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SF 영화 <정이>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

연상호 감독의 한국형 SF <정이>가 지난 1월 20일에 공개된 후 넷플릭스 영화 부문 상위권을 차지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정이>는 <지옥>, <부산행>, <반도> 등의 흥행작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본격 SF 도전이라는 점과 2022년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강수연 배우의 마지막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하지만 작품의 화제성에 비해 공개 이후 시청자들의 평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과연 어떤 점이 <정이>를 뜨거운 감자로 만들었을까? 작품의 잘된 부분과 아쉬운 부분을 3가지 관점으로 정리해 본다.

외형 – 이질감 없는 CG VS 극에 어울리지 못하는 캐릭터

관객들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가장 피부에 와닿는 것은 작품의 비주얼일 것이다. 특히 SF 영화에서 CG의 완성도는 영화 감상의 몰입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이>는 화려하고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시각적인 충격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고른 CG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SF 영화가 드문 한국영화에 이 같은 CG의 발전은 다음 작품을 위한 괜찮은 발판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세계관을 잘 담아낸 미래 도시, ai 용병‘정이’가 다른 로봇들과 벌이는 전투신 등은 작품에 빠져들 만큼 CG를 효과적으로 이야기에 녹여냈다.

CG 기술의 발전에 비해 배우들의 존재감은 전체적으로 아쉽다. 이 작품이 유작이 된 고 강수연 배우는 주연으로서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 연기까지 소화하며 극을 힘있게 이끈다. 하지만 뭔가 어색한 표정 연기와 부정확한 발음은 그의 열연을 방해한다. 류경수 배우가 맡은 영화의 빌런이자 연구소장 김상훈 역시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시종일관 썰렁한 개그코드와 전체적인 톤과 맞지 않는 듯한 행동이 작품에 겉도는 느낌을 계속해서 자아낸다. 다만 ‘정이’로 등장한 김현주 배우의 존재감은 돋보인다. 인간의 뇌를 가진 사이보그의 감정을 과하지 않게 적절하게 표현하고, 고난도의 액션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영화의 완성도에 힘을 보탠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적은 분량과 비슷한 서사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점은 아쉽다.

<정이>는 거대한 세계관에 비해 등장 인물이 적다. 정이와 박사 서현, 연구소장 상훈까지 이 세 명이 거의 모든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렇기에 좀 더 유기적으로 이들을 엮을 수 있었을텐데, 영화는 그러지 못한다. 정이를 제외하고 등장 인물이 그리 마음에 와닿지 못한 것은 배우들의 연기라기 보다는 흡입력이 떨어지는 이야기 구성이 아닐까?

서사 –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훌륭한 구축 VS 어디서 본 듯한 구성

<정이>는 연상호 감독의 전작처럼 우울하고 황량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보여준다. 인류는 해수면 상승과 자원 고갈로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셸터에서 새로운 터전을 이루고 생활하지만, 이곳에서도 인류는 내전으로 40년 동안 서로를 죽이는 전투를 벌인다. 그런 와중 식물인간이 된’윤정이’의 뇌를 복제하여 전투로봇으로 제작해 내전의 승리를 꾀하는 것이 ‘정이’의 주 스토리다.

이처럼 영화는 어두운 미래를 효과적으로 그리며,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계급화와 양극화에 따른 문제점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많은 것들을 의미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칭찬할만하다. 하지만 평면적이고 엉성한 스토리와 SF 영화의 많은 클리셰로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오지 못한다. 현재도 인간의 뇌를 꿈꾸며 머신러닝을 통해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여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내놓는 마당에 2300년에 인간의 뇌를 구현할 수 없어 40년 전 용병의 뇌 복제로 휴머노이드를 제작한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빈약하다. 여기에 인간을 닮은 로봇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고뇌하는 모습은 이미 과거 <로보캅>이나 <A.I.>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하여 관객들에게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오지 못한다. <정이>를 보는 내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이 때문이다. 다소 빈약한 설정을 좀 더 독창적으로 풀어냈다면 작품이 전하는 세계관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메시지 – 신파의 한계 VS 인간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질문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 <정이>가 고전적 멜로와 SF의 낯선 결합으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고전 멜로에서 주로 사용하는 신파 정서가 <정이>의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꽤 많다. 물론 신파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관객에게 슬픔과 감동을 가장 호소력 있게 전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이>를 향한 신파 논란은 의미 있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이>는 아픈 딸의 치료를 위해 전쟁터에 용병으로 참여한 엄마가 식물인간이 되고 40년이 지난 뒤 딸 서현 박사가 엄마 정이의 뇌 복제를 통해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과정에서 서현이 비록 인간이 아닌 기계가 되었지만 엄마의 행복을 위해 그를 연구소에 탈출시키면서 보는 이의 마음을 건드린다.

감독이 언급한 대로 고전 멜로와 SF를 결합한 것은 나쁘지 않으나, 문제는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딸인 윤서현 박사의 서사가 빈약하여 이 신파를 불러일으키기에 개연성이 너무 약하다는 데 있다. 딸이 왜 엄마의 뇌 복제 로봇에 대해 연구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제 와서 갑자기 엄마 정이를 탈출시키려 하는지 등의 부족한 개연성으로 인해 생뚱맞은 신파가 관객의 감정과 하나 되지 못한다. 신파는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관객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선행되지 못하니 ‘억지로 눈물을 짜낸다’라고 밖에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연상호 감독이 <정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전투로봇 ‘정이’는 ‘윤정이’의 복제된 뇌를 이식한 휴머노이드이다. 현재도 인간의 죽음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뇌’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그대로 복제한 뇌를 이식받은 휴머노이드는 어디까지 인간으로 인정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이와 더불어 A, B, C 3단계로 세분화된 뇌 복제 등급은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가미된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절정을 보여준다.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빈부격차로 양극화와 자본에 따른 계급화가 진행되고, 이는 죽음을 앞두고 진행되는 뇌 복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원하는 몸으로 복제 뇌를 이식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A등급과 새로운 몸으로 복제될 수 있지만 개인정보를 정부가 소유하게 되는 B등급, 마지막으로 인간의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며 회사에 귀속되어 무제한 복제 사용될 수 있는 C등급으로 나뉜 설정이 그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존엄성 문제까지 생각해보며 영화<정이>는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체적으로 <정이>는 아쉬운 점이 많지만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꼬집으며 장르적 재미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SF 영화였다. 특히 이제 우리 곁에 없는 강수연 배우의 마지막 모습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매일마다 엄청나게 발전하는 기술을 보며 미래의 세계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정이>를 비롯한 디스토피아 가득한 영화를 보면 기술의 발전이 늘 인간에게 행복을 줄까 고민을 해본다. 특히 지금처럼 영화의 픽션과 현실의 리얼리티의 간극이 점점 줄어들수록 말이다. <정이>가 건넨 섬뜩한 미래 우화에 완성도를 떠나 꽤 여운이 남는 건 이 때문일 듯하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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