 주인공, 짙게 드리운 범죄의 음습한 그림자를 감각적으로 연출했다. 미장센의 대가로 불리는 홍콩감독 왕가위의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떠오르는데, 절제된 감성으로 개성을 획득한다. 몸을 사리지 않고 캐릭터에 몰입한 펑위옌과 관록 넘치는 실비아 창의 열연이 영화를 뜨겁게 달군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소년과 개의 특별한 만남 
★★☆
소년과 개의 우정을 담은 러시아 영화. 소년과 개의 우정 이야기는 많은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공항이라는 특별하고 한정된 공간에서 따뜻한 이야기를 펼친다.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해 공항 활주로를 떠돌게 된 반려견과 엄마와 헤어져 아빠와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소년의 만남에 이들을 보듬거나 위협하고 이용하려는 어른들이 얽혀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전형적인 드라마로 동물과 인간의 교감,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허허벌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뜻 모은 출판인과 건축가들의 맞잡은 손에서 하나의 도시가 탄생하고, 그 도시에 유의미한 가치가 들어서고, 그 가치에서 파생된 일련의 물결이 미래로 뻗어나가는 원동력이 되는 과정을 담았다. 건축과 예술적 측면뿐 아니라 파주가 안고 있는 지정학적, 생태학적 의미까지 두루 살핀 것이 인상적. 각자도생의 시대에, 함께 뭔가를 이뤄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삼 일깨워준다. 인터뷰로만 이어 붙인 그림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으나, 도시의 매력을 전달하는 것엔 성공한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도시 건축 다큐멘터리의 위대한 시도 
★★★
출판인과 건축가들이 ‘위대한 계약’을 맺고 파주출판도시를 만든 30년 역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파주출판도시의 탄생 배경부터 영상 미디어, 예술가가 모이는 단지로 확장해 가는 도시 파주를 담았다. 한 도시의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해 공간을 바라보는 눈을 넓힌다. 정치, 문화, 건축, 부동산, 생태, 도시 재생 등 여러 카테고리에서 공간의 의미와 가치를 짚고, 미래를 모색해 나가는 목소리까지 실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국내 대표 출판인과 건축가들이어서 이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반가움까지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