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한 탈출 작전 ‘모가디슈’의 음악

<모가디슈>

최근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물론 자국민까지 피난이 가속화되고 있다. 대한민국도 남아있던 교민 1명과 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이 철수했으며, ‘미라클 작전’을 감행해 한국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 390명을 성공적으로 구출해 국내로 이송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이 모습은 정확히 30년 전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남북한 공관원들이 동시에 탈출한 모습과 겹쳐진다.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늦춰져 7월 말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열한 번째 영화 <모가디슈>는 (우연치 않게) 이 실화를 담아내고 있고, 개봉 5주차를 맞아 <블랙 위도우>를 제치고 300만 명을 돌파하며 2021년 대한민국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2020 도쿄 올림픽과 코로나 4차 유행 그리고 뒤늦게 개봉한 <싱크홀>과 <인질>이란 경쟁작들을 상대로 올린 값진 기록이다.

<모가디슈> 촬영 현장

애초 이 영화는 <탈출>이란 제목으로 김용화 감독의 덱스터 스튜디오에서 기획됐다. 하지만 <신과 함께> 속편을 포함한 여러 프로젝트들로 인해 보류됐고 결국 류승완에게 연출 및 공동제작을 제안한다. 김윤석과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등 기존의 류승완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이 캐스팅됐고, 국내에선 최초로 모로코 올 로케를 단행해 이국적인 풍광과 90년대 초 소말리아를 재현한 공들인 미술, 역동적인 카체이싱으로 드라마틱한 실화를 뒷받침했다. 아슬아슬하게 코로나가 확산되기 전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개봉시기였다. 255억 원이란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인 만큼 OTT서비스로 활로를 뚫기보단 과감하게 극장개봉을 강행했다. 전작 <군함도>로 여러 이슈에 시달린 류승완 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어느 정도 부담을 떨쳐 낸 모양새다.


이준익과 류승완 감독의 음악적 파트너 방준석


음악은 2005년 <주먹이 운다>로 처음 류승완과 호흡을 맞춘 이래 <짝패>와 <베테랑>, <군함도>, 그리고 이번 <모가디슈>까지 5편을 함께 한 방준석이 맡았다. 여기에 단편 <타임리스>와 제작사 외유내강에서 만들어진 <해결사>와 <여교사>까지 작업한 인연을 생각해본다면 방준석은 적지 않은 세월 류승완 감독과 꾸준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에 참여해 호흡을 맞춰 온 셈이다. 영화음악가 방준석의 한 면을 여덟 편을 함께 한 이준익 감독이 차지하고 있다면, 또 다른 일면은 바로 류승완이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현방식과 장르는 다르지만 이준익과 류승완 모두 특유의 사람 냄새 가득한 휴머니즘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방준석의 음악을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건지 모른다. 그가 책임진 영화 속 선율은 사람 얼굴처럼 여러 표정들과 감정을 지니고 있다.

방준석, 출처 블랙스프링 페이스북

유앤미블루를 비롯해 밴드 활동의 연장선상으로 자신의 본류를 고스란히 투영시킨 <후아유>나 <…ing>, <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 <고고70>, <변산> 등의 음악 중심의 작품들과 서정적이고 담백한 감정을 건드리는 <너는 내 운명>과 <오직 그대만>, <여교사>, <남과 여>,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같은 드라마 성향 그리고 다크하면서 락킹하고 신명 나는 사운드가 전면에 나선 <짝패>와 <해결사>, <베테랑>, <프리즌>과 <꾼>, <타짜: 원 아이드 잭> 등의 장르적인 터치까지. 이게 지금까지의 익숙한 영화음악가 방준석의 모습이었다면, 최근 7년간은 <사도>를 필두로 <박열>이나 <자산어보>, <조선마술사> 같은 사극은 물론,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는 큰 스케일의 <군함도>와 <신과 함께> 2부작 그리고 <백두산>에 이름을 올리며 변화된 방준석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다.


