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om’은 <Actor’s room> 즉, <배우의 방>을 뜻합니다. (캐릭터에 빠져 사는) 배우가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묻고자 하는 게 이 인터뷰 기획의 핵심입니다. 배우의 얼굴 대신 그의 공간이 담깁니다. 작품이야기보다는 배우의 생각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4년 전, 주지훈을 인터뷰로 처음 만난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예민해 보이는 외모를 기분 좋게 배반하는 좋은 기운. ‘배우 주지훈’과 ‘인간 주지훈’은 그 사이의 거리감을 거의 느낄 수 없는, 물 흐르듯 흘러가는 사람 같아 보여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주지훈은 <아수라> <신과함께> <공작> <암수살인> 등을 통과하며 대중이 조금 더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주지훈은 여전했다. 여전히 개구지고, 여전히 꾸밈없고, 여전히 솔직했다. 그리고 그는 분명 달라졌다. 더 깊어지고, 더 단단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여러 번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서 이날의 만남에 대해 미리 고백하자면 그의 재치, 말투, 위트, 분위기, 매력… 이 모든 걸 글로 온전히 보존해 전달하는 건,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이라는 걸 인정하며 백기를 들고 이 글을 쓴다.
#1. 삼청동 가는 길, 주지훈 차 안
PM 12:05. 도산사거리. 약속한 장소로 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오더니, 경적을 경쾌하게 울린다. “빠, 방~” 차 안에서 빼꼼히 목을 빼고 밖을 보며 손을 흔드는 남자. 주지훈이다. 기자가 차에 올라타서 안전벨트를 매고 잠시 숨을 돌릴 때까지 그는, 천천히 하라는 듯, 차를 출발시키지 않고 묵묵히 기다린다. “준비되셨어요?” 차가 움직이고 나서야 비로소 그를 제대로 본다. 능숙하게 차를 운전하는 남자의 옆모습이 가장 멋있다는 의견에 한 번도 동조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처음으로 그 말에 수긍하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헬스장에서 막 운동을 마치고 왔다는 주지훈은 후드 점퍼에 반바지, 야구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후드 점퍼 안에 티셔츠 입는 걸 까먹었다고 말하며 아이처럼 웃는 이 엉뚱한 남자의 미소에 긴장이 확 풀어져 버렸다. “제가 늘 중요한 걸 하나씩 까먹어요. 하하하.” 가까운 식당에서 냉면으로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도로로 나섰다. 그날은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고, 고향으로 빠져나간 차들로 인해 서울 도로는 평소보다 한산했다.
–서울 토박이죠? 명절, 도로에 갇히는 분들의 심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시겠습니다. (웃음)
=하하. 그 심경은 솔직히 잘 몰라요. 그런데 제가 멀미가 심합니다. 학창 시절, 집에서 학교까지 이동 거리가 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멀미로 고생을 꽤 했어요. 어릴 때 아버지랑 여름 캠핑을 매해 다녔는데, 그때도 멀미 때문에 검은 비닐봉지를 차에 비상으로 늘 걸어두곤 했죠.
–평행 감각을 유지하는 달팽이관이 안 좋은가 보군요.
=그런가 봐요. 병원에도 가 봤어요. 지금은 괜찮은데 이전에 불면증이 심했어요. 그땐 또 차를 타야 잠을 잘 수 있었죠. 차가 요람 같은 기능을 한 거죠. 그게 멀미의 변종이라고 하더라고요.
–비행기에서는 어떤가요. 기류를 만나면.
=어우~ 비행기는 일단, 무서워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웃음) 이 악물고 가는 거죠. 자동차야 급하면 핸들이라도 한 번 꺾는데, 비행기에서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옆에 앉은 사람이 떨면, 함께 불안해지기 쉬운데…일행을 불안하게 하는 스타일이군요. (웃음)
=그런데 함께 비행하는 지인들이 다 비행기를 무서워해서. (하)정우 형도 그렇고, 다들 비행기가 조금만 덜컹거려도 ‘간증’하고 난리가 아닙니다. (웃음)
–많이들 고향으로 떠나서인지 서울에 차가 없네요. 드라이브는 자주 하나요?
