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없는 삶이더라도 축복받을 수 있을까? 송강호의 칸 수상이 빛나는 ‘브로커’

생일 축하합니다.

축하의 의미조차 몰랐을 시절부터 지금까지, 누구나 일 년 중 단 하루만큼은 그날의 온전한 주인공이 된다. 생일이라는 이 연례행사의 주인공은 좋든 싫든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축하를 받으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무 생각 없이 부르던 생일 노래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작 생일의 주인공은 태어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사춘기 중학생의 말을 빌리자면 그 누구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애석하게도 삶의 단맛보다는 짠맛에 더 익숙한 것이 오늘날의 우리들 모습이다. 과연, 이렇게 보잘것없는 삶의 주인인데도, 우리는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축하받을 수 있을까?

이 의문을 그 누구보다 빨리 품어온 이들 중 하나는 아마 보육시설의 아이들일 것이다. 한창 생일파티와 선물에 들떠야 할 나이에 그들은 “과연 나는 태어나길 잘한 것일까?”라는 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속에 품으며 스스로의 삶에 대한 당위성을 의심하고 부정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한국 작품 <브로커>는 그들을 만난 감독과 아이들의 순수한 의문으로부터 출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천천하지만 확실하게 전한다.

시작은 히로카즈의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베이비 박스의 존재와 역할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브로커>를 위해 모인 다섯 배우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 히로카즈에게 다섯 명의 배우는 각각 다른 경로로 알게 된 이들이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배우들에게 각자의 사연이 부여된 후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그가 그려내는 가족 이야기는 조금 특별하다. 피를 나누지 않았음은 물론, 서류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 어떤 연결고리도 없는 이들은 하나 둘 모여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나’며, 어떠한 연유로 해체되기도 한다. 사회의 도덕적 잣대로 비난받는 이들은 가끔 지나칠 정도로 따뜻하고 인간미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가 하면, 반대로 도덕적이어야 할 인물은 의외의 냉혈한으로 보인다. 타 영화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 소재, 예를 들어 범죄와 같은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는 히로카즈의 영화 속에서 그저 극중 부수적 요소로 잔잔하게 흘러갈 뿐이다. 전체적인 영화는 하나의 큰 사건과 그 해결 과정이 아닌, 그 여정을 통해 성장하는 인물들에 중점을 두며 전개된다.

<브로커> 속 인물들은 태어나자마자 베이비 박스에 놓이게 된 아기 우성만큼이나 주어진 삶, 생명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한 듯 보인다. 각자의 출생과 성장 과정에 대한 자세한 비하인드는 설명되지 않았지만 모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까’ 하는 생각은 적어도 한 번쯤 해봤을 법한 태도와 대사가 극 사이사이 녹아 있다. 하지만 히로카즈가 그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생은 아름답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시답잖은 위로나 삶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그렇다고 히로카즈는 평소와 같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돌려 말하기를 택하지도 않는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소영(이지은)을 통해, 그리고 소영에게는 해진(임승수)의 입을 통해 극중 인물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보는 관객들에게 이 뚜렷한 한마디를 전한다.

평소 잔잔한 분위기로 극을 이끌고, 관객들이 직접 영화가 담은 의미와 메시지를 추측하게끔 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로서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은 의외의 선택이지만 그가 시사회 이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 말을 듣는다면 납득 가능할 것이다.

“<브로커> 취재를 위해 보육시설 출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들은 줄곧 ‘내가 정말 태어나길 잘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나 불안을 안고 어른이 되었던 이들의 모습과 그 감정을 접한 후 들었던 생각은 ‘그에 대한 책임이 과연 아이를 버린 어머니에게만 있는 것인가?’였다. 이들이 대면하는 본질적인 문제와 진정한 책임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를 포함한 사회와 어른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극중 보육원 출신으로 나오는 동수(강동원)과 해진은 아마 어머니의 목소리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미 세상에 나온 이상 그 누구도 태어난 것을 무를 수는 없다. 아이들과, 한때 그 아이들 중 한 명이었을 어른들은 태어난 이상 어떻게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느슨한 듯 치열한 삶의 여정에서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르고 자책을 반복하며, 인생에 순응하고 만족하는 날보다 주어진 삶에 의문을 가진 나날이 더 많은 채로 눈을 감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손가락질도 받고, 그렇게 해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남들에겐 정작 큰 의미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남기는 발자취가 우주의 먼지만큼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느끼는 인생이 남들이 말하는 것만큼 아름답거나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아도, “가치 없는 삶이 과연 있을까?”

그러니까, 태어나서 마주한 세상은 생각보다 더 쓰고 험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전하는 말은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줘서 고마워.

CJ ENM/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다음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전한 <브로커>의 연출 의도다.

<브로커>를 준비하며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고 시설에서 자랐는데,

그중 몇 명의 아이들은 ‘과연 나는 태어나길 잘한 것일까?’라는

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명확한 답을 갖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쉽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그들에게 단언할 수 있는가.

너 같은 건, 나 같은 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안팎의 목소리에 맞서서

강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그 아이들을 위해 나는 어떤 영화를 제시할 수 있을까.

작품 제작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언제나 이 물음이었다.

<브로커>는 똑바로 생명과 마주하고,

등장인물의 모습을 빌려, 나 자신의 목소리를 똑바로 전달하고자 했던 작품이다.

기도와 같은, 바람과 같은, 그런 작품이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

<영화 제작 비하인드>

약 6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송강호와 첫 미팅을 가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언젠가 그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히 생각만 해오다 한 신이 떠올라 영화 제작을 결심하게 됐다고 전한 바 있다. 다음은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전한 해당 신에 대한 설명이다.

“언젠가 송강호 배우와 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베이비 박스에서 아기를 꺼낸 송강호가 자상한 미소로 아이에게 말을 걸면서도 결국 아이를 팔아버리는 신이 문득 떠올랐다. 선악이 혼재되어 있는 존재로서 송강호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씨네플레이 문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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