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인피니티 스톤 같은 작곡가! 팬데믹 시대 흥행지왕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음악

*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팬데믹을 맞아 극장은 저물고 OTT의 시대가 대두됐다고 누구나 다 수긍하려는 순간, 엄청난 흥행 폭탄이 터졌다. 소니와 마블이 전략적 제휴를 단행한 거미인간의 세 번째 결과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그 주인공이다.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어 좋은 결과를 바랐지만, 빠르게 우세종으로 자리 잡고 있는 오미크론의 대환란이 변수였다. 하지만 언제 영화계가 위기였냐는 듯 이 영화는 개봉 첫 3일간 모든 팬데믹 시절의 기록들을 모조리 다 갈아치웠다. 심지어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뒤를 이어 할리우드 역대 두 번째 오프닝 수익이라는 대기록마저 세웠다. 올해 북미에서 가장 성공했다던 <샹치: 텐 링즈의 전설>의 총 수익을 무려 첫 주에 넘기고, 소니 픽처스 배급작 중 가장 큰 성공작이 되었으며, 아직 중국과 일본 개봉을 하지도 않았음에 코로나 시대 첫 10억 달러를 넘긴 작품으로 이름을 새겼을 정도다.

제작 당시부터 여러모로 화제가 됐던 작품이긴 했다. 지난 과거 시리즈 빌런들을 모두 불러 모은 캐스팅부터 멀티버스에 대한 추측을 예상케 했는데, 혹시? 설마? 하던 관객들의 바람과 기대는 개봉되자마자 사실(!)로 입증되었고, 그 스포에 노출되지 않고 온전히 영화를 감상하겠다던 의지가 바로 흥행과 즉결돼 엄청난 구름 인파를 몰고 왔다. 마블이 유독 선전하는 국내에서도 이 인기가 반영돼 <모가디슈>가 지난여름 힘겹게 극장가에서 버티며 영혼까지 끌어모은 361만 명의 관객 수를 단 10일 만에 갱신하며 현재 60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직까지 거리두기 비상조치가 취해지고 있고, 새 변이 탓에 극장을 꺼려 하는 관객들마저 염두에 둔다면 가히 지금의 돌풍은 천만 급 기록에 버금간다. 4주 차에 접어들었음에도 관객 수가 크게 줄지 않고, 경쟁작들이 약하단 점에서 아직 더 높은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 공무원 작곡가 마이클 지아치노의 마무리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전 시리즈들과 달리 무사히 삼부작을 잘(을 넘어 역대 급으로) 마무리 지었다. 샘 레이미의 오리지널 심부작은 3편에 이르러서 안 좋은 잡음이 발생했고, 마크 웹의 어메이징 시리즈는 아예 3편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물론 MCU에서의 스파이더맨은 인피니티 사가의 낙수효과와 아이언맨과 닥터 스트레인저의 지원사격을 톡톡히 누린 측면도 있지만,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으로 스파이더맨 본연의 캐릭터 색채를 되찾고, 멀티버스의 단서를 탁월하게 제시하며, 아직 극장에서 대형 이벤트 무비가 얼마만큼의 위력이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냈단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디즈니무원(디즈니+공무원)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클 지아치노가 통일감 있게 삼부작 내내 절륜한 음악을 선사한 공로도 물론 빼놓아선 안 된다.

마이클 지아치노

이게 얼마만큼 힘든(!) 위업인지 알기 위해선 지금까지 27편의 MCU 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온전하게 한 시리즈의 음악을 한 작곡가가 연이어 마무리 지은 게 마이클 지아치노가 담당한 <스파이더맨> 삼부작이 유일하다는 사실만 봐도 얼추 짐작할 수 있다. 마블을 넘어 DC나 소니의 스파이더맨, 폭스의 엑스맨 등 다른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당장 살펴봐도 스태프진들의 이해관계나 제작 일정 등의 문제로 한 영화음악가가 온전하게 시리즈를 책임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함께 ‘다크나이트’ 삼부작을 작업한 한스 짐머도 처음 두 편은 제임스 뉴턴 하워드와 공동 작업을 했으니 온전히 독자적인 작업물이라 칭하기 애매하다) 디즈니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영화음악가이자 현재 할리우드에서 각종 블록버스터를 도맡으며 탁월한 캐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마이클 지아치노는 이 어려운 미션을 훌륭히 완수해냈다.


