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아들이 살인을? 원빈-김혜자가 그려낸 비릿한 진실, 영화 <마더>

IMDB의 이 이미지가 분위기의 큰 부분을 대변한다

*주의 :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인 <마더> (2008)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준(원빈 분)과 마더(김혜자 분)의 연대기를 순서대로 짚어보자.

아이가 5살도 되기 전, 남편은 처자식을 내버려 두고 도망을 갔거나 혹은 사망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살이가 힘들었던 마더는 어린 도준이에게 농약을 탄 박카스를 먹이고 따라 죽으려고 했다. 강력한 농약인 그라목손 대신 약한 론스타를 먹였던 덕인지 도준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게 됐다. 그때부터 세상에 존재한다는 좋다는 건 죄다 먹이고 소중하게 키웠지만, 도준에겐 장애가 생긴 것 같다. 또한 마더는 야매 침술을 배워 아이를 고쳐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준은 회복되지 않았고 동네에서 바보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마더는 아들에게 강조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바보라고 놀릴 땐 참지 말라고.

대체 얼마나 더 망가져야 못 생겨지는 겁니까?

엄마의 죄책감

누추한 동네를 지나는 벤츠 차량이 도준을 치고 골프장으로 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도준은 그 차에 탔던 대학교수들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로 간다. 그중 하나가 도준에게 바보라고 말하자 순진하기만 했던 도준은 번개같은 속도로 멱살을 잡는다.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던 소녀인 아정(문희라 분) 또한 도준에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며 ‘바보’라고 외쳤다가 끔찍한 죽임을 당한다. 엄마가 강하게 대응하라고 늘 강조해왔던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마더는 그 옛날, 아들에 대한 살인미수가 씻을 수 없는 죄의식으로 남아있다. 그것이 도준으로 하여금 과잉 방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몇 십년 후, 결국 두 건의 살인을 낳는다.

기억과 망각

<마더>는 기억의 재건과 망각의 노력이 부딪히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마더는 도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단기적으로 잊혀진 어떤 기억을 깨우려고 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어릴 적 트라우마가 건져지고, 기억을 찾아주려고 애쓰던 마더는 자신의 모든 정념을 잊으려 하며 끝을 맺는다. 힘들었던 시절 자신의 선택이 오늘의 괴로움을 만들었다는 인과관계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창살과 유리창 등, 괴리된 마음을 경계적 장치로 능숙하게 포착한다.

작은 망각

오프닝에서 등장하는 마더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으며 춤을 춘다. 이것은 영화의 구성상 오프닝일 뿐이다. 그러나 실은 도준의 살인을 목격한 고물상 노인을 죽인 마더가 길을 헤매다 도착한 억새풀 밭에서 춤을 추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것이 물론 실제 서사상에서 춤을 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살인 용의자의 정체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자신이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잊기 위한 몸부림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작 지점의 이 춤은 망각을 위한 어떤 제례라고 할 수 있다.

춤을 추는 마더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입을 가린다. 거기에 타악기로 시작하는 음악 (track01 : prolog)은 감미로운 기타 선율을 싣고 희비극의 묘한 교차감을 실으며 흘러간다. 이윽고 <마더>라는 오프닝 타이틀이 뜨는 마더의 원샷 화면에서는 카메라를 물끄러미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녀가 손을 숨기고 있다. 억새풀 밭에 당도한 마더가 피 묻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시점샷과의 대구를 생각해보면, 그녀는 손을 이용하여 진실을 가리거나 범죄를 숨기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괴로운 표정에서 감당 못 할 어떤 감정이 전달된다. 그렇게 그녀는 작은 망각을 시도한다.

마더는 고물상 노인의 피를 닦으며 읊조린다. ‘엄마. 나 어떡해..’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큰 망각

마냥 여려서 물방개 한 마리 못 죽이고, 도움이 필요하기만 했던 사랑스러운 도준이. 엄마의 젖을 만지고 자던 도준은 구치소에서 나와서는 등을 돌리고 잠든다. 그리고 벤츠 교수들과의 소동으로 관가에 갔다 와서 엄마가 뜯어주던 닭을 먹고, 엄마가 떠다 준 물을 마시던 도준은 이제 능동적으로 식사하며 의견을 낸다.

종팔이 걔 있잖아, 왜 옥상 위에다 올려놨을까? 시체를.. 그 높은 데다. 내 생각엔.. 잘 보이라고 그런 거 아닐까? 얘 지금 피 질질 흘리고 있으니까 빨리 병원 데려가라고. 그래서 사람들 제일 잘 보이는 데다 올려놓은 거지. 그렇지, 그런 거지.

아들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능청을 떠는 것일까? 저 녀석은 내 속을 알기나 할까. 내가 저지른 살인에 대한 가책과 경중은 지금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내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만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다.

이윽고 마더는 관광버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군것질거리를 잔뜩 받는다. 동시에 고물상 노인의 살해 현장에서 잃어버렸던, 그을음이 묻은 침통을 받는다. 이런 걸 잃어버리면 어떡해..라는 아들의 행동은 분명 엄마의 살인을 안다는 것이었다. 이에 마더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배우 김혜자는 <마더>의 시나리오 지문에 적힌 대로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터미널을 헤매다가 버스에 올라탄다.

만약 이 모자 모두가 진실은 묻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것은 또 다른 결백이 될 수 있을까? 그러다 어느 날 심연을 뚫고 올라오는 비릿한 실체가 비위를 뒤집어 놓게 되면 그것은 과연 감당이 가능할까? 마더는 나쁜 일, 끔찍한 일, 속병 나기 좋게 가슴에 꾹 맺힌 걸 깨끗하게 풀어주는 자신만의 침자리를 알고 있고, 그것을 자신에게 시술한다.

그렇게 해서 망각하게 되는 것은 어느 지점의 사실일까? 그녀의 야매 침술이 어느 지점의 기억을 지우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도준의 살인, 혹은 아들이 자신의 살인을 안다는 사실일 수도 있으나 몇 십년전 아들에게 농약 박카스를 먹였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도준을 사랑했던 기억이 원천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엔딩에서 시도하는 망각은 오프닝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훨씬 거대하고 뾰족하다. 이제, 서로의 과거를 아는 두 살인자는 한지붕 아래에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 이럴 때 거짓 위로라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있어야 제정신으로 살 수 있다.

맞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겨우 여기까지다.

엔딩컷을 찍고 촬영감독과 감독은 유일하게 하이파이브를 쳤다고 한다

국가대표 감독의 영화, 그리고 관객 스코어

이윽고 망각이라는 제례를 위해 마더는 다시 한 번 춤을 춘다. 그녀는 춤을 추고 있는 수많은 엄마들 사이로 들어가게 되고, 실루엣끼리 섞여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마더(김혜자 분)라는 개인이 추던 독무가 엄마들이라는 군무가 되며 이 이야기는 개인이 아닌 모든 엄마들에 관한 것이라는 암시를 던지며 엔딩을 맞이한다.

모성이라는 신화의 민낯을 보여주는 이 그늘진 이야기는 최고의 캐스팅과 국가대표 감독의 천만영화 이후의 차기작이라는 기대를 안고서도 301만이라는 비교적 적은 수치를 기록하며 극장에서 내려갔다. 불편한 감정은 대중영화에서 금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음험하고 음습하긴 해도 이런 이야기가 천만을 넘어갈 수 있다면, 우리 관객들도 스스로의 심연을 물끄러미 직시할 수 있는 어떤 준비가 됐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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