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좋고, 저건 나빠!” 나와 당신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에 담긴 폭력성을 극복하는 법

* 이 글에 영화 <경계선>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북유럽 신화에는 ‘트롤’이라는 요정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한국의 도깨비와 비슷한 존재다. 그러나 도깨비가 기본적으로 장난스럽고 인간을 좋아하는 사고뭉치라면 트롤은 명백하게 해가 되는 ‘나쁜 짓’을 한다. 대표적 악행은 아기 바꿔치기인데, 트롤이 인간의 건강한 아기를 납치한 자리에 두고 간 병약한 아기가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체인질링’이다. 이처럼 트롤은 기본적으로 나쁜 요정이기 때문에, 현대에도 고의적으로 타인의 분노를 유발하고 그것을 즐기는 행위를 ‘트롤링’이라 일컫기도 한다.

그렇다면 트롤링과 트롤링이 아닌 행위를 가르는 경계선을 그은 건 누구인가? 그리고 왜 우리는 경계선을 저항 없이 체화한 채 살고 있는가? 이러한 의문을 가져 본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이 경계선은 사람이 그은 것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다수를 포함한 무리가 선을 수정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군중 속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회에 미리 그어진 선들을 고치거나 없애기 보다는 선의 안쪽으로 들어가기를 희망하기 마련이다. 만일 트롤이 실존한다면, 그들은 사실 나쁜 요정이 아니라 사람과 달라 박해당하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또 그들의 머릿수가 사람보다 많았다면 ‘트롤링’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경계선>

경계선은 이처럼 필연적으로 폭력성을 내포한다. 선을 그을 수 있다는 것은 곧 모종의 힘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선을 긋는 주체는 선 밖의 존재를 객체로 소외시킨다. 그렇게 경계의 바깥으로 밀려난 소수 집단은 차별의 대상이 되고, ‘좋음’과 ‘나쁨’이라는 이분법적 가치 중 후자를 정체화하도록 강요받는다.

하지만 경계선이 늘 나쁜 것은 아니다. 모든 존재가 이름을, 실존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우리’가 현대 인간 사회에서 대단히 숭상받는 가치일지라도 그것이 ‘너’와 ‘나’의 분리가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성별이나 성 지향성 또는 외모나 체형 같은 유전형질처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계가 있으며 이는 존중받아야 할 선이다. 다만 이 같은 자연적 경계선 안팎 힘의 균형이 깨질 때, 그 선은 나쁜 것이 되고 만다. 남성과 여성은 자연스럽게 생긴 경계를 마주한 채 존재하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소수자로 객체화한다.

영화 <경계선>은 인간 사회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들에 일일히 채색을 하며 폭력성을 선명히 보여주는 데 거침이 없다. 그러나 그 색칠 방식은 매우 우화적이다. 영화의 주인공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스웨덴의 항구에서 근무하는 출입국 직원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그에게는 두 가지 남다른 점이 발견된다. 첫째는 빈말로라도 아름답다고 하기 힘든 생김새, 둘째는 오로지 냄새 만으로 인간의 감정 변화를 포착해 범죄자를 가려내는 능력이다. 티나는 입국자의 소지품 속 밀반입하려던 술이나 마약 뿐만 아니라 아동 포르노가 담긴 저장장치까지 붙잡아 낸다. 직업인으로서의 티나는 특출난 능력을 인정받지만, 자연인 티나는 외모 탓에 모두의 경계선 바깥에 있는 존재다.

영화 <경계선>

언제나 홀로일 것 같은 티나의 경계 안에도 타인은 있었다. 치매 초기의 아버지와 남자친구라기엔 애매한 동거인 롤란드다. 아버지는 티나의 집에 얹혀 사는 주제에 집주인을 싫어하는 맹견을 세 마리나 키우는 롤란드를 몹시 싫어하지만, 티나는 누구라도 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두 사람이 성적인 관계를 맺은 적은 없다. 이를 핑계로 바람까지 피우는 롤란드를 티나는 침묵으로 용서한다. 그건 바다와 육지, 나라와 나라, 인간과 비인간, 여성과 남성, 자연과 문명의 경계에 서 있는 티나를 유일하게 선 안쪽으로 끌어 당기는 마지막 인력 같은 것이었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가 힘들 때, 티나는 홀린 듯 숲으로 향했다. 아무도 선의 균형을 건드리지 않은 그곳에서 티나는 맨발로 이끼를 밟거나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알몸 상태로 수영을 하곤 했다.

