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熱血). 뜨거운 피. 뜨거운 피는 곧 뜨거운 마음을 의미한다. 무언가에 꽂혀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을 보고 마는 것. 열혈이란 말은 듣는 모든 이를 뜨겁게 하는 말이지만 어느 정도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것이 미덕인 요즘엔, 어쩌면 구시대적 낭만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가 쿨하고, 이성적인 선택을 지향하는 시점에서도 열혈이길 멈추지 않은 이들이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트리거다. 극장에는 <프로메어>를, 넷플릭스에는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라는 신작을 선보인 열혈 맛집 트리거, 그중 열혈의 낭만을 찬양하는 <프로메어>를 반갑게 맞이했다.
3년 묵힌 묵은지
2022년 10월 20일, <프로메어>가 개봉했다. 엄밀히 말하면 트리거의 신작은 아닌데, 일본 현지에선 2019년 개봉했던 영화가 3년간 ‘존버’한 끝에 마침내 개봉한 것이기 때문이다. 2019년의 노재팬 불매운동과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맞물리며 개봉을 기약 없이 미루다가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로 트리거가 다시 주목받는 지금 개봉한 것. 트리거의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 <프로메어>는 일부 인류가 불을 다룰 수 있는 돌연변이 ‘버니시’가 된 미래, 버니시를 막기 위해 설립된 소방대 ‘버닝 레스큐’와 그런 버니시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매드 버니시’의 이야기를 그린다.
언뜻 범죄 영화나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시놉시스와 달리, <프로메어>는 메카닉 SF를 지향한다. 영화가 중점적으로 그리는 버니시와 버닝 레스큐의 대립은 흥미롭다. 불을 다루는 버니시와 이들의 리더 리오 포티아는 자연스럽게 영화의 대부분을 ‘뜨거운 이미지’로 채운다. 이들에게 맞서는 버닝 레스큐는 불을 끄는 물과 얼음을 사용하기에 차가운 이미지를 대변하지만, 저돌적인 신입 대원 갈로 티모스는 버니시를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희생조차 꺼리지 않는 ‘뜨거운 인물’이다. 불과 얼음의 싸움, 불을 다루는 사람과 불을 끄는 사람. 대립할 수밖에 없는 두 세력의 주역은 공교롭게도 뜨거운 이미지를 공유한다.
영화 중반에 도달하면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고, 리오와 갈로는 힘을 합치게 된다. 세상의 운명을 짊어진 두 사람이 모든 걸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행동, 바로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것이다. 뜨거운 불을 다뤄왔지만 결코 인명 피해를 내고 싶지 않았던 범죄조직 리더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불에도 뛰어들 자신이 있는 구조대원의 결속은 인류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존재의 평화를 가져온다. 대조적인 이미지의 두 세력이 충돌하는 것으로 시작한 <프로메어>는 뜨거운 인물들의 만남과 결속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일단락한다. 목적은 다르지만 ‘사람을 구하리라’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서 리오와 갈로는 서로에게 한계를 돌파시켜줄 뜨거움이자 도를 지나치지 않게 식혀줄 냉매가 된다. 똑같이 뜨거운 이미지를 가지고 물리적 차원의 뜨거움(불)과 심리적 차원의 뜨거움(열혈)으로 분리한 후 이를 다시 봉합시켜 ‘영혼을 태울 정도의 뜨거움’으로 승화시키는 것. 열혈짬이 상당한 트리거의 노하우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반가울 수밖에 없는 그들의 열혈 사랑
이런 트리거의 감성은 사실 올드한 것에 가깝다. 열혈이란 것이 위기가 들이닥쳤을 때 현 상태에서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발현되는 감성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지금 즐길 것을 즐기며 나름의 행복을 영위하는 삶, 어떻게 보면 ‘적당히’가 미덕이고 빠르게 체념하는 것이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요즘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내 살점과 내 마음을 불살라 한계점을 비집고 들어가 끝을 보겠다는 열혈은 분명 현대인의 미덕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열혈의 핵심은 나를 아끼는 것 이상으로 너를 아끼는 것에 있다. 내 인생을 걸고라도 누군가를 구하거나 보호해야 할 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점을 넘어서는 것이 열혈물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다. 너와 내가 무조건 우리인 건 아니므로, 서로 원하지 않으면 서로 갈 길 갑시다하고 쿨하게 스루(through)하는 요즘 관계의 정서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결코 너가 미운 건 아니지만 너 또한 나와 같은 사람이기에, 오지랖 부리지 않고 그의 영역 또한 지켜주겠다는 호의에서 비롯된 적당한 거리는 그래도 너무 많은 ‘우리’가 사라진 결과를 낳았다.
