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로봇과 가족이 된다면? <애프터 양> ‘돈으로 산 가족’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

차(茶)를 마시는 법 중 정석은 잎을 우리는 걸까, 가루를 내어 물에 타는 걸까? 정답이 무엇인지를 차치하고 보편적 차원에서 보면,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어려워서 더 그럴듯 해 보이는 건 전자다. 그러나 차 맛이 더 진하고 잎차보다 많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건 후자다.

영화 <애프터 양>의 제이크(콜린 파렐)는 차를 파는 상점을 운영한다. 정확히 짚자면 그는 ‘찻잎’을 판다. 찻가루를 찾는 손님에게 “가루는 팔지 않는다”라고 했다가 면박을 들을 만큼 찻잎에 진심이다. 제이크는 뜨거운 물과 찻잎이 만나 노랗게 변하는 컵 속의 세상에만 집중한다. 아내 카이라(조디 터너 스미스)도 제이크의 무관심에 이따금씩 상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가족을 대하는 태도는 남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카이라에게 가족은 잘 운영돼야 하는 한 ‘팀’이다.

영화 <애프터 양>

중국계 아시안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를 입양한 부부는 아이의 뿌리인 중국 문화를 가르칠 목적으로 ‘세컨드 시블링스’라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을 ‘구입’한다. 매우 직관적인 이름의 ‘형제자매 주식회사’가 다문화 가정에 보급할 목적으로 제조한 로봇의 이름은 ‘양’. 미카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아시안의 외양을 한 양(제이크 민)은 이미 여러 가족을 거친 ‘중고’다. 양은 갓난아기 시절 입양된 미카가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가 될 때까지 그의 오빠로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양의 전원이 꺼진다.

부부가 작동이 멈춘 양의 몸을 두고 느낀 감정은 가족이 코마 상태에 빠졌을 때 느낄 법한 상실감이 아니었다. 이들은 건조하게 양의 보증 기간과 수리 진행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서 새 제품을 사자고 하지 않았냐’는 식의 입씨름을 벌인다. 오히려 양을 걱정하는 건 이웃의 조지. 그는 아내와 함께 복제인간 쌍둥이를 키운다. 그리고 양을 중고로 샀던 제이크는 조지가 복제인간 딸을 뒀다는 이유로 그를 꺼린다. 이 같은 모습은 제이크가 인간 외의 존재를 이웃이나 가족과 같은 수준으로 대하기를 거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애초에 부부는, 특히 제이크는 양을 가족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영화 <애프터 양>

제이크는 로봇이지만 작동을 멈추면 인간의 시체처럼 부패하는 몸을 지닌 양을 빨리 고쳐야만 했다. 부부보다 양을 더 따르고 의존하는 미카 때문에라도 그렇다. ‘형제자매 주식회사’에서는 꽤 심각하게 망가진 로봇의 수리를 거부하며 제이크에게 두 가지의 제안을 한다. 첫 번째는 양의 몸이 썩기 전 재활용을 하면 새 제품 할인을 해 주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양의 머리와 목소리를 가상 비서로 바꿔주면서 주요 부품을 제외한 나머지 부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섬뜩한 선택지에 제이크가 떠올린 건 다만 본전 생각이었다.

양의 부재가 예상 외로 길어지자 가족들은 저마다 갖고 있던 그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머릿 속을 부유하는 순간 속에 늘 존재했던 양의 모습은 기억 밖 양의 빈자리를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찻잎에 집착하던 제이크는 기억 안팎의 양을 더듬는 과정에서 가루차를 마셔 보기도 한다. 이는 정통성과 정상성이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한 미래를 살면서 오히려 그 개념에 집착해 왔던 제이크의 모순과 배타적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한 찰나다.

미카의 기억 속 양은 부모보다 더 부모다웠고 인간보다 더 인간다웠다. 그는 나무의 접붙이기를 통해 가족이라는 매우 폐쇄적인 발명품이 자연스럽게 외부 존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미카에게 설명한다.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날 가능성이 없는 미카는 이미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다. 접붙이기에 비유한다면 자신을 기둥 나무에 임시로 고정해 뒀을 뿐 그 나무와 결코 한 가족이 될 수 없는 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미카에게 양은 접목(接木)에 성공한 나무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나무와 가지가 온전히 하나로 거듭날 수 있으며, 그건 또 다른 새로움을 위한 섭리 같은 것임을 재차 강조한다.

영화 <애프터 양>

양은 제이크 가족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영화 속 인간들에게 세컨드 시블링스 등의 테크노 사피언스들이 제조 목적 외 기억을 저장하는 기준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들이 일상의 순간들을 따로 떼어 녹화하는 형태로 저장해 둔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그 의지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제이크는 지난한 수리 과정 끝에 양의 기억이 담긴 중심부를 분리해 낸다. 제이크는 로봇의 기억을 확인하며 그 속에 담긴 인간보다 사실은 가족이었던 양을 찾는다. 그리고 양의 의지로 저장한 기억들은 양이 사랑하던 것들이었음을 확인한다.

양에게는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것들이 있었다. 제이크의 가족이 그랬고, 릴리 슈슈 밴드와 나비가 그랬고, 복제인간 에이다가 그랬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이 발생한 근원적 이유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제이크에게 물었다. 왜 차를 좋아하느냐고. 이런저런 이유들을 변명처럼 늘어 놓던 제이크는 결국 ‘묘사할 말이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때 제이크와 양은 인간과 로봇, 주인과 하인 같은 관계성을 떠나 무언가를 사랑하는 존재로서 조응한다.

영화 <애프터 양>

차를 만들거나 마시는 방법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찻잎의 상태부터 다구까지 까다롭게 골라 다도를 즐기지만 누군가는 적당히 데운 물에 티백을 넣어 마셔도 충분하다. 다만 시작은 차를 만들겠다는 의지이고, 결과는 차 한 잔으로 동일하다. 인간에게 동일하게 삶과 죽음이 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의미 있는 건 삶과 죽음 사이의 과정이다. 생(生)의 끝에 무엇도 없다고 한들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 ‘돈을 주고 산 가족’ 양이 떠난 자리에는 죽음 대신 그가 삶에 채운 것들이 남았다.


칼럼니스트 라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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