아프리칸 리듬을 잘 살린 스릴과 서스펜스의 이중주

<모가디슈>

이번 <모가디슈> 음악 역시 확 바뀐 스타일을 들려주고 있다. 영화 자체가 남북한이 한민족임을 깨닫고 눈물 펑펑 쏟게 만드는 뜨거운 감동과 신파적인 색채보다는 탈출 그 자체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만큼 가슴을 울리는 인간 승리의 음악 대신 긴장과 불안, 반목과 의심이 싹트는 스릴러 스코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은 영화들에서 선명하게 들리던 방준석의 장기인 대중적인 멜로디라인의 선율들은 아쉽게도 거의 증발해버렸지만, 기능적인 측면에서 언더스코어링 효과에 충실한 편이니 일장일단이 있다. 방준석 휘하의 김지혜, 김혜연, 현서원 작곡가가 같이 만들어낸 다크하고 묵직한 음악은 이전 작품들에도 참여한 디토 오케스트라의 연주 아래 시련 속에 놓인 인물들의 꺾이지 않는 용기와 단합, 역사적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해낸다.

<모가디슈>

<모가디슈>

무엇보다 소말리아의 혼돈스런 정세를 상징하듯 전면에 나서는 아프리칸 퍼쿠션의 존재감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아프리칸 타악 그룹 쿰바야가 참여해 이국적인 리듬이 만들어내는 서늘하고 긴박감 넘치는 소리들은 영화 전반에 걸쳐 탈출 자체가 지닌 서스펜스와 당시 유엔 가입을 앞두고 경쟁하는 남북한의 경색된 관계에서 오는 긴장, 소말리아 내전이 가진 본질적인 위협을 모두 아우르며 관객들을 조율한다. 애초 신파를 경계한 연출처럼 음악 역시 감상적인 지점을 피해 우직하니 탈출 과정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휘몰아치는 현악 오스티나토와 공감각적인 일렉 사운드가 아프리카 인장과 겹쳐져 만들어낸 파워풀한 스코어는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영상에 딱 맞게 재단돼 상황 묘사에 최선을 다한다. 음악적 재미나 감흥은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모가디슈 탈출을 소리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코로나 시대 만나기 힘든 한국 대중영화 OST의 생존신고

<모가디슈>

물론 차갑고 건조한 긴장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짧은 아프리칸 코러스로 소말리아 현지의 색채를 전달하는 한편, 여성 보이스를 활용해 숭고한 희생과 휴머니즘을 강화한다. 혼과 브라스는 장중한 스케일을 배가시키고, 절제하는 피아노가 이별하는 두 집단의 복잡한 심경과 감정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마치 토머스 뉴먼이 <로드 투 퍼디션>이나 <브릿지 스파이> 등에서 들려줬던 선율처럼 아스라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애상과도 같다. 김용화 감독이 기획했던 각본에선 보다 감성적인 지점이 많았다고 하는데, 재밌게도 감정의 용광로 같았던 블록버스터 <신과 함께> 듀올로지의 음악도 방준석이 맡았다는 점에서 만약 덱스터 스튜디오에서 단독으로 제작됐다면 지금의 영화음악과 얼마나 다른 온도차를 가졌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싶다.

<모가디슈>

코로나로 인해 많은 한국영화들의 개봉이 밀리면서 가뜩이나 괴멸 상태에 가까운 한국 영화음악 시장이었지만 더더욱 한국 영화 사운드트랙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타산성이 맞지 않아서, 혹은 필요성을 못 느껴서, 많은 한국 영화음악들은 대중에게 소개되거나 소비되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도 올해에만 이준익 감독과 함께 한 <자산어보>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계백 감독의 <새콤달콤>에 이어 이번 <모가디슈>까지 꾸준히 음원으로 공개하는 방준석 사단의 사운드트랙은 가뭄 속의 단비 같다. 3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기념으로 발매된 <모가디슈> OST는 그래도 아직 한국 대중 영화 사운드트랙이 희미하게나마 공개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생존신고와도 같은 반가운 음원이다.


사운트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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