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언제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부모의 말과 행동은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 속 조각조각으로, 순간순간으로 남아있는 어린 시절은 훗날 아이가 자라면 행복한 추억이 될까, 잊고 싶은 트라우마로 변할까? 아이는 그 시절 훨씬 젊었던, 아니 어렸던 부모의 모습에서 무엇을 발견할까? 어쩌면 영화 <애프터썬>이 단초를 줄지도 모른다.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이자 감독인 서른다섯의 신예 샬롯 웰스가 만든, 데뷔작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영화에서 말이다.
지잉, 치익. 영화는 캠코더를 감고 멈춘 후 재생하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모습을 담은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20년 전의 아빠 캘럼(폴 메스칼). 서른한 살이 된 성인 소피(실리아 롤슨-홀)가 우연히 20년 전 아빠와 함께한 여행을 기록한 캠코더의 영상을 틀어 본 것. 때는 ‘마카레나’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1990년대, 곧 서른한 살 생일을 맞이하는 아빠와 열한 살 딸 소피(프랭키 코리오)가 함께 떠난 튀르키예 여행에서 서로가 서로를 찍은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열한 살 소피는 어머니와 런던에서 살고 있지만, 헤어진 아빠와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 튀르키에 휴가로 오랜만에 만난 아빠가 발코니에서 이상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걸 보며 소피가 묻는다. “아빠가 열한 살이라면 무얼 하고 싶을 것 같아?”라고. 즐거워만 보이던 아빠의 움직임이 멈추고, 곧이어 아빠는 프레임 밖으로 나가려 한다. 좀 더 자세히 아빠의 얼굴을 보려는 마음에 줌을 당겨보지만, 이미 고개를 돌려버린 아빠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다.
어둠에 가려진 아빠의 옆 모습에서 마침내 화면은 멈춰버린다. 시간과 공간의 정지. 멈춰 버린 스크린은 곧이어 조각조각 분할된 픽셀들을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서로 다른 크기의 네모난 조각들로 빠르게 되감기 된다. 마치 <이터널 선샤인>(감독 미셸 공드리, 2005)에서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의 기억 조각들을 연상시키면서.
한없이 따사로운 색감의 포스터를 보며 부녀의 추억으로 남은 여름 바캉스 이야기인 줄로만 짐작했던 영화는, 그렇게 불안한 조짐을 드리우며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불안함의 첫 번째 축은 아빠 캘럼이다. 이혼 후 만나기 힘든 딸을 위해 열심히 일해 이국적인 땅 튀르키예 여행을 준비할 정도로 헌신적인 아빠 캘럼은, 물론 좋은 아빠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노출한다. 단 한 번도 고향 스코틀랜드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으며, 열한 살 생일은 가족 중 아무도 기억해주지 못했다는 비밀을 고백하며.
캘럼은 혹시나 나쁜 영향을 끼칠까 봐 딸이 잠든 후에야 발코니에 나가 담뱃불을 붙이는 등 사려 깊은 어른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징후는 영화 곳곳에서 발견된다. 태극권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뜨거운 감정을 다스리는 모습에서부터, 딸 소피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밤바다로 뛰어드는 충동적인 장면까지. 참을성 있고 매력적인 이 젊은 아빠는 뭔가 알 수 없는 슬픔에 휩싸여 있다. 튀르키예의 한 카펫 상점에서 그가 카펫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이유도 짐작할 수 없다. 어렴풋이 캘럼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도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소피도, 관객도 그의 우울함의 근원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캘럼은 그것을 오랜만에 만나는 딸에게 보이지 않도록 고군분투할 뿐.
