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일이야… 현실과 비현실 경계선의 영화 5편

말로만 들으면이게 말이 돼?’ 싶은데 직접 보면이게 말이 되네;’ 싶은 영화들, 한 번쯤은 만나보지 않았을까? 판타지라고 하기엔 현실적이고, 현실이라기엔 환상에나 존재할 이상한 것이 속출하는 기이한 영화들, 말만 들어도 궁금하지 않나? 그렇다면 2021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티탄>과 함께 이 영화들을 보면 어떨까. 독립된 장르라고 하기엔 어색하지만, 보통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영역에 자리 잡은 영화들이다.  


<티탄>
차랑은 멜로 찍고 사람이랑은 액션 찍는 영화|청소년 관람불가



강동원의 <티탄> 한줄평

황금종려상이란 타이틀과내가 지금 뭘 본 건가“(강동원 왈)란 문장은 <티탄>이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도전 의지를 불태운다. 그렇게 덤볐던 관객 중 몇몇은 아까운 푯값도 포기하며 상영관을 나갔다. 끝까지 영화를 본 사람들도 기진맥진, 반은 걸작이라고 칭송하고 반은 과대평가라고 후려치는 그 영화. 그게 <티탄>이다.

요약하자면, 차하고 하룻밤(당신이 상상하는 그것)을 보낸 여자가 살인을 저지르고 신분을 위장해 한 남자의 실종된 아들 행세로 도망간다. 학생처럼 손을 번쩍 들고선생님, 이해가 안 가는데요?”라고 질문하고 싶겠지만, 놀랍게도 <티탄>을 정확하게 한 줄 요약한 것이다. 얼떨결에 육식의 맛을 깨닫고 식인에까지 손을 댄 여성의 이야기, 전작 <로우>처럼 쥘리아 뒤쿠르노의 과감한 전개와 표현에 전작보다 한결 화려해진 비주얼이 더해졌다. 거기에 아가트 루셀과 뱅상 랭동의 열연까지. 그것들이 뒤섞인 <티탄>의 세계는 무섭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땐 또 은근히 따뜻한 정서가 남긴다. “휴머니즘 가족 영화라는 일부 관객들의 평가가 거짓말 같은데 또 거짓말은 아닌 괴이한 영화.

티탄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

출연

아가트 루셀, 뱅상 랭동, 가렌스 마릴러

개봉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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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가장 불쾌한데 가장 아름답다는 영화|청소년 관람불가



가장 자주 사용되는 이 스틸컷들도 거짓말에 가깝다

신기한 능력을 가졌지만 외모가 특이해 배척받는 한 사람이 자신과 닮은, 자신을 이해하는 한 사람을 만나는 내용의 영화. 정답! <셰이프 오브 워터>! 비슷하지만 땡. 정답은 <경계선>. 이쪽은 훨씬 매운맛이다. <경계선>은 비위가 약하면 보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감이 안 잡힐 테니, 이 글로 찍먹해보시라.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후각과 뛰어난 육감으로 출입국자를 심사하는 공항의 세관원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열심히 일해도 추한 외모로 욕먹기 일쑤다. 그런 티나 앞에 자신과 비슷한 보레(에로 밀로노프)라는 남자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점차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스토리만 봐선 이게 그렇게 이상한 영화인가 싶은데, 사실 티나와 보레의 외모만 봐도 이상한 영화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거기다 이 스토리는 영화의 극초반일 뿐, 뒤로 갈수록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전개가 펼쳐진다. 속 시원히 말하고 싶지만 모르고 볼수록 좋다는 말로 책임을 미루겠다. 참고로 <경계선>의 원작 단편 소설은 <렛 미 인>의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가 집필했다

경계선

감독

알리 아바시

출연

에바 멜란데르, 에로 밀로노프

개봉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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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한국 포스터로는 역대 최고의 어린이 동화 영화’’

제목이랑 서두만 읽고 이 영화 찾으려고 쭉 내린 사람, 있을 것이다(아마도).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하 <판의 미로>)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 중 평단에서 가장 인정받았다. 아름다우면서 기괴한 동화, 잔혹동화 같은 말이 영화가 된다면 딱 이 영화다. 한 아이가 동화 속 존재를 만나고 숨겨진 공간으로 간다, 이런 이야기는 동화 카테고리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스파이더위크가의 비밀> 같은 현대소설도 <나니아 연대기> 같은 고전도 이런 식으로 시작하니까. 하지만 <판의 미로>, 누구 영화던가. 괴수를 사랑한 남자 기예르모 델 토로 아니던가. 판타지는 기괴하게, 현실은 잔인하게. 독재 정권 치하의 현실과 기억을 잃은 공주의 귀환 판타지를 겹겹이 포갠 <판의 미로>는 판타지나 풍자 혹은 다른 무엇으로 읽어도 재밌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블레이드>, <헬보이> 등 원작이 있는 영화를 하던 기예르모가 멕시코 시절의 오리지널리티로 다시 돌아간 영화이기도 했다
 
