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트맨>으로 다시 만날 최악의 대도시 ‘고담’

DCEU에서의 고담

히어로 무비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고담이라는 지명은 꽤 들어보았을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인기를 누려 온 배트맨 시리즈의 주요 무대이자, 최근에는 <조커>를 통해 다시금 스크린에 비친 바 있다. 3월로 개봉을 확정 지은 <더 배트맨>을 통해 다시금 배트맨과 새로운 빌런 리들러의 전장이 될 이곳, 최악의 도시 고담의 면면을 돌아본다.

<다크 나이트> 삼부작의 고담 지도

고담(Gotham)은 영국과 한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뉴욕시의 오래된 별명이기도 하다. 때문에 뉴욕에는 고담이라는 이름의 건물이나 시설들이 꽤 있다고 하며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DC코믹스의 고담시가 탄생했다. 실존하는 지명이자, 뉴욕의 별칭이기도 하지만 코믹스에서 ‘고담’이라는 이름을 명명할 때에는 구약성서에 언급된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본땄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형 범죄조직들이 우글거리는 범죄자들의 도시이지만, 치안이 바닥 수준인 데 비해 인구밀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영화와 코믹스를 통해 알려진 고담시의 지도는 뉴욕시와 흡사한 형태이지만 거의 3천만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수도권 전역을 합친 만큼의 숫자라 엄청난 밀도를 자랑(자랑은 아닌 것 같지만)한다. 여기에 <조커> 등을 통해 언급된 바 있듯이 빈부격차가 심각한 수준으로, 언제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사회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조커>

말하자면 어둡고, 축축하고, 폭력적인 느낌을 주는 차가운 도시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심심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하루가 멀다고 강력 범죄가 일어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커와 펭귄 등 배트맨의 숙적들이 고담시를 근거로 활동한다는 점 때문이다.


<배트맨 비긴즈>

다수의 배트맨 실사화 프로젝트들이 주로 실제 뉴욕시가 갖고 있던 현실적인 문제와 사건을 모티브로 그려졌다. 1930~40년대의 공황 사태를 배트맨의 출발점을 통해 반영하기도 했고, 1970~80년대 뉴욕의 재정 문제와 사회 혼란을 높은 범죄율과 빈부격차를 통해 표현하기도 했다.

시 재정이 파산 직전이었던 당시의 뉴욕시는 1만 명의 교사와 수천에 달하는 경찰 및 소방관들을 해고하며 재정상태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서민의 삶은 그리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작중에서는 인간적인 자선 사업가이자 배트맨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였던 토마스 웨인 캐릭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조커>

가장 최근 작품인 <조커>에서는 도무지 괜찮은 사람이라고는 없고 모두가 다소 신경질적이며 예민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빈부격차도 심각한 수준으로 그려진다. 작중에서 아서 플렉은 좋지 못한 성장 환경과 더불어 그를 도와주는 이도 없었는데, 현실 사회에서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기는 하나 <조커> 속 현실과 고담시의 사람들은 유독 차갑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단 이전에는 어쨌거나 기득권층인 배트맨의 시각으로 고담을 보여주었다면, 조커에서는 어려운 형편에 놓인 서민이었던 아서 플렉의 시각으로 보여주었다는 차이점은 있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속 고담

개중 가장 독특한 고담시를 보여준 작품은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였다. 1985년 워너브라더스와 함께 일하게 된 팀 버튼은 연달아 작품을 성공시키며, 우리가 다수의 작품으로 익히 알고 있는 ‘팀 버튼 스타일’을 확실히 잡아가던 중이었다. 이 시기 워너는 배트맨 영화화를 제안했고 그래서 1989년부터 <배트맨> 시리즈 네 편의 감독과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

시리즈의 마무리가 딱히 좋지는 못했지만(기록적인! 흥행 실패!), 첫 작품 <배트맨>(1989)에서 마이클 키튼과 잭 니콜슨이 연기한 배트맨과 조커 조합은 지금까지도 명연기로 손꼽힐 만큼 호평을 받았다. 최근 우리가 보아 온 배트맨 실사영화와 컨셉이나 분위기, 설정은 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당시로써는 애매한 위치였던 배트맨과 배트맨 실사화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다크 나이트를 위시한 배트맨 실사화 시리즈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다.

<배트맨>

팀 버튼 작품 속 고담은 좀 더 그로테스크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뉴욕시의 모티브를 활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록펠러 센터를 그대로 차용할 정도로 실제 모습을 본뜬 장면이 많았다. 하지만 캐릭터 하나하나의 설정이라든지, 원작 코믹스에는 없는 팀 버튼 고유의 새로운 이야기가 가미되어 실사화 영화임에도 일견 만화적이기도 하고 판타지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더 배트맨>

<더 배트맨>의 경우, 아직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많은 부분을 알기는 어렵고 고담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도 미지의 영역이다. 당초 벤 에플렉의 지휘하에 본인 주연으로 나올 예정이었던 트릴로지로 2017년 이전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데 비하면, 로버트 패틴슨이 2019년 5월에야 비로소 주연으로 캐스팅되고 2020년 여름에야 촬영을 시작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 개봉하는 영화다.

우여곡절을 거쳐 공식 예고편이 공개되었는데, 고담시는 여전히 어둡고, 축축하고, 위험해 보인다. 시종일관 어둡고 위험한 분위기, 하지만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가득 차 있는 거리는 고담시가 여전히 ‘고담’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감독은 물론이고 워너브라더스의 공식 입장을 통해 여러 번 언급되었듯이, 토드 필립스의 <조커>만큼이나 <더 배트맨>은 차갑고 진지한, 그리고 동시에 위험한 분위기를 물씬 풍길 것 같아 보인다.

부패한 공직자들과 고위 관료들 사이에 있는 ‘복수의 화신’으로 출발할 새로운 배트맨의 이야기에는 고담시의 시장 선거를 둘러싼 정치적인 분쟁들도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리들러라는 수수께끼의 악당과 시장 선거 등 다양한 사회적 양상을 통해 고담의 어둡고도 화려한 면모들이 다시 한번 다루어질 듯.


비디오 게임 ‘아캄 유니버스’의 고담

히어로 무비에서 주요한 무대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평화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뉴욕이 그랬고 소코비아가 그랬고, 이따금 서울이나 부산이기도 했다. 개중에서도 고담은 최고 수준의 악명을 자랑한다. 범죄 도시로 유명하고, 공권력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여서 아쿠아맨은 고담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비하하는 말을 하고(<저스티스 리그>) 경찰청장인 고든은 보복을 피해 가족을 대피시킬(<다크 나이트>) 정도다.

하지만 늘 재미있는 지점은 범죄가 있고 악당이 있기에 히어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문제들 모두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친절한 이웃’으로 그들을 돕고자 하는 히어로가 있기 위해서는 범죄를 저지르며 죄 없는 이들을 괴롭히는 악당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담시가 실존한다면 엄청난 사회문제이자 글로벌 이슈가 되겠지만, 배트맨과 더불어 조커를 위시한 수많은 고담시의 빌런들이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며 이어갈 모습이 궁금한 팬으로서는 영원한 혼란의 도시로 남기를 바라기도 한다. 새로운 배트맨을 기다리며,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더 배트맨>의 고담시는 또 무슨 문제로 혼돈에 휩싸여 있을지 기대해 본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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