=쉬는 날은 자주 해요. 가평도 종종 가는데, 거긴 여러 제약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크게 먹어야 나가요. 주말이나, 오늘 같은 명절에는 차가 막힐 수 있으니까요. 오늘은 제가 자주 가는 메인 코스로 갈 겁니다.
-‘주지훈 로드’가 되겠군요.
=브리핑을 잠시 해 드리면, 일단 가로수 길로 들어가서 사람 구경을 해요. (웃음) 그러곤 한남동으로 빠져서 남산을 한 바퀴 돌든지, 아니면 남산 돌다가 해방촌으로 빠져서 경리단길을 거쳐 다시 남산과 삼청동으로 갑니다. 삼청동 끝자락에 제 친한 동생이 하는 카페가 있어요. 보통은 거기를 마지막에 들르죠. 날 좋고 기분이 좋으면 그 가게 루프탑에 앉아서 술을 한잔 하곤 해요. 제가 대리운전을 부르는 순간이죠. 오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웃음)
-(운전대 잡은 손을 보고는) 왼손잡이시군요! 아까 밥 먹을 때도 왼손 쓰시더니.
=운전할 때 왼손, 밥 먹을 때도 왼손. 양손잡이죠.
–좌뇌와 우뇌가 균형 있게 발달했겠네요.
=제가 젓가락질도 왼손으로 똑바로 하는데 젓가락질로 세대 차이 느끼는 거 혹시 아시나요? 꼰대처럼 ‘젓가락질 잘해야 해!’ 이런 건 절대 아니고요. (웃음) 의외로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많이 없거든요. 물론 DJ DOC 노래처럼 젓가락질이 대수는 아니지만.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가사 말이죠?
=네. 그 말이 맞는 말이지, 하다가도 이런 상상을 하면 또…가령 훗날, 여자 친구 집에 가서 장인어른 될 분을 처음 뵙고 식사를 하면서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는데 젓가락질이 어눌하면 뭔가 모양이 빠지겠다 싶은 거예요.
–하하하, 젓가락질 하나로 굉장히 구체적인 상상을 하셨군요.
=배우는 어떤 선입견을 활용하기도 하고 깨부수기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정갈한 역할을 맡으면 오히려 젓가락질을 이상하게 하는 쪽으로 연습하기도 합니다. 캐릭터로 접근하는 거죠.
–정석임을 자부하는 젓가락질은 부모님에게 혼나면서 배운 건가요?
=사람에게 훈계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부모님이 혼내며 가르쳐도 못 고치다가, 결정적 계기를 만났죠.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에 정말 인기 많은 친구가 있었어요. 초등학교 급식이 저희 6학년 때 처음 도입됐는데, 걔가 젓가락질을 정말이지 너무 ‘딱!’ 하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어요. 그걸 보고는 저도 젓가락질을 잘하게 됐죠. 연습 없이 ‘한 큐’에!
–왜 그렇게 자극받았을까요. 그 친구가 평소 멋있었다는 게 영향을 미쳤겠죠?
=분명 있죠. 마치 우리가 (정)우성이 형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는 것처럼 말이죠. (일동 웃음) 저는 집에 <비트> 블루레이도 있어요.
–정말이지, 당신 또래 남자들이 정우성이란 배우에게 지니는 로망이란!
=아우, 저도 제 나이 또래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지금 10대 20대들도 정우성 그러면, 그의 영화는 안 봐도 ‘움짤’이라도 찾아봐요.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시대의 아이콘인 거죠.
=네. 퀸이나 마이클 잭슨 같은.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대중성과 예술성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란 생각을요. 가령 카페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제가 선호하는 장르가 아님에도 끌릴 때가 있어요. 핸드폰 검색기능으로 찾아보면 여지없이 명반이에요. 사랑받는 것들은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았죠.