또 다른 불안감의 축은 다름 아닌 소피에게서 보인다. 아빠가 흔들리는 성인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소피는 아빠의 딸에서 소녀로 그러니까 둥지를 박차고 날아가기 직전의 새의 불안함을 표출한다. 휴양지에서 만난 또래보다 몇 살 더 위인 오빠, 언니들과 함께 포켓볼을 치고, 술자리에 앉아 분출하는 청춘의 욕망을 목도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는 시기가 온 것. 그러면서 돈이 부족해 마음껏 먹을 것, 마실 것을 주문하지 못하는 아빠의 상황도 인식하게 된다. 마음이 뾰족해지면서 마냥 자신을 따뜻하게만 대해주던 아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도 던진다.
하지만 소피의 흔들림은 그리 불안하지 않게 느껴진다. 완전한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숙녀가 되지도 못한 경계인으로 소피는 이 흔들림을 소피는 경험해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불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해 하는 아빠를 위로할 줄 안다. 아빠의 생일을 축하하는 아이만의 이벤트로, 또 다툼 이후 유황 온천의 진흙으로 아빠를 마사지해 주면서.
실수로 물안경을 잃어버리고는 아빠의 눈치를 보며 비싼 물안경을 잃어버려 미안하다고 말하거나, 주변 관광객들에게 몰래 귓속말을 건내며 아빠의 서른한 번째 생일 축하 이벤트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다. 또 “아빠랑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게 좋아. 비록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진 않더라도 같은 태양 아래 있으니까 같이 있는 거나 다름없잖아?”라는 말로 아빠를 기어이 감동시키고야 말면서 말이다.
부녀의 20년 전 한여름 바캉스 이야기 <애프터썬>은 시종일관 관객들이 마치 나른한 튀르키예의 여름 해변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때로는 따뜻함이 넘쳐나는 오렌지톤 화면 속으로, 색색의 패러글라이더가 스크린 중간중간을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경쾌하게 지나간다. 불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분위기에서는 특히 푸른톤의 차가운 화면으로 대비시켜 감정의 변화를 표현했다. 촬영감독 그레고리 오케의 이 몽환적인 촬영 기법은 20년 전 기억을 소환해낸 소피의 감정과 당시 느껴지지 않았던 캘럼의 불안함을 동시에 강조한다.
영화가 관객들과 강력한 친밀감을 형성하게 만드는 데는 음악의 힘도 한몫했다. 귀를 가득 채우는 1990년대 음악들이 영화 적재적소에서 배치됐다. 리조트의 가라오케에서 소피가 어색하게 홀로 부르는 노래는 REM의 ‘Losing My Religion’이다. 퀸의 ‘Under Pressure’의 애절한 가사는 스트로보 조명으로 파편 같은 꿈의 조각에 침투한다. 블러의 ‘Tender’는 <애프터썬>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뒤틀리게 전달한다.
그러니까 <애프터썬>은 기억과 트라우마, 그리고 그것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을 각기 다른 색과 질감의 화면으로 제시하며 관객의 정서를 자극한다. 영화는 소피의 유년 시절 여행에서 일어난 일과 느꼈던 미묘한 감정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샬롯 웰스 감독이 핵심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기억과 트라우마에는 사각지대가 있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 이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20년이 훌쩍 흘러 가정을 꾸린 소피가 맞닥뜨린 어려움을 풀 수 없었을 때, 그에게 추억으로 남은 튀르키예 여행 테이프를 돌려본다면? 지금 자신의 나이였던 20년전 튀르키예에서의 아빠에게서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성인이 된 소피가 20년 전 영상에서 마주한 것은 그가 그동안 차단해왔던 어두운 순간들이다. 이해할 수 없는 아빠의 표정과 행동. 불안해만 보이는 아빠지만 그 모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아빠의 얼굴. 사랑한다는 것만은 잊지 말아 달라는 포스트카드를 썼지만, 아이에게 최고의 물질과 여유를 제공해주지 못한 좌절 그리고 언젠가는 아이를 혼자 두고 세상을 떠나야한다는 두려움에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내는 아빠의 뒷모습까지.