뭘 좋아할지 몰라 모두 다 불러왔다! 역대 스파이더맨 테마

특히 이번 작품은 멀티버스라는 야심을 가진 채 이전 작품들의 빌런들을 모두 불러 모았듯이 마이클 지아치노가 맡은 음악에서도 역시 과거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유산을 조금씩이라도 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대니 엘프만이 맡은 <스파이더맨> 1, 2편의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옥토퍼스 테마를 비롯해, 크리스토퍼 영이 맡았던 3편의 샌드맨 테마는 물론, 제임스 호너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리자드 테마와 한스 짐머가 참여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일렉트로 테마까지 주요한 빌런들의 테마를 써먹는 강행수를 던진다. 자신이 만든 곡들이 아니란 점에서, 또 여러 작곡가들의 색채가 어지럽게 난입한다는 점에서 영화음악가에겐 다소 부담될 수 있는 선택일 수도 있는데, 지아치노 자신이 팬심(!) 충만한 작곡가이기에 적절히 즐기면서 적재적소에 배치해냈다.

다만 아쉽게도 캐릭터의 비중 상, 그리고 상징성 탓에 각 테마들은 균등하게 사용되지 않는다. 샌드맨과 리자드의 분량이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오토퍼스, 일렉트로에 비해 밀리는 관계로 온전한 테마를 캐치하긴 쉽지 않고,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위한 테마도 한스 짐머가 퍼렐 윌리엄스와 조니 마, 마이크 아인지거, 정키XL 등 쟁쟁한 멤버들과 함께 만든 버전보다는 심플하고 명징한 제임스 호너 버전을 중용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아키노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또 활용하는 건 대니 엘프만의 스파이더맨 스코어와 스타일이다. 메인 빌런 격인 그린 고블린과 반전 매력을 선사하는 닥터 옥터 퍼니스의 테마는 물론, 스파이더맨의 요체라 할 수 있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명제를 깨우치게 만드는 메이 숙모의 죽음 장면에서도 대니 엘프만의 주제부는 작지만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성장한 스파이더맨만큼이나 MCU의 비기가 된 지아치노

아울러 자유의 여신상에서 펼쳐지는 하이라이트 액션 시퀀스에선 대니 엘프만과 제임스 호너 그리고 자신의 스파이더맨 세 테마를 현란하게 오가며 하나로 합쳐져 지난 20년간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함께 해온 오랜 관객들에게 찐한 전율과 감동을 선사한다. 게다가 이 사달(?)이 벌어지게 된 계기가 된 <닥터 스트레인지>의 음악 또한 지아치노가 담당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영화 곳곳에 시타르로 연주되는 독특한 분위기의 테마도 등장하니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만 대략 7편에 달하는 영화음악들이 인용된 셈이다. 너무 많은 테마들의 오용은 자칫 통일감을 해치며 어수선해질 수 있지만, 뉘앙스만 살린 채 슬쩍 넘어가는 터치는 부담스럽지 않게 웃음과 재미를 부여한다. 제작진이 의도한 바인지 모르겠지만 바로 다음 이어질 MCU 작품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음악으로 내정된 이는 대니 엘프만(감독은 샘 레이미)이다.

이런 잔재미를 차지하더라도 마이클 지아치노의 활력 넘치고 격정적인 스코어는 전반적으로 매우 뛰어나다.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전통적인 슈퍼히어로물과 청춘물의 결을 잘 조화시켰던 그는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이르러선 한층 무겁고 다크한 비애감을 머금는데, 그것이 숭고한 희생과 이별의 슬픔, 영웅의 성장이란 주제와 결합되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를 위해 전통적인 할리우드 심포닉 스코어가 내뿜는 화려한 팡파르 기조 아래 대규모 합창과 애수 어린 피아노 솔로, 교회 오르간과 리드미컬한 베이스, 일렉 기타 등 다채로운 스타일을 변화무쌍하게 구사했다. 다정한 우리의 이웃 스파이더맨에게 꼭 맞는 사운드를 재단해 친근한 음악을 들려주는 지아치노의 솜씨야말로 마블의(그리고 디즈니의) 인피니티 스톤 같은 존재다. 그는 <조조 래빗>을 함께 했던 타이카 와이티티가 연출하는 <토르: 러브 앤 썬더>로 올여름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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