–왜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됐을까요.
=그건 <아수라>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황)정민이 형이나 연기 잘하는 분들을 보면 뭔가 자기 세계에 빠져서 감정을 표현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아니에요. 그들이 더 대중을 생각합니다. 감독이 오케이 해도 “딕션, 이상하지 않아요? 이게 관객들에게 전달이 되나요?” 해요. 저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어떤 선입견을 두고 바라봤는데, 진짜 플레이어들은 그걸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궁>이라는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랑이 쏟아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최근 당신을 향한 대중의 관심도 못지않다고 느껴요. 하지만 과거에 받은 사랑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궁> 때 뭔가가 확 변했죠. 그때 제 나이 스물다섯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연기자로 데뷔한 건 아니었던 거죠. 연기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모델 쪽에서는 나름 선배에 속한 나이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새내기인데, 제 입장에서는 새내기가 아니었던 거예요. 실상은 새내기가 맞았는데 말이죠. 나름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다 보니, <궁>이라는 게 훅 들어와도 휘청이거나 들뜨고 싶지 않았어요. ‘아, 이건 한 번에 온 거기 때문에, 한 번에 나갈 거야’라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철이 일찍 드셨군요. 스물다섯도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은 나이인데.
=제가 스물한 살 때부터 가장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세상을 조금 거칠게 바라본 면이 있습니다. 조금 비관적으로 보기도 했고요. 아, 비관적이라기보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어떤 행운이 오면 의심부터 하는?
=맞아요.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 한 번에 변하니까 가치 충돌이 있었던 겁니다. 내가 무슨 특별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데, 그냥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뿐인데, 뭐가 특별하다고 유난을 떠나 하는 식의 생각이 강했던 거예요. 지금이야 몸으로 경험하며 터득한 대처 방법들이 있지만, 그땐 그런 게 없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그게 큰 경험이 됐군요.
=생각해보면…그땐 너무 무섭고 두려웠던 거예요. 말 그대로 눈 뜨고 일어났더니 온 세상이 나를 보고 있었던 거니까… 갑자기 튀어나온 저에 대한 반감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궁>이 만화로 이미 인기가 많은 작품이어서 “네가, 뭔데”라는 댓글도 많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견디려고 신경을 차단시킨 면이 있어요.
–무의식적으로 말이죠.
–네. 나는 그냥 나다. 나는 이전과 똑같다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때의 나를 바라보니, 너무 많이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였던 거고요.
=맞아요. 그런 생각은 해요. 20대에만 받을 수 있는 종류의 사랑이 있잖아요? 팬들이 <궁> 느낌을 계속 원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일부러 피한 느낌이 없지 않아요.
–그렇죠. 그 다음 작품이 <궁>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마왕>이었으니까.
=‘이런 건 안 할 거야~’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반대되는 것들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어렵게 들리지만, 점심에 자장면 먹었으니까 저녁엔 중식 말고 한식을 먹고 싶었던 거죠.
–사실 매니지먼트 바닥에서는 자장면이 대박나면 자장면을 한동안 미는 법인데, 본인이 튕겨 내신 거네요.
=인지도나 금전적인 것들로 이야기하면 그로 인해 손해 본 지점이 없지 않아요. (웃음) 하지만 긴 배우 인생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하는 바에요. 늘 궁금했던 게, <궁>과 <마왕> 사이에 연기 갭이 크게 느껴집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저는 제가 모르는 것들을 불안해해요. 연기라곤 짧은 단막극 한두 개밖에 없는 상황에서 <궁>에 들어가다 보니, 기본적으로 항상 쫄아 있었어요. 가령 “렌즈 갈아~”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혼자 ‘어…어…어…?’ 하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이야 연기할 때 콘티가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그땐 몰랐죠. 어쨌든 <궁>의 흥행으로 자신감을 얻고,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게 되니까, 다음 현장에서는 덜 쫀 거죠.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자의 차이였군요.
