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저리>를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일단 그 여자 이름은 ‘미저리’가 아니다

* 영화 <미저리>의 내용이 포함된 글입니다.

‘미저리’는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대명사 중 하나다. 가히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 단어는 모두가 알고 있듯 무언가에 비정상적이며 과도한 집착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평범한 얼굴을 하고 태연히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나 스토킹 범죄 가해자를 지칭할 때도 ‘미저리’는 매우 경제적으로 쓰인다. 한국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어떤 갈등을 영화 <올가미>로 쉽게 비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단어의 영향력과 존재감은 어마어마하지만, 그 역사는 40년이 채 못 된다. 1987년에 나온 스티븐 킹의 <미저리>에 처음 등장한 후, 이를 원작으로 롭 라이너가 1990년에 만든 동명의 영화로 그 공고한 지위를 굳혔다. 그러나, 정작 <미저리>의 세계에 ‘미저리’는 실존한 적이 없다.

영화 <미저리>

정확히 말하자면 ‘미저리’는 극 중 베스트셀러 작가 폴 쉘던(제임스 칸)이 쓴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 미저리 차스테인이다. 미저리는 자신을 창조한 폴에게 막대한 부와 인기를 가져다 줬지만, 그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미저리>는 평단의 호평까지는 얻지 못한 통속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미모의 미저리가 힘든 환경 속에서 한 남자를 향한 순애보를 키우면서도, 다른 남자의 구애에 갈등한다는 뻔한 내용을 20년 동안 써 온 폴. 단지 소설을 쓸 수 있고 그것이 매우 오랜 시간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폴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기어코 미저리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분명 따라 붙을 속편 요청마저 원천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늘 도심에서 벗어나 외딴 마을에서 집필을 하는 폴은 새로운 소설을 마무리 짓고 늘 그렇듯 담배 한 대와 돔 페리뇽 샴페인으로 이를 자축한다. 작가로서 맞을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며 콜로라도로 돌아가는 길에는 서스펜스 소설 같은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에 그만 차가 구르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피투성이가 된 차 안의 그를 구조한다. 아니, 실은 그가 쓴 새 소설의 원고를 먼저 품에 소중히 넣은 뒤 폴을 들쳐업고 눈길을 헤쳐 나간다. 애니 윌크스, 모두가 ‘미저리’라고 오해하는 그 여자다.

영화 <미저리>

두 다리와 오른팔이 부러진 환자를 병원도 아닌 자신의 집에 데려다 놓은 애니. 그는 폴에게 스스로를 ‘당신의 열렬한 팬’이자 ‘간호사’라고 소개한다. 죽다 살아난 폴은 애니의 두 정체성을 어떠한 의심도 없이 수용한다. 열렬한 팬이기 때문에 자신을 눈보라 속에서 구했을 것이며, 간호사니까 응급 처치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이야기는 혹여나 관객들이 가졌을 의문에까지 답한다. 폴이 사고를 당한 그 시간, 그 장소에 애니가 어떻게 나타났느냐고? 그건 기적이 아니었다. 애니는 폴이 글을 쓰는 오두막을 늘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니는 그 사실을 폴에게 숨기지 않았다.

아무리 팬이었다고 해도 실제로는 처음 본 남자의 화장실 수발까지 하는 애니에게 폴은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진통제라며 매일 주는 약 두 알도 여전히 의심의 영역 밖이었다. 그렇게 기이한 동거가 며칠간 지속된 후 애니는 폴에게 넌지시 묻는다. 가방 속에 든 원고를 봐도 되겠느냐고. 폴이 이를 허락한 건 비극의 시작이었다.

영화 <미저리>

이튿날 40페이지까지 읽었다고 입을 연 애니는 폴의 새 소설에 욕설이 많다고 지적한다. 극 중에 슬럼가의 아이들이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폴의 설명에 애니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화를 낸다. 애니의 얼굴, 분노에 부들부들 떠는 그의 손에 들린 채 스프를 쏟아내고 있는 접시, 그리고 폴의 얼굴이 차례로 클로즈업되며 이 돌변이 가져올 전개의 성질을 암시한다. 이제 폴과 관객들은 애니의 호의가 상식 밖의 집착임을 의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폴의 의심이 커지는 사이 애니는 서점에서 <미저리>의 최신판을 사 온다. 그러니까, 눈보라 때문에 길이 거의 폐쇄된 상태인데다가 통신마저 끊겼다는 애니의 말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상황이다. <미저리> 최신판을 누구보다 먼저 읽어야 한다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폴을 자신의 집에 묶어 둘 명분을 스스로 없앤 셈이다. 하지만 폴은 어차피 애니가 없으면 침대 밖조차 나가지 못하는 신세다. 애니는 그 방향이 <미저리>인지, 폴인지조차 불분명한 뒤틀린 집착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미저리>의 결말이 여자 주인공의 죽음임을 확인한 순간 애니의 광기는 폭발한다.

영화 <미저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사이코패스 캐릭터 애니 윌크스는 수십 년 동안 ‘미저리’라 오해 받았다. <미저리> 역시, 주인공이 통제할 수 없는 존재로부터 생명을 위협 당한다는 전형적 공포물로 오독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달리 보면 콘텐츠 창작자가 소비자라는 군중에게 느끼는 공포가 우화적으로 표현돼 있다.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얻는 건 모든 창작자들의 희망 사항이 아닐 수는 있지만,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궁극적 포상이다. 언급했듯 폴이 당장의 생계를 위해 시작한 <미저리> 집필은 결국 부와 인기를 안겼음에도 예술적 명예까지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폴에게 <미저리>는 작가 인생을 하나의 소설에게 저당잡힌 채 살았다는 피해의식까지 심었다.

그래서 결국 폴은 새 소설을 쓴다. 하지만 현재의 폴을 만든 <미저리>의 수많은 애독자 중 하나, 애니는 새 소설을 거부한다. 폴이 어떤 소설을 집필했는지는 극 중에서 묘사되지 않았지만, 단순히 수학적으로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잡을 가능성보다 둘 중 하나, 혹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확률이 훨씬 높다. 소설의 끝을 맺은 순간 느낀 성취감보다 그 이후 평단과 대중이라는 소비자 집단과 벌일 보이지 않는 싸움은 더 지루하고 고될 것이다. 폴의 신작을 제 손으로 불태우게 하고, 두 다리를 부숴 가둔 후 <돌아온 미저리>를 쓰게 하는 애니는 창작자가 감각하는 공포의 현신이다. 이를테면 드라마 작가가 몸이 묶인 채로 피할 수도 없는 악플을 눈 앞에서 육성으로 듣는 기분일까.

<미저리>의 끝에서 폴이 애니에게 하는 복수는 작가가 독자와 평론가에게 퍼붓는 사자후 같다. “미저리의 생부가 누구지 알고 싶지? 이안과 결혼할까, 윈톤과 결혼할까? 다 이 속에 있지.” 애니의 입맛대로 고친 <미저리>의 속편 아닌 속편은 결국 소설이 되지 못한 채로 불탄다. 창작자가 느낀 공포를 그대로 소비자에게 되갚은 대목이다. 그래서 <미저리>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 애니 그 여자가 ‘미저리’가 아니었던 것처럼, <미저리>는 그저 사이코패스와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공포물이 아니었다는 걸.


칼럼니스트 라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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