그런 티나가 일을 할 때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어린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이들이었다. 특이취가 있는 불법 반입품은 개를 교육시켜도 붙잡을 수 있다지만, 냄새 만으로 인파 속에 섞여 든 소아 성애자를 잡아 내는 건 티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는 소수자에 대한 본능적 동병상련에서 기인한다. 사람이지만 아직 사람이 되지 못했고,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특질이 혼재된 아이들 역시 경계 위의 존재라는 점이 티나와 같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하는 건 경계선의 티나였고, 선 안의 인간 가운데에는 아이들의 육체를 성적으로 지배하려는 자들이 있었다.

영화 <경계선>

티나가 소아 성착취범 수사에 합류하기 전, 그는 국경에서 자신을 닮은 남자 보레(에로 밀로노프)와 만난다. 배가 유독 불룩한 보레는 티나와 생김새가 같지만 열등감 한 조각 없이 자유로운 여행자의 모습이다. 티나는 이상하게 보레에게 끌리던 중 그의 비밀을 알게 된다.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성의 성기를 지녔고, 엉덩이 윗부분에 무언가를 떼낸 듯한 흉터가 있다는 점이었다. 티나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늘 떠돈다는 보레에게 자신의 집 한켠을 제공하며 더 가까워진다. 그와 대화를 하며 외모 뿐 아니라 벼락에 맞은 상처, 엉덩이의 흉터까지 일치한다는 걸 알게 된 티나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보레가 자신이 먹던 구더기를 티나에게 권하고, 손사레를 치던 티나가 결국 이를 입 안에 넣는 대목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티나가 서 있던 경계선을 처음으로 뒤흔든 것은 보레였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티나는 보레와 반대로 여성의 몸이지만 남성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 놓는다. 보레가 나타나기 전 티나의 신체적 특징은 염색체 결함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인간 여성’이라는 경계 밖에서 헤매던 티나가 보레 앞에서는 그저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티나와 보레는 각자의 성기를 꺼내고, 전복된 형태의 성관계를 맺으며 서로가 트롤이라는 종족이었음을 확인한다. 트롤은 인간의 생체 실험에 희생돼 소수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영화 <경계선>

인간 세계에 트롤을 키운 티나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가 하면, 트롤인 보레의 부모를 실험 끝에 죽인 사람도 존재한다. 트롤 세계 역시 입체적이어서 티나처럼 인간의 경계 안쪽을 갈망하는 존재도 있지만, 보레는 달랐다. 그는 신화 속 트롤처럼 인간의 아이들을 훔쳐다가 소아 성애자들에게 제공하며 나름대로의 복수를 하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티나는 갈등한다. 온전한 트롤로 살 것인가, 결함 있는 인간으로 살 것인가?

보레를 만나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티나는, 그럼에도 인간들이 ‘인간성’이라 이름 붙인 감정을 믿기로 했다. 그는 다시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서 함께 떠나자고 하는 보레의 청을 거절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손이 아닌, 인간의 법으로 보레의 사적 복수를 단죄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티나는 맹자의 ‘측은지심’의 영역을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존재와 존재 사이로 확장한 셈이다. 티나가 경계선 위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롤 부모가 지어준 원래의 이름 ‘레바’와 함께, 그는 경계를 밟고 있는 자신을 비로소 만족할 수 있게 됐다. 티나가 아닌 레바로 거듭난 그는 억지로 다수가 손짓하는 선 안에 스스로를 밀어넣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럼으로 레바는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칼럼니스트 라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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