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빌딩 정도는 무너뜨리자!” 변요한과 박정민도 들개이고, 폭탄이던 시절이 있었다 <들개>

※스포주의: 본 글은 영화 <들개>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양자택일의 삶. 그것이 <들개>의 주인공 정구(변요한)에게 주어진 길이다. 정구는 계속해서 선택해야 한다. 순종과 반항 사이에서. 정직과 거짓 사이에서. 취준생과 폭탄마 사이에서. 미래와 과거 사이에서. 그리고 나아가려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붙잡고 늘어지는 효민(박정민) 사이에서. 둘 다 갖고 갈 수는 없는 것이 정구의 상황이다. 그는 극단적인 두 가지가 교차하는 도로에서, 무엇을 피해 어느 방향으로 건너야 할지 고민하는. 마치 도시에 떨어진 들개 같은 얼굴을 한 청년이다.

사제폭탄을 제조하며 살아가는 취준생 ‘정구’와 범상치 않은 반항아 ‘효민’

어떤 영화는 소리로 먼저 다가온다. <들개>가 그랬다. <들개>의 시작은 한 남자의 욕지거리였다. 그다음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정구에게 쏟아지는 고등학교 교사의 욕지거리와 유리병들. 참느냐, 참지 않느냐. 정구는 참지 않고 폭탄을 터뜨려 교사에게 복수한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니는 한편 대학원에서 조교로 일하지만 정구의 가슴에는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가 응어리처럼 남아 있다. 그는 계속해서 사제폭탄을 만들고 인터넷에서 “진짜 터뜨릴 사람”을 구해 폭탄을 보낸 뒤 기다린다. 어디선가 폭탄이 터져주길. 자신 아닌 다른 누군가 그것을 터뜨려주길. 이 세상을 흔들어주길.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정구는 또 다른 폭탄을 만들어 인터넷에 글을 올릴 뿐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그런 정구의 앞에 왠지 범상치 않은 녀석 효민(박정민)이 나타난다. 효민은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갑자기 스피커 선을 끊어버리고. 보기 드문 캐릭터의 등장에 정구는 그를 신기해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구는 곧 효민이 자신에게 폭탄을 받은 인물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효민이 두 번째 폭탄을 미끼로 정구가 폭탄 생산자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가진 두 사람 효민과 정구는 급속도로 친해진다. 이들의 관계는 시간이 걸려 천천히 형성되는 우정이 아니었다. 둘은 마치 전부터 서로를 위해 준비된 반쪽인듯 딱 맞아떨어졌다. 효민은 “시시한 세상”에 뭔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 하는 인물이고 정구는 직접 그럴 용기는 없지만 폭탄을 만들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집이 없어 차에서 자는 정구를 자기 자취방으로 들인 효민. 그의 방 벽에 적힌 문구는 무려 “모든 것은 불가능하다”.

“저 빌딩” 정도는 무너뜨리고 싶은 ‘효민’과 사회에 적응하고 싶은 ‘정구’

효민에게 세상은 너무 시시해서 파괴해버려야 마땅한 것이었다. 마치 <파이트 클럽>의 테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처럼. 혹은 ‘유나바머’ 데이비드 버코위츠처럼. 이 자본주의 사회는 허위고 하찮기 그지없으니 “저 빌딩” 정도 되는 것을 무너뜨리자고. 그래서 세상에 뭔가 보여주자고, 효민은 정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말하는 효민의 표정은 진짜 그 정도 파괴력을 가진 폭탄을 쥐여준다면 망설임 없이 실행에 나설 것 같아 갑자기 정구는 두렵다. 왜냐하면 정구에게는 폭탄을 터뜨리고 싶다는 마음과 더불어 이 사회에 적응하고 취직을 해서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은, 이제 고등학교 시절과 다르게 후자의 욕망이 더 우세하고 있었다. 정구는 지도교수가 폭탄주 대신 ‘양말주’를 말아줘도 그것을 마실 만큼 나름의 절박함을 가지고 대학원에서 버텼다. 반면 효민은 이미 대학에서 제적당했고 가족과도 사실상 절연한 상태다. 잃을 게 있는 정구와 잃을 게 없는 효민의 사이는 결국 흔들린다.