<판의 미로> 정도 되는 영화면 이미 많은 사람이 봤을 텐데, 연출이니 스토리니 더 써봤자 판에 박힌 얘기일 뿐. 그렇기에 영화 명성에 비해 언급이 적은 오필리아, 이바나 바쿠에로나 말해볼까 한다. 기예르모는 이바나를 캐스팅하려고 8살 오필리아를 11살로 수정했다. 영화를 생각하면 처음부터 8살로 설정한 그가 미친놈(…)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어쨌든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이바나는 연기력이 훌륭한 건 물론이고, 굉장히 묘한 인상으로 영화의 모호한 이미지를 갑절로 만든다. 단순히 예쁘다/아니다를 넘어 항상 귀족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이바나를 봤을 때, 기예르모가 얼마나 기뻤을지는 상상도 못 하겠다



이바나(오른쪽)에게 장면을 설명 중인 상냥한 토토로… 델 토로(가운데)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이바나 바쿠에로, 더그 존스

개봉

2006.11.30. / 2019.05.02.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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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IT영화 같은 제목으로 아날로그 일상을 그리다

등골 오싹하게 하는 포스터와 달리 <애플>은 이 리스트 중에서 가장 잔잔하다. 어쩌면 너무 잔잔하다. 주인공 알리스(아리스 세르베탈리스)의 일상을 지켜보는, 흘러가는 물 같은 편안함. 자칫 고개가 옆으로, 뒤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그리스 영화는 이 풍경에 한 가지 설정을 끼얹어 평범한 풍경들을 전혀 다르게 느끼도록 한다. 그건 바로 어떤 전조도 없이 전염되는 기억상실증이다. 알리스는 영화 초반, 이 전염성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이런 환자가 폭증해서 국가가 관여한다)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만 자신을 기억해 낼 수 있도록 일상에서 했을 법한 일들을 하나씩 하고 사진으로 남기면서. 이 기이한 자아 찾기에 관객은 모든 것이 낯선 알리스의 파트너가 된다.

그리스 하면 요즘 떠오르는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생각날 것이다. 란티모스 또한 해괴한 설정으로 되게 찜찜한 여운을 남기는 감독이다. 다만 란티모스의 영화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면 <애플>은 느긋하되 좀 더 스산하다. 모든 기억을 잃은 사람이 주인공이고, 세상에 이상한 병이 돌아서 그런지 외롭고 쓸쓸한 정서가 깊게 남는다. 장편 데뷔작이 이런 기운을 내다니, 크리스토스 니코우라는 이름을 지금부터 기억하면 훗날 또 써먹을 때가 있을 것 같다. 제목애플‘(사과)은 알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모든 과일을 통틀어 가장 상징성이 많은 사과를 극에서 사용한 이유는… 직접 영화를 보고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봐도 재밌을 것이다

애플

감독

크리스토스 니코우

출연

알리스 세르베탈리스, 소피아 게오르고바실리

개봉

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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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몬몬 몬스터>
무서운 동급생이 있어도 괜찮아, 난 괴물이 있으니까.

서구권 영화를 싹 돌았으니 이제 동양의 한을 녹인 영화 한 편. <몬몬몬 몬스터>는 대만의 고등학교가 배경이고,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 ? 대만? 고등학교? ! 청춘드라마! 라고 외치면 안 된다. 이 영화는 학교의 불량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한 소년이 괴물 같은 존재들을 만나 벌어지는 내용이다. 위의 영화들과 달리 호러로 분류할 만한 영화긴 한데, 여기에 나오는 학교 폭력의 현실은 지극히 현실적이라서 이 리스트에 넣어도 손색없다이런 현실적인 영화에 괴물 같은 걸 넣을 필요가 있냐는 질문을 하고 싶다면 영화의 두 괴물(진짜 괴물과 불량아)이 하는 행동을 보면 명백한 정답을 얻을 수 있다괴물이 나오는 장면이 주는 공포, 동급생들이 주인공 린슈웨이(등육개)를 괴롭히는 장면의 공포. 공포란 이름은 같아도 조금씩 다른 느낌들이 머리털을 쭈뼛쭈뼛 세우며 해답을 쓸 일 없게 하니까.
 
이런 소름 끼치는 설명을 빼더라도 <몬몬몬 몬스터>는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배우들의 연기가 조금 과잉이긴 한데, 고등학생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300% 보여주는 건 확실하다. 대만 대표 감독 중 하나가 연출한 작품답게 경쾌한 분위기와 무거운 분위기를 쉴 새 없이 오가는데도 이질감이 없다. 아참, <몬몬몬 몬스터>는 구파도 감독이 만들었다. ‘대만‘, ‘영화‘, ‘청춘세 키워드를 한국 관객들의 뇌리에 세게 박아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연출한 그 감독이다. 그 영화처럼 이 영화도 각본까지 집필했고. 한국에서 특히 꾸준히 사랑받는 감독인데, 그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로만 기억하고 있다면 <몬몬몬 몬스터>로 구파도의 또 다른 버전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호러나 고어 싫어하면 어쩔 수 없고.

몬몬몬 몬스터

감독

구파도

출연

등육개, 채범희, 진패기, 유혁아

개봉

20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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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무비 에디터 비트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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