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저명한 근대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1880~1977)의 말년을 그린 <모리의 정원>은 독특한 영화다. 일단 백발에 흰 수염을 하고선 요정이나 쓸 법한 모자를 눌러쓴 주인공 구마가이 모리카즈(야마자키 쓰토무)의 신선같은 외양과 30년째 집 밖을 나가지 않은 그의 괴짜스러운 면모가 시선을 붙든다. 이렇다 할 사건이나 뚜렷한 기승전결도 없는데 몰입하게 만드는 것도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이다. 영화 초반 모리카즈가 정원의 곤충이며 돌, 풀 따위를 관찰하는 장면이 무려 7분간 이어짐에도 사소한 그의 몸짓에 이상한 인력이 있어 집중하게 된다. 조금 느슨할라치면 모리카즈의 아내 히데코를 연기한 키키 키린의 엉뚱한 유머가 치고 들어와 몇 번이고 돌려보게 되는 명장면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미덕은 현대사회가 규정해 놓은 이분법적 단어 쓰임을 돌아보게 한다는데 있다.
느려도 바쁠 수 있다.
모리카즈는 매일 아침 식사를 끝내면 아내 히데코와 바둑을 둔 뒤 길을 떠난다. 먼 길이라도 가는 듯 사뭇 비장하지만, 그가 매일 향하는 곳은 그의 집에 붙어 있는 작은 정원이다. 사마귀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고, 돌에게 ‘어디서 날아오셨나요?’ 묻느라 여념이 없는 화가는 때로 자신의 정원에서 길까지 잃고 헤맨다. 이 순간 그는 느리지만 세상 누구보다 바쁘다. 이 문장은 언뜻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류의 형용모순의 언술처럼 들린다. 느리다는 건 할 일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영화는 꼭 그렇지 않다 말한다. 정원에 나무를 심고, 연못을 파내려 가며 자연에 대한 성실한 탐험을 멈추지 않는 모리카즈는 자신의 삶을 그 누구보다 충실히 살아내는 중이다. 세속의 잣대는 바쁘게 돌아가는 삶에는 영광을, 느린 삶에는 불안을 들이민다. 하지만 세상에는 바쁘기만 하고 텅빈 삶도 있고, 느리지만 충실한 삶도 있다.
‘은둔’이 단절은 아니다.
이렇게 늙은 화가는 30년간 정원이라는 자신만의 소우주를 지킨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과 단절하며 획득한 전리품은 아니다. ‘은둔의 화가’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모리카즈와 히데코에게 매료되어 이들을 찾는 사람들로 노부부의 소우주는 다채롭게 물든다. 유명 화가가 쓴 간판을 얻기 위해 먼 곳에서 달려온 여관 주인부터 모리카즈를 존경해 그의 집을 드나드는 사진작가 후지타(가세 료)와 그의 제자 가시마(요시무라 가이토), 그 외의 인물들까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오키타 슈이치 감독은 ‘모리카즈의 정원이 실제로는 세로로 긴 정원은 아니었지만 여러 사람이 집에 찾아오는 영화로 하고 싶어 숲의 안쪽까지 모리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이미지를 그렸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사진작가 후지타와 모리카즈의 교감은 화가의 은둔이 단절이 아님을 더 명확히 한다. “개미 이 녀석은 왼쪽 두 번째 다리부터 움직이기 시작하더이다.” 화가는 땅바닥에 바짝 머리를 붙이고 하염없이 개미떼를 보더니 그를 찾은 사진작가에게 이 말을 건넨다. 노인네 집 앞 뜰 개미의 다리 운동에 대해 젊은 사진작가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모리카즈를 이해하기 위해 후지타의 카메라가 끊임없이 그를 향하듯 화가의 심상을 헤아리기 위해 젊은 사진작가는 머리를 바닥에 모로 놓고 개미떼를 관찰해 본다. 세대 간 상호작용의 암시는 서로를 뷰 파인더로 담는 후지타와 모리의 카메라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후지타를 따라온 그의 제자, 가시마(요시무라 카이토) 역시 모리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의 정원에 ‘다시 오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개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집’을 키우는 것은 아니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노부부의 대화는 이들이 일찍이 자식을 잃었음을 암시한다. 스쳐 지나가는 한 줄의 대사로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모리카즈가 은둔하며 정원 안의 연못을 만들기 시작한 때가 30년 전인 것을 유추해 봤을 때 아마도 부부는 그 시점에 자식을 떠나보냈으리라. 그가 정원으로 침잠한 것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에 대한 일종의 도피였을 것이며, 그렇기에 그의 정원은 그에게 더욱 특별했을 터였다.
이 특별한 정원이 변화하는 인간 세상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모리카즈 집 앞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그늘이 생기게 된 것이다. 정원을 지키려는 일군의 미술학도들이 반발하며 잔잔하기만 하던 영화에 갈등과 대립이 등장하는 듯 싶더니, 엉뚱하게도 히데코와 조카는 아파트를 짓던 인부들을 초대해 만찬을 베푼다. 모리카즈는 한술 더 뜬다. 그는 크게 절망하는 기색 없이 30년간 파서 만든 구덩이 아래 작은 연못을 메우기로 결심한다. 유일하게 해가 비치는 그곳에라도 새싹이 자라도록. 그렇게 늙은 화가는 바깥 세상과 공존하며 정원이라는 작은 세계를 지켜낸다.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고집하는 것이 아집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작은 소동에 대처하는 모리카즈를 통해 보여준다.
소박하고 단순해도 넉넉할 수 있음을
많은 이들이 월급에 기대어 먹고 살며 도시의 아파트나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식구를 먹여 살리는 일뿐 아니라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사람들을 살기 힘들게 한다. 그래서 자기를 옭아 매고 있는 이 답답하기 짝이 없는 데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기를 꿈꾼다. 삶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식구들과 친구들의 걱정 어린 충고와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발길을 가로막는다. 그러기에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많은 세월을 보내고,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조화로운 삶> 15p.
모리카즈와 동시대를 산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부부가 쓴 책 <조화로운 삶>은 ‘단순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그 시대에도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00년 전 고민의 결이 지금의 내 것과 이렇게나 닮아 있다니, 주류 사회에서 이탈한다는 두려움은 이렇게나 끈질기게, 이렇게도 강력하게 100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이어진다.
<모리의 정원>은 정원 밖을 벗어나지 않는 영화적 설정을 통해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고 진리를 깨닫는 것이 공간이나 시간 혹은 돈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느리게 자연을 살피고, 은둔하며 소통하고, 자신의 삶의 철학은 지키돼 공존하는 영화 속 인물들은 다른 종류의 삶도 그리 나쁘지 않다 우리를 설득한다.
이런 영화적 설득의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 모리 부부나 니어링 부부처럼 소박하지만 넉넉한 삶을 꾸릴 내공과 용기가 생기리라. 단순한 삶을 꿈꾸지만 아직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영화 <모리의 정원>을 추천하는 이유다.
키키 키린은 암 투병 중 이 영화를 촬영했고, 2018년 세상을 떠났다. 생전 키키 키린의 엉뚱하고 귀여운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OTT 구독료가 아깝지 않다. <모리의 정원>은 현재 넷플릭스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