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아레사 프랭클린의 음악

작년 여름 우리 곁을 떠난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의 공연 다큐멘터리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11월 말 개봉한다. 전성기가 이어지던 1972년, LA의 한 교회에서 프랭클린이 오로지 가스펠만을 노래하는 공연의 실황을 담았다. 어느 시기의 음악을 들어도 놀라운 가창력을 선보였던 아티스트지만, 당시 물이 오를 대로 올랐던 서른 살의 아레사 프랭클린이 노래하는 찬송가를 듣는 건 가히 종교적인 쾌감을 안겨준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조차 “없던 신앙이 다 생긴다”는 감상이 튀어나올 터.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개봉을 맞아 아레사 프랭클린의 음악들이 사용된 영화를 소개한다.


“Think”

<블루스 브라더스> (1980)

존 벨루시와 댄 애크로이드가 <SNL>에서 결성한 코미디 그룹 블루스 브라더스는 앨범까지 발매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인기를 누렸고, 1980년엔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까지 제작됐다. 레이 찰스, 제임스 브라운, 존 리 후커 등 어마어마한 소울/블루스 거장들이 카메오로 출연했는데, 아레사 프랭클린은 감옥에서 나온 블루스 브라더스가 옛 동료 머피의 아내로 등장한다. 그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방문한 블루스 브라더스는 머피에게 다시 음악을 하자고 꼬득이고, 아내가 이를 막자 머피는 남자라는 자존심을 내세운다. 그러자 “잘 생각하는 게 좋을걸!” 하며 아레사 프랭클린의 1960년대 명곡 ‘Think’를 부른다. 갑자기 뮤지컬 영화의 한 장면처럼 ‘Think’의 노랫말은 고스란히 음악 할 생각하지 말고 똑바로 살라는 아내의 훈계가 된다. 프랭클린은 18년 후 제작된 속편 <블루스 브라더스 2000>에도 출연해 ‘Respect’를 불렀다.


“Respect”

<수잔을 찾아서> (1985)

신문에서 “수잔을 찾습니다”라는 광고를 본 로베르타(로산나 아퀘트)는 수잔(마돈나)을 발견하고 뒤쫓는다. 수잔이 화려한 장식이 달린 부츠를 발견하는 빈티지샵까지 따라 들어가는데 그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이 아레사 프랭클린의 대표곡 ‘Respect’다. 들썩들썩 워낙 신나는 노래인지라 가게 점원이 근무 중에 그루브를 타는 모습조차 자연스러워 뵌다. 부츠가 마음에 쏙 드는지 그걸 신고 가게를 두리번대던 수잔은 자기가 입고 있던 지미 헨드릭스 재킷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부츠를 신고 나간다. 새하얗고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로베르타는 수잔의 번쩍이는 재킷을 구입한다. 은근히 잘 어울린다. 그렇게 로베르타는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사건에 휘말린다.


“Baby I Love You”

<좋은 친구들> (1990)

전설적인 락 페스티벌 ‘우드스탁’ 다큐멘터리의 편집자로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마틴 스코세이지는 이따금씩 기존의 명곡들을 영화음악으로서 활용하는 감각을 자랑해왔고, <좋은 친구들>에서도 그 센스가 빛을 발한다. 지미(로버트 드 니로)의 수하 노릇을 하며 세를 넓히는 헨리(레이 리오타)는 바람을 피고 애인에게 집까지 얻어다준다. 시체를 실었던 트렁크를 가족들 앞에서 청소하는 신 바로 다음에 애인의 호화로운 집에서 파티가 벌어지는 장면이 이어진다. 화려한 오브제와 인테리어가 깔린 공간에 아레사 프랭클린이 1967년 발표한 노래 ‘Baby I Love You’가 깔리면서 돈 맛을 알고 흥청망청 정신 나간 듯한 헨리의 일상이 스윽 지나간다.


“Someday We’ll All Be Free”

<말콤 X> (1992)

1960년대 중반 파란을 일으킨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X의 삶을 영화화 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말콤 X>는 아레사 프랭클린이 부른 ‘Someday We’ll All Be Free’로 3시간이 훌쩍 넘는 대장정을 마무리 한다. 1970년대의 시작과 함께 데뷔해 소울 신에 파란을 일으켰던 도니 해더웨이(Donny Hathaway)의 원곡을 프랭클린이 <말콤 X>의 엔딩곡을 위해 리메이크 한 트랙이다. “언젠가 우리 모두 자유로워질 거예요”라는 명징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세상의 야만에 핍박 받아온 흑인들의 애환과 희망을 대변한 명곡이다. 34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해더웨이 대신, 오랫동안 건강한 모습으로 ‘소울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빛냈던 중년의 프랭클린이 노래한다. 말콤 X의 치열했던 삶이 끝난 후 흐르는 프랭클린의 노래는 그저 따뜻해서, 마치 말콤 X를 위한 자장가처럼 들린다.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바운드> (1995)

<바운드>는 단도직입적이다. 엘리베이터를 잡아탄 코키(지나 거숀)는 그 안에 타고 있던 바이올렛(제니퍼 틸리)과 눈을 마주친다. 낮게 깔리는 베이스 소리 위로 오가는 시선은 분명 매혹의 그것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불과 2분 만에 <바운드>는 레즈비언 커플을 주인공으로 삼은 스릴러의 정체성을 단번에 드러낸다. 그리고 코키가 레즈비언임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진다. ‘물 흐르는 구멍'(The Watering Hole)이라는 이름의 바에 코키가 들어서면 아레사 프랭클린의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가 울리고 있다. 바 안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레즈비언 바가 분명한 이 곳에서 하필 “난 결코 남자를 사랑한 적이 없어”라는 제목으로 읽힐 수 있는 노래를 사용한다니. 이제 막 데뷔작을 발표한 워쇼스키 자매의 위트가 돋보이는 선곡이다.