기억에는 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우리의 뇌는 의도적으로 힘들었던 순간을 기억에서 삭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힘들었던 기억이 현재의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기억은 사실을 왜곡한다. 그렇기에 <애프터썬>에서 샬롯 웰스 감독은 뇌가 당시의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어두운 한 켠(사각지대)으로 밀어 넣어버렸던 기억을 다시 꺼내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자,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아이는 언제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부모의 말과 행동은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 속 조각조각으로, 순간순간으로 남아있는 어린 시절은 훗날 아이가 자라면 행복한 추억이 될까, 잊고 싶은 트라우마로 변할까? 아이는 그 시절 훨씬 젊었던, 아니 어렸던 부모의 모습에서 무엇을 발견할까?
<애프터썬>의 아빠 캘럼이 그러했듯, 우리의 부모님 역시 우리의 어린 시절을 최고로 만들어 주려 노력한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아빠와 함께 했던 서늘한 가을 캠핑장의 공기, 통통배를 타고 떠난 새벽 낚시 여행, 아니 그저 아빠와 함께 했던 동네 놀이터에서의 추억까지. 그리고 우리의 뇌는 그 기억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기록한다. 아름다운 형태로 남은 기억은 우리가 힘이 들 때 종종 꺼내어 볼 수 있는 추억이 된다. 하지만 수면 아래로 꽁꽁 감춰버린 어두운 기억은 트라우마로 발현해 우리의 실존과 현실을 불안하게 만든다.
<애프터썬>은 2022년 칸 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자마자 주목받았다. 2023 영국 아카데미(BAFTA) 4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전 세계 영화제 5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1월 19일 IMDB 기준). <더 가디언>과 <타임>, <뉴욕타임스> 그리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애프터썬>을 ‘올해 최고의 영화 1위’로 꼽았다. 샬롯 웰스 감독이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스크린에 그린 <애프터썬>은 2022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프랑스 터치상을 수상했다.
<애프터썬>에 그토록 많은 관객이 공감한 것은 각자의 기억 속에 여러 형태로 남아있는 아빠를 마음속으로 다시 소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지만, 자식 앞에서만은 그 흔들림을 보이고 싶지 않던 아빠의 정서적 파고를 알게 되면서, 영화 속 성인 소피처럼 그 시절의 아빠를 껴안아줄 수 있는 기회를 만났기 때문은 아닐까?
아이에게 부모는 첫 번째 우주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부모의 영원한 신비. 소피가 아빠의 캠코더를 빌려 발코니에 서 있는 아빠를 찍을 때도 몰랐던, 아빠가 자신이 사랑하는 딸에게 숨기고자 했던 자기 세계의 일부는, 아이가 성장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드러나게 된다. 온화하며 사색적이며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애프터썬>이 때로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불안한 느낌을 주는 이유다.
영화 제목인 ‘애프터썬’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썬크림이다. 강한 햇살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바르는. 영화에서 아빠는 딸에게 애프터선을 발라준다. 이제는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딸을 돌려 앉혀 골고루 잘 발라준다. 터키의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딸의 피부가 그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주일이라는 휴가 동안 그가 반복해서 발랐던 애프터썬은 그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함을 넘어, 다시 아빠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딸이 겪을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한 마음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뉴욕대 출신인 샬롯 웰스 감독은 첫 데뷔작을 터키라는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고작 두 명의 배우와 촬영했다. 심지어 배우 중 하나는 연기를 해본 적 없는 아역 배우다. <애프터썬> 이전에 찍은 세 편의 단편을 본 <문라이트>(2016) 배리 젠킨스 감독이 깊은 인상을 받아 이번 데뷔작 제작을 맡았고, 그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이 경이로운 데뷔작이 부디 감독의 전성기가 오기 전에 찍은 영화이기를. 그리하여 그의 다음 영화들을 우리가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기를. 마침내 그의 영화들로 우리가 더욱 스스로와 주변을 사랑하며, 과거의 부모와 화해해 온전한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