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세대에서 보여줘야 할 것들, 다음 세대가 봐야 할 것들 <범죄와의 전쟁>

금자씨의 백선생을 모십니다.

<기생충> (2019) 속의 아버지 (송강호 분)는 발버둥쳤다. 부지런히 살았지만 자본주의라는 매운 맛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안겨주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사회에 자신을 맞추는 것 이외엔 생존의 방법을 건질 수 없는 연체동물처럼 살게됐다. <국제시장> (2014)의 아버지는 비록 전체주의에 속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행위 자체가 사치인 환경에서 살았지만, 스스로나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의 아버지(최민식 분)는 자식을 위해 부정히 한 몸 던지며 연민을 뿜는다. 그러나 거기서 한 발 더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느와르, 그리고 코미디

<범죄와의 전쟁>은 분명 갱스터 느와르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인 최익현 (최민식 분)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야유와 조롱을 품었다는 면에서 코미디의 요소가 아주 강하다. 언뜻보면 포스터의 카피처럼 폼나게 살아야 될거 아이가? 하는 일반인 익현이 가오를 잡기 위해 깡패가 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는 일반인 신분이었던 세관직원 시절에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이다. 여기서 점점 깡패의 세계에 발을 담궈가며 더욱 타락할 줄 알았다. 그러나 파트너인 형배(하정우 분)와의 마찰을 제외하면 가도를 달리던 그는 결국 자기만의 방법으로 성공한다. 그가 보여주는 혈연과 지연의 기술은 계속해서 웃음을 동반한다. 그리고 익현이 포섭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태 또한 (비)웃음을 유발한다. 이들은 모두 정화의 가능성이 없고, 등잔밑이 더 뜨거운 줄도 모르며, 자기가 몸담은 세계의 비주류 시스템에 정확하게 예속된 딱한 무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들이 현재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곳을 지배하고 있으니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데서 이 장르 영화의 빛나는 점이 드러난다.

필자 또한 부산 출신이라 이 장면에서 깜짝 놀랬다.

정말로 패싸움 직전엔 창우 (김성균 분)처럼 외친다. 자, 드가자!

깡패와 사회 안정의 야사

국내의 깡패들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광복후 혼란한 상황에서 조직폭력배들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우익과 좌익의 정치세력들이 정치깡패를 조직시켜 상대방을 공격한 것이다. 좌익의 조선 청년 친위대, 조선민주청년동맹이 있었고 우익의 서북청년단, 대한 민주 청년 동맹등이 맹위를 떨쳤다. 그들은 암살, 폭행, 그리고 개인의 생계를 위한 범죄까지 저질러 가며 일반인을 괴롭혔다.

서북청년단은 제주 4.3 사건에 토벌대로 투입되기도 했다. 좌익에서 전향하거나 끌려온 민간인도 죽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 자유당과 붙어먹은 깡패들은 정권을 배경에 업고 엄청난 세력을 키웠다. 그러나 4.19혁명으로 함께 처박히고, 5.16 정변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함으로써 몰락했다. 정치깡패의 최고봉이라 불렸던 이정재가 사형당했고, 나머지는 사회혼란 해결이라는 미명아래 싹 쓸어졌다.

설립 명분이 없었던 전두환 정부는 쿠데타 후, 범죄자 교화 프로그램으로 삼청교육대를 운영하며 폭력배들을 잡아들였다. 하지만 그 구실로 민주화쪽 인사들이나 독재에 항거하는 사람들을 억압했다. 할당량이 부과된 경찰에서는 멀쩡한 장정이라면 그냥 잡아가기도 했다. 결국 시민들의 동요로 유야무야 됐고, 이후 경제 호황에 올라탄 조폭들은 세력을 키웠다. 무엇보다 1988년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위해 전두환 정권은 목동과 상계동의 빈민들을 상대로 용역 조폭들을 동원해 내쫒았다. 삼청교육대로 조폭 척결을 홍보했던 전정권은 되려 그들을 이용하여 지위를 굳건히 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워진 것이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와 상계 주공 아파트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90년 10월초에 보안사령부의 이등병에 의해 야당인사들을 숙청하기 위해 진보계 인사들을 사찰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에서 꺼내든 것은 많은 군사 독재 정부(혹은 그의 친구이거나)가 그러했듯 ‘범죄와의 전쟁’ 이었다.