관계가 깨지기 전 선수를 둔 것은 효민이다. 그는 정구가 고등학교 시절 폭탄마였으며 소년원에 다녀왔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학내 게시판에 붙이고는 이를 백 교수의 짓으로 꾸민다. 정구가 직접 백 교수를 죽이고 선을 넘게 하기 위함이었다. 분노에 찬 정구가 백 교수의 차 아래에 설치한 폭탄의 버튼을 누르기 일보 직전. 그는 백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그것이 효민이 꾸민 짓임을 알아차린다. 오히려 백 교수는 옛날 일이니 신경 쓰지 말고 내일 잘 출근하라며, 정구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한 말을 전한다. 이제 정구에게 상황은 분명해졌다. 효민을 잘라내고, 백 교수의 비위를 잘 맞춰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효민이 거추장스러워짐은 곧 폭탄이 부담스러워짐이고 또한 정구 자신의 폭탄마로서 살아온 세월과 결별해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떠나려는 정구를 효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번 문 것은 놓아주지 않는 들개처럼. 혹은 주인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애완견처럼.

시시해지기 위해 폭탄을 터뜨린 ‘정구’, 그리고 폭탄을 껴안은 ‘효민’

“형이 시시해지는 게 싫다”던 효민은, 그렇게 정구를 옭아맬 마지막 수를 준비했다. 바로 백 교수의 차에 설치됐던 정구의 지문이 잔뜩 묻은 폭탄의 위치를 형사에게 알린 것이다. 하필 그 형사는 최근 일어나는 폭발 사고의 용의자로 정구를 의심 중이었고 말이다. 형사가 폭탄을 들고 움직일 때. 바로 그때 스위치를 누르라고 효민은 정구에게 리모컨을 건넨다. 정구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누르느냐, 누르지 않느냐. 누르면 무기이자 증거인 폭탄과 자신을 귀찮게 하는 형사를 한 번에 제거할 수 있다. 대신 살인자가 된다. 그토록 피하려 했던 효민의 길을 걷게 된다. 누르지 않으면 여태껏 폭탄을 만들고 터뜨린 혐의로 재판을 받는 건 물론이고 취직도 불가능하다. 이제 좀 제대로 살아보려 했는데, 지긋지긋한 과거가, 효민이 발목을 잡는다. 정구는 스위치를 누른다. 그리고 효민을 죽인다. 폭탄과 형사, 그리고 효민 모두와 결별을 택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정구는 천천히 하얀 듀폰 셔츠의 단추를 채우고 재킷을 입는다. 백 교수의 추천으로 한 기업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정구는 지하철에 타 흔들리며, 차창 밖을 응시한다.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는 얼굴은 그렇게 지하철의 출발과 함께 흐려졌다가,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폭탄마, 반항아가 아닌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정구는 성장한 것이다.


누구나 들개와 폭탄을 마음에 품고 산다. 아니, 들개와 폭탄 그 자체인 채로 살아가는 시기가 있다. 하지만 들개와 폭탄은 누군가와 어울릴 수 없다. 자기 자신조차 무슨 일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타인과 어울리고 사회에 섞이려면 들개는 벌판에 풀어주어야 하고 폭탄은 바다에 던져야 한다. 정구는 그 사실을 알았다. 효민은 그것이 싫다고 외쳤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울리는 혼자만의 외침이었다. <파이트 클럽>에서는 결국 모든 빌딩이 무너지며 세상이 끝을 맞았지만 <들개>의 결말은 사뭇 다르다. 건물 대신, 그 건물을 부수고 싶었던 효민이 죽으며 같은 편이라 여겼던 정구는 그 건물로 일을 하러 가는 직장인이 된다. 더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이고 어둡다면 어두운 결말이지만 글쎄. 한편으로는 폭탄과 들개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한 명의 어른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회인의 얼굴을 정구로부터 본 것 같아 어쩐지 위로를 받는 기분이기도 했다. <들개>는 현재 왓챠, 웨이브, 시리즈온 같은 OTT에서 볼 수 있으며, 2014년 촬영 당시보다 곱절은 유명해진 변요한, 박정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씨네플레이 유해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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