=우리가 아는 길을 갈 때와 모르는 길을 갈 때 완전히 다르잖아요? 그런 느낌인 거죠.
–뮤지컬 <돈주왕>은 어땠습니까. 그 또한 익숙하지 않은 길이었잖아요?
=<돈주왕>은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게, 그때 음악감독님이 그런 편지를 주셨어요. ‘다른 파트에서 활동하다가 넘어온 배우들 통틀어서 너만큼 열심히 한 사람 본 적 없다’라고. 그런데 사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잖아요? 보통 뮤지컬 시스템은 10 to 6을 하다가, 공연 시작 2주를 남기고 10 to 10을 해요. 그런데 저는 늘 두 시간 전에 나가서 연습하고, 문을 닫은 후에도 남아서 연습했습니다. 쉬는 날 없이요.
–그게 어떤 마음이었나요. 부담감?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
=저는 성격이 그래요. 남들이 잘한다고 하든, 못한다고 하든, 저 스스로 자신감이 들 때까지 해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신 준비됐다고 생각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죠. <돈주왕>이 더블캐스팅이었는데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모두 저를 예뻐해 주셨어요. 공연 첫날, 모두 보러 와 주셨는데 저 빼고 모두가 목에 담이 왔다는 거예요. 제가 실수할까 봐 숨죽여 보시는 바람에 말이죠. 공연 끝나고 다들 “지훈이 많이 떨렸지?” 하는데, 정작 저는 “안 떨렸는데요…” (일동 웃음)
–자기 기준이 높다고 해야 할까요?
=허들이 높긴 합니다. 요즘은 그래도 편해졌어요. 세월과 함께 나름 쌓인 게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허들만 높아서 제가 저 자신을 되게 괴롭혔던 것 같아요. <궁>과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조금 기뻐할 수 있는데 계속 채찍질만 했던 거죠.
–아까 그랬잖아요? 깨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었다고. 그럴 때 뭐가 가장 중요할까요? 주변에 좋은 이야기를 건네주는 조언자? 아니면 나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 혹은 다른 무엇?
=정우 형과 김용화 감독님이 해 준 말이 있어요. 듣는 순간 ‘아, 내가 찾아 헤매던 답이다!’ 싶었던 말입니다. 두 분이 그랬어요. “큰 사랑을 받을 땐 깊이 감사해야 한다. 내가 잘나서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일에는 변수가 참 많으니까”라고. 맞는 말이에요. 우리가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중간 과정엔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소위 말하는 운이라는 게 분명 있거든요. 흥행은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닌 거죠. 그러니 큰 사랑을 받을 땐 그저 감사해야 하는 거고요. 그 말이 점점 와 닿고 있어요.
–말씀처럼 영화나 연기라는 게 크고 작은 변수가 너무 많은 일이기에 웬만한 약한 마음으로는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부침(浮沈)은 몇 번 겪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요. 절대 나아지지 않아요. 그래서 조금씩 아픈 거예요, 다들. 그래도 요즘은 이전에는 밝히길 꺼려했던, 공황장애나 우울증들을, 조금씩 커밍아웃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나쁘지 않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네. 가치는 계속 변해 가는데, 그 가치를 따라가는 시간은 다를 수 있잖아요?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타인이 보기엔 고집이나 아집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나는 바뀔 의향이 있는데 그 시간이 조금 늦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고민이 있는 거죠.
이날 주지훈의 차는 여러 번 서행했다. 골목 사이에서 사람이 걸어 나올 때, 옆 차가 바짝 붙을 때, 주지훈은 늘 빨리 달리는 쪽보다 속도를 잠시 줄여 상대를 먼저 보내는 쪽이었다.