범죄와의 전쟁 선포

소란이 있은지 열흘도 안되서 범죄와의 전쟁 운동(10.13 특별선언)이 대대적으로 선포됐고, 범죄율이 급감하며 노태우의 지지율은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이제껏 체포되던 것은 조직의 우두머리 정도였는데 이제는 끄나풀들까지 잡혀들어가며 범죄율이 확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치안유지에 평가제를 적용하면서 허위자백, 증거조작등을 일삼는 경찰들도 등장했다. 무장 군인이 도시를 순찰하면서 또 다시 군사 독재의 정취가 난다며 시민들이 항의하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은 전두환 정권과의 차별점을 두며 권력 핵심부에 군 출신을 줄이고 검사들을 꽂아 넣었다. 극 중에서 지독한 검사로 등장하는 조범식 (곽도원 분) 검사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깡패들을 소탕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청정 정의사회의 구현보다는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선배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경찰서에 끌려가도 서장이랑 사우나를 갔다면서 되려 큰소리를 치다가 사과를 받는 익현같은 반달이 판치던 동시에, 정권 운용에 활용할 법 기술자로서 검사들의 암약 또한 드높아져 갔다.

김영삼 정부에서 하나회가 해체되어 군부의 세력이 약해지며 검사의 위상은 더욱 튼실해졌다. 정권교체는 검찰에겐 재앙이었고 야당 탄압으로 이어졌다. 그 다음 김대중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권력의 지배를 받고 권력의 목적에 따라 표적 수사를 많이 했습니다. 나도 당해 봐서 압니다. 1989년 용공 조작 당시, 밀입북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서경원 씨를 사흘간 잠 안 재우고 고문까지 해서 나에게 주지도 않은 1만 달러를 줬다고 허위 자백하게 했습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섭니다. 이것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정권은 학연, 지연, 혈연에 구애받지 않고 인사 문제를 깨끗이 할 것이고 권력을 위해 검찰권 행사를 해 달라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붓글씨와 표구로 제작되어 대검찰청을 비롯한 전국 검찰청사에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

그러지 않았던 시대

<범죄와의 전쟁>은 이와는 반대로 학연 지연, 특히 혈연에 관한 나쁜 이야기다.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에 나쁜 방식으로 살아갔던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풍자가 동시에 작동한다. 몰락할 줄 알았던 그의 서사는 형배를 검찰에 넘기고 인맥의 보호망 아래 숨는 거래에 성공한다. 자기가 이겼다고 중얼거리는 그는 자신의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우월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러면서 자식인 주한에게는 끊임없이 생존에 관한 전법을 설파한다. 이를 보고 자란 주한(박병은 분)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엔딩의 시선

실제로 형배가 익현을 찾아왔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대부님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린다. 환청에 가까운 그것은 출옥한 형배가 언제든 찾아와 앙갚음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졸리운 눈을 하고 있던 익현은 형배의 음성에 번쩍 눈을 뜬다. 스스로 금전적으로도, 자식 농사에서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반칙을 일삼으며 살아온 기득권은 볼온함과의 동거를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 카메라를 쳐다보면 그것은 인물이 관객에게 던지는 거대한 질문이 된다. 성공을 동반한 제 삶이 좋아 보이십니까? 당신 같으면 이런 삶이 맞다고 하시겠어요?

검사가 된 주한이는 아빠에게 기다려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그간 밥상머리에서 봐왔던 그의 아빠를 떠올리자면, 이는 법의 수호자로서의 검사가 아니라 경주 충렬공파 미스터 초이의 간판 법조인으로 살아가겠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검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까? 보이스카웃의 복장을 한 주한에게 익현이 가르치던 영단어를 떠올리면 , 이제 사회의 권력이자 지도층으로서 국민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resist : 저항하다. 항거하다. 참다. 견디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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