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보고 히치콕 영화가 생각났다? 근거 없는 망상이 아니다



<헤어질 결심>

6월 29일, <헤어질 결심>이 개봉했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영화는 이제 관객들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만들며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번 영화는 특히 수사극과 로맨스를 결합한 이야기로 다양한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회자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이 직접 언급한, 혹은 관객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있는 <헤어질 결심>에 영향을 준 작품들을 모아봤다. 영화를 본, 혹은 볼 관객들이라면 <헤어질 결심>을 돌아볼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정훈희 – ‘안개’

“’안개’는 이 영화의 시작”. 영화를 만든 박찬욱 감독피셜이다. 영화광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 영화답게 <헤어질 안개>에서 여러 영화들의 흔적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이 언급한 제1의 모티프는 정훈희의 ‘안개’였다. 박찬욱은 이 노래에서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라는 부분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박찬욱은 단지 정훈희가 부른 안개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안개’라는 곡이 담고 있는 감성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도 정훈희가 부른 버전 말고도 송창식, 윤형주가 부른 트윈 폴리오 버전까지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버전을 사용하자 영화가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느껴져 최종본에선 해당 음악을 빼기로 했다고. 대신 송창식과 정훈희를 설득해서 두 가수가 함께 부른 새로운 버전의 ‘안개’를 녹음해 사용했다.



‘안개’를 탄생시킨 영화 <안개>

사실 이 ‘안개’는 처음부터 영화의 OST로 탄생했다. 소설 「무진기행」의 영화화이자 김수용 감독의 1967년 영화 <안개>의 테마곡이었던 것. 과거 영화의 테마곡을 다시금 <헤어질 결심>에 사용할 수 있는 건 이 노래가 안개의 이미지를 정확히 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헤어질 결심>이 안개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기 때문. <헤어질 결심>은 안개가 많이 끼는 이포를 주요 공간으로 택해 영화의 무드를 끌어올렸다. 노래 가사로도 전하는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라는 메시지, 흐릿한 상황에서도 눈을 뜨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 <헤어질 결심>의 이야기가 다다르는 지점과 일맥상통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

「웃는 경관」만 발간됐다가 2017년에 전권 발간 중인 ‘마르틴 베크’ 시리즈

박찬욱이 두 번째로 언급한 모티프는 스웨덴 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다. 한국 관객에겐 익숙하지 않은데, 형사 마르틴 베크와 그의 동료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일련의 시리즈다. 국내에 처음 발간 당시 마르틴 베크 시리즈 중 4권에 해당하는 「웃는 경관」만 출간됐다. 시리즈 전체가 발간되기 시작한 건 2017년경. 박찬욱 또한 고등학생 시절 이 책을 접했고 오랜만에 시리즈를 접하면서 소설의 형사처럼 속이 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신사적인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극중 해준의 집에 아주 잠깐이지만 마르틴 베크 소설집이 나오기도 한다.

그 생각대로 <헤어질 결심>은 형사가 주인공이지만 한국에서 ‘형사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형사물 하면 생각나는 (특히 할리우드가 좋아하는) 클리셰 ‘좋은 경찰, 나쁜 경찰’ 같은 구도나 정의를 위해 자신마저 위법을 저지르는 극단적인 캐릭터는 나오지 않는다. 말끔한 이미지의 박해일이 형사 해준을 맡게 된 것도 그런 신사적인 이미지와 멜로극의 감성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배우기 때문.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재밌는 점.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페르 발뢰, 마이 셰발이 공동 집필한 작품이다. 두 작가는 연인으로 각 장을 번갈아가며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완성했다. 10권을 집필하던 중 페르 발뢰가 암으로 사망하면서 마이 셰발이 홀로 남은 부분을 모두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헤어질 결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사랑으로 빚은 ‘마르틴 베르’ 시리즈가 <헤어질 결심>의 로맨스를 괜히 떠올리게 한다.


히치콕 (특히 <현기증>)

처음 영화를 봤던 사람들이 <헤어질 결심>에서 떠올린 건 무엇이었을까. 칸 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을 기자 중 일부는 ‘알프레드 히치콕’을 떠올렸다. BBC의 니콜라스 바버는 ‘포스트 히치콕 로맨틱 스릴러'(post-Hitchcock romantic thriller)라는 표현을 썼고, 영화 복원 및 발매사 크라이테리온의 데이비드 허드슨은 ‘히치콕스러운 살인 미스터리'(Hitchcockian murder mystery)라고 설명했다. 둘 외에도 벌쳐의 네이트 존스(Hitchcock Vibes), 버라이어티의 패트릭 프래터, 할리우드 리포터의 데이비드 루니 등이 히치콕을 언급했다.



<헤어질 결심>


<현기증>. 사건을 쫓던 남자가 수사 대상인 여성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특히 이들의 기사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영화는 히치콕의 <현기증>이다. <현기증>은 히치콕의 작품 중에서, 그리고 영화사 전체에서도 특기할 만한 명작으로 꼽힌다. 과거 사건으로 고소공포증을 앓던 전직 형사가 자신이 살리지 못했던 여성과 똑같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수사의 대상을 쫓던 도중 애정을 느끼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여성 주변에 맴도는 어떤 사건의 전조들. 이런 점에서 (실제 작품 분위기는 꽤 다른데도) <현기증>과 <헤어질 결심>이 겹쳐지는 것인 듯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현기증>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건 박찬욱 본인이 <현기증>의 광팬이기 때문. 박찬욱은 이전 인터뷰에서 <현기증>을 보고 “그런 식으로 영화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다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어서 감독의 꿈을 가졌다 밝힌 바 있다. <헤어질 결심>에서 <현기증>의 향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의도를 넘어 박찬욱 감독 본인의 애정 때문일 수도 있다. <현기증>뿐만 아니라 해준이 서래를 관찰하는 장면들은 히치콕의 작품이자 ‘엿보기 대표 영화’ <이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현기증>

<밀회>



<헤어질 결심>


<밀회>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과 그의 오랜 파트너 정서경 작가가 공동 집필했다. 두 사람은 한 컴퓨터에 두 개의 키보드를 연결해 함께 글을 쓰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정말 두 사람이 한몸처럼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헤어질 결심> 집필 전 박찬욱이 정서경에게 미리 봤으면 좋겠는 작품을 딱 한 편 언급했다고 하는데, 그게 1945년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밀회>였다. 

<밀회>는 노엘 코워드의 단막극 「스틸 라이프」를 원작으로 각자 가정이 있는 남녀가 친구처럼 만나다 마침내 사랑을 느끼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끝내 헤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그린다. 아마 <밀회>나 <헤어질 결심>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도 이 간단한 스토리를 딱 읽어보면 ‘헤어질 결심’이란 표현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으리라. 

물론 <밀회>는 <헤어질 결심>처럼 미스터리한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 로라(세실리아 존슨)와 알렉(트레버 하워드)은 이상한 사건으로 만난 사이도, 형사와 용의자 같은 기묘한 관계도 아니다. 둘은 그저 우연찮게 기차역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진 사이. 그런 부분에선 <밀회>와 <헤어질 결심>이 일면식도 없을 것 같지만, 원작자가 동업자에게 처음 언급한 작품이니 <헤어질 결심>의 여운을 다시금 떠올려보고 싶다면 <밀회>를 꼭 챙겨 보면 좋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Must Read

Related Articles

Enable Notifications OK No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