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리쉬 피자> 이토록 이상한, 그렇지만 분명한 사랑 이야기

<리코리쉬 피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세계에서 다소 이질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이런저런 영화에 아역배우로 활동하는 15세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와 이런저런 임시직을 전전하며 장래에 관해 별다른 생각이 없는 25살 알라나(알라나 하임)는 폴 토마스 앤더슨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청춘과 성장, 사랑이라는 평범하고 긍정적인 키워드를 감독의 영화 세계 속에 유쾌하게 안착시킨다.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두 주인공은 개리의 학교에서 진행된 앨범 촬영 날, 학생과 도우미 사이로 마주친다. 잠깐에 그쳐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인연은 ‘나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고, 당신도 그럴 것’이란 개리의 호언장담이 마력이라도 부린 양 끈질기게 이어진다.

짐작하겠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 식 청춘과 사랑 이야기는 학교와 집 언저리에 머무는 전형적인 10대 성장담과는 거리가 있다. 개리와 알라나의 관계에는 필연적으로 비즈니스가 동반하며, 비즈니스는 둘의 관계가 끈끈하게 이어지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개리는 아역 배우 오디션에 참여하며 배우 경력을 가늘고 길게 잇고자 하는 한편, 어머니가 운영하는 홍보 대행 업무를 보조하면서 자기 비즈니스의 기반을 마련한다. 마침내 ‘물침대’라는 일생일대의 사업 아이템을 발견한 그는 10대 전용 박람회에서 출발해 단독 체험관 오픈까지 차근차근 세를 불려간다. 그 옆에서 알라나는 자신보다 훨씬 어린 애송이와 어울리는 데 대한 죄책감이나 자괴감을 느끼지 않고도 경력을 쌓는다. 때로는 노련함과 매력을 활용해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개리에게 또렷이 확인시키며 긴장감을 형성한다.

영화의 배경인 샌 페르난도 밸리는 감독이 유년 시절을 보낸 장소로, <매그놀리아> 등 그의 다른 영화에서도 배경으로 등장한 바 있다. <리코리쉬 피자>에서 샌 페르난도 밸리는 특정한 장소에 정주하기보다 어딘가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인물의 정체성과 관련된 호명처럼 들린다. 청소년에게 허용된 장소에만 머무는 대신 다소 의외의 장소를 오가는 두 주인공의 이동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선 이들이 스치는 장소의 총체로서 지명을 언급하는 것이 더 적절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나는 공간의 다채로움은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물이 가지는 캐릭터 중심성과 여기에 동반되는 나르시시즘의 기운을 어느 정도 억누른다. 더불어 영화는 1970년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질감을 재현하는 데 공을 들인다. 물침대, 핀볼 게임 등 지금은 쇠락하거나 사라진 것들이 성행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것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애상을 자극하기보다는 발견의 기쁨에 감응하도록 만든다.

숀 펜, 브래들리 쿠퍼 등 유명 배우들이 극 중에도 유명인으로 등장해 선보이는 감초 연기를 지켜보는 것도 뜻밖의 즐거움이다. 이들의 존재는 단지 유명한 카메오에 그치기보다는 오디션을 통해 영화와 쇼 비즈니스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젊은 주인공 곁에서 또 하나의 현실을 세우는 중추 역할을 한다. 이들이 연기한 캐릭터는 허구를 통해 구축된 자기 세계 속에 몰입한 인물로 현실과 유리된 인물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이들 캐릭터가 현실의 혼란함을 은유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실적 인물로도 보인다. 예컨대 1973년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 석유파동을 다루는 영화의 방식을 살펴보면 영화가 그리는 현실의 속성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대통령이던 닉슨의 대국민 연설과 거리의 시민 인터뷰 등으로 이뤄진 푸티지가 브라운관 속에서 마치 자료화면처럼 등장한다. 이후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늘어선 도로 풍경과 그 옆에서 비어버린 도로 위를 ‘종말이 왔다’고 외치며 뛰어가는 개리의 모습이 반응 숏처럼 덧붙는다. 이것은 단지 인물의 천진함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 가진 필연적인 비현실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시대의 흐름에 거침없이 뛰어드는 젊은 주인공과 함께 관객은 현실성과 허구성의 혼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어떤 말을 덧붙이더라도 영화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사랑은 그들이 함께 통과한 시공간에 대한 사랑과 들러붙어 떼어놓을 수 없다. 이토록 이상한 관계가 사랑임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이 지나친 그 모든 시공간의 기운에 잠식당한 결과다.


리버스 reversemedia.co.kr

글 김소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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