트리거의 작품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너와 우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불태울 준비를 끝낸 주인공이 시청자들 앞에 선다. 그들이 보여줄 것들은 앞서 말한 대로 이미 지나간 시간에나 어울리는 감성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오글거리고, 공감성 수치처럼 부끄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리거는 주요 작품마다 이런 열혈을 꾸준히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처럼 진심이라면, 설령 촌스러운 감성일지라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듯이 말이다.
사실 열혈이라고 포장해서 그렇지, 그런 뜨거움이야말로 세상을 지탱하는 것이다. (몇몇 단어로 이미지가 급변한) 열정이 있어야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듯, 서로를 아끼는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우리의 일상을 좀 더 풍성하게 채워갈 수 있다. 물론 혼자가 편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혼자가 편해도 언제든 외로움이 들이닥친다. 뭐든 공유할 타인을 찾는 신호인 외로움은 우리가 평생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운명임을 각인시킨다. 그럴 때가 오면 나만큼 아끼는 너를 만나고, 함께 나누고 그 뜨거움을 느껴야 다시 혼자로 돌아갈 수 있다. 애니메이션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관계의 뜨거움 또한 감히 열혈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되려든 간에 그 열혈을 양식 삼아 살아간다. 열혈을 품은 트리거의 애니메이션은, 보면 촌스럽단 생각을 하면서도 열혈의 잔여물이 마음을 채워준다. <프로메어>가 인류의 존망을 건 무거운 내용일지라도 상영관을 나설 때 가벼운 발걸음이 되는 건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프로메어>는 완벽한 작품이 아니다. 메카닉 액션은 끝내주고, 소문난 열혈 맛집을 찾아온 관객에겐 더없이 즐거운 시간을 안겨준다. 하지만 뜨거운 두 인물의 화합을 그리기 위해 달리기만 하는 이야기는 주변 인물에게 마음 줄 순간조차 없고, 삼각형과 사각형과 화려한 색감의 액션 장면은 가끔 버거울 정도로 관객을 몰아붙인다. 터놓고 말하면 서두에서 언급한 (진짜 신작) <사이버펑크: 엣지러너>가 훨씬 재미있고 강렬하다.
그럼에도 <프로메어>로 이처럼 상투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건 보는 사람까지 열혈로 만드는 트리거의 열혈 매직 때문이다. 적당히라는 단어를 신봉하는 필자조차 트리거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이렇게 한계까지 달릴 수 있는 확신이 부러워지기까지 한다. 끝까지 달리기엔 많은 걸 짊어진 현실에서 머뭇거릴 때, 트리거의 열혈물은 그 한계를 돌파하는 쾌감을 대리체감시켜준다. 화려한 비주얼과 액션까지 함께 선물하며.
트리거의 열혈물(가이낙스 시절 <천원돌파 그렌라간>부터 <킬라킬>, <SSSS.GRIDMAN>, <프로메어>까지)은 한결같이 큰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그 안의 메시지는 어쩌면 간단한 것인지 모른다. “너를 믿어.” “나를 믿는 너를 믿어.” “너가 믿는 너를 믿어.” 우리는 비록 열혈물의 주인공처럼 ‘한계를 돌파해 모두를 구할’ 일은 평생 없겠지만(없는 게 좋은 거고), 그렇게 진심으로 행동하는 이들의 믿음은 우리도 조금이나마 마음에 담아보았으면 좋겠다.

- 프로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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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마이시 히로유키
출연
마츠야마 켄이치, 사오토메 타이치, 사카이 마사토, 사쿠라 아야네
개봉
2022.10.20.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