“It Hurts Like Hell”

<사랑을 기다리며> (1995)

<보디가드>(1992)와 그 사운드트랙으로 세계를 정복한 휘트니 휴스턴의 두 번째 영화 <사랑을 기다리며>는 1990년대 중반 흑인 문화계의 야심작이었다. 대배우 포레스트 휘태커가 연출을 맡았고, 최고의 R&B 프로듀서 베이비페이스가 만들어 주연배우 휘트니 휴스턴을 비롯한 토니 브랙스턴, TLC, 메리 J 블라이지, 샤카 칸, 패티 라벨 등 여성 R&B 뮤지션들이 부른 노래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페이스 에반스의 ‘Kissing You’와 함께 반나(휘트니 휴스턴)의 끈적한 러브신이 끝나면, 반나의 베스트프렌드 버니(안젤라 바셋) 역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 이어지고 그 위로 아레사 프랭클린의 “It Hurts Like Hell”이 흐른다. 침대 위의 두 사람은 그대로 옷을 입은 채 살짝 몸을 포개고 잠들어 있다.격렬한 제목과 그보다 더 격렬한 프랭클린의 열창이 무색하게도 지극히 포근한 풍경. 더없이 황홀한 밤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르겠다.


“Ain’t No Way”

<알리> (2001)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전기영화 <알리>는 마이클 만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라스트 모히칸>(1992), <히트>(1995) 등 인물들의 갈등과 액션의 쾌감을 동시에 그려내는 진귀한 재능을 보여줬던 마이클 만이지만, <알리>는 알리의 천재적인 권투 실력을 보여주기보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알리의 인간적인 측면에 더 힘이 실린 작품이었다. 아레사 프랭클린의 1969년 넘버 ‘Ain’t No Way’는 2000년대 초반의 인기 힙합/R&B 아티스트가 대거 참여한 사운드트랙 중 하나를 차지했다. 알리(윌 스미스)가 아내 손지(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핑켓 스미스가 연기했다)에게 무슬림의 여자로서 정숙함을 갖추라고 쏴붙인 뒤 손지가 알리 곁을 떠나고, 방 한켠에 남은 그녀의 옷을 보고 그리워 하는 대목에 쓰였다. 무릎을 꿇고 옷에 코를 파묻어봐도 이제는 “도리 없는” 관계일 뿐.


“One Step Ahead”

<문라이트> (2016)

별명이 ‘스몰’이었던 아이에서 우락부락한 외모의 마약 딜러 ‘블랙’이 된 샤이론(트레반트 로즈)은 어느 날 16살에 헤어졌던 첫사랑 케빈의 전화를 받는다. 그 날 밤 바로 몽정을 한 샤이론은 애틀란타에서 케빈이 일하는 마이애미로 간다. (비행기로 2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케빈의 식당으로 들어서면 그곳에선 아레사 프랭클린의 ‘One Step Ahead’가 흐르고 있다. 프랭클린의 노래는 차 소리만이 날카롭게 들리는 마이애미의 밤거리와 케빈을 마주하게 될 평범한 식당이 전혀 다른 세계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하늘하늘 가볍게 떠다니는 프랭클린의 보컬과 귀를 간지럽히는 기타 소리가 섞인 노래 아래, 샤이론은 마음껏 두리번대지도 못한 채 앉아 있다. 머지않아 대면한 두 사람. 프레임 한가운데를 가득채운 얼굴.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서는 마음을 말하는 노래가 오랫동안 이어진다.


“Won’t Be Long”

<그린 북> (2018)

말과 주먹이 동시에 나가는 시시껄렁한 토니(비고 모텐슨)는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매허샬라 알리)의 투어 차량 운전사를 맡게 된다. 돈은 무례한 말버릇은 물론 음식을 먹고 시트에 손을 닦고 쓰레기를 창밖에다가 집어던지는 토니가 탐탁지 않았지만 점차 마음을 연다. 여느 때처럼 별 대화 없이 화창한 도로를 달리던 어느 날, 돈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리틀 리차드의 ‘Lucille’다. 영화 속 배경이 되는 50년대를 휩쓴 흑인 로큰롤 스타지만 클래식을 전공한 돈 셜리는 그를 알지 못한다. 그렇게 말문이 트기 시작해, 토니는 나오는 노래마다 “아니, 어떻게 이 사람을 모르냐”는 식으로 은근히 돈의 속을 긁는다. 그리고 아레사 프랭클린의 ‘Won’t Be Long’이 나온다. 모른다고 대답하자 “어떻게 아레사 프랭클린을 모를 수가 있소?” 쏴붙이고는 “처비 체커, 리틀 리처드, 샘 쿡… 당신네 사람들이잖아요!”라고 말한다. 곧장 얼굴이 굳는 돈. 우리는 토니의 이 말이 다분히 인종차별적이라는 걸 직감하지만, 흑인 음악가로서 동시대 대중음악 신에서 활약하는 흑인 뮤지션을 모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된다. 어느 새 유리창엔 빗방울이 맺혀 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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