–아까부터 느끼고 있는 건데 양보 운전이 몸에 배셨네요? 운전하면 원래 성격이 나온다고 하는데, 의외의 장점을 지금 지켜보고 있습니다. (웃음)
=하하하. 기자님이 옆에 타고 있어서 이러는 게 절대 아니에요. 평소에도 운전을 살살해요. 운전하면서 큰 소리 내는 것도 싫어하고요. 웃기게도, 이것도 젓가락질처럼 어릴 때 영향입니다. 친구 아버지 차를 타고 가는데, 꼬맹이 하나가 도로로 튀어나온 적이 있어요. 차가 ‘끽’ 급정거했죠. 저는 친구 아버지가 당연히 소리 지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창문도 안 내리고 혼잣말로 조용히 이러시는 거예요. ‘아이고~아가야, 다친다. 조심해라’ 그런데 그게 또 너~무 멋있어 보였어~!!! (일동 폭소) 그래서 제 운전습관이 이렇게….
–당신을 이롭게 할 운명의 차에 타셨던 거네요.
=네. 한순간의 친절이 한 사람을 바꿨던 거죠.
-(룸미러에 비친 주지훈의 눈을 본다.) 실물로 보면 안 그런데, 사진이나 거울에서는 짝눈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습니다.
=나이 먹을수록 콜라겐이 떨어져서 더 심해지고 있어요. (좌중 폭소) 쌍꺼풀 없는 눈두덩이 점점 더 내려와요. 실제로는 잘 인식을 못 하는데 화면으로 보면 티가 나죠.
–그게 당신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얼굴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달까요.
=저 역시 장점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사실 <마왕>은 거의 눈 때문에 캐스팅 됐어요. 쌍꺼풀 있는 곳이 조금 더 부드러우니까 감성적인 신에서는 이쪽을 많이 활용하셨죠.
–특유의 말투가 있습니다. 어미 끝을 스타카토처럼 끊는 느낌이 있어요. 그게 공격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은데, 뭐랄까. 첫 만남 땐 진입장벽을 높게 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시니컬해 보인다고. 옛날에는 실제로 말도 되게 툭툭 나갔고요. 지금은 완화된 건데, 사실 쑥스러울 때 나오는 투이기도 해요. 제가 낯을 엄청 가렸어요. 열아홉 살 때 패스트푸드점에서였나? 콜라가 너무 마시고 싶은데 리필이 가능한지 물어보는 게 쑥스러워서 2시간 넘게 앉아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일동 웃음)
한번은 또 버스를 타고 부산에 있는 친구들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죠. 정보를 찾아봤을 땐 분명 5시간 30분 정도 거리였어요. 그런데 하필 제가 창가 쪽에 앉은 겁니다. 그땐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라서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이 안 됐어요. 모르면 버스 아저씨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그러려면 옆에 사람에게 잠시 실례한다는 말을 해야 하니… 결국 8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탔어요. 목적지를 지나쳐서 3시간을 그냥 앉아있었던 거죠. 식은땀 흘리며. (폭소)
–상상하기 힘든 소심한, 귀여움이네요. 지금도 설마…?
=지금은 너무 잘해서 문제죠. 누가 안 된다고 하면 “(익살맞게) 진짜 안 되나~요?” 계속 장난쳐서 문제에요, 이젠. (웃음)
–부산 가는 길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닌데, 혹시 공간 감각이 안 좋으신가요?
=저, 지리가 꽝입니다. 완전 길치에요. 그래서 늘 가는 길만 가죠. 하하하.
–오늘은 익숙한 길이라 내비게이션 없이도 잘 가고 계신 거군요. (웃음) 밴드 ‘제스터즈’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이번 인터뷰 준비하면서 직접 작곡하신 ‘인 더 레인’(In the Rain)을 계속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데 음원은 왜 없는 건가요.
=혹여나 있을 수 있는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밴드를 하는 건 취미거든요. 함께 하는 멤버들은 모두 음악적으로 인정받는 친구들인데, 우리가 모인 건 재미있는 걸 해 보자는 의미에요. 그래서 음원을 내지 않았어요. 돈을 받고 파는 순간 음악적으로 여러 말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노래도 그렇고 시간을 투자해서 무언가를 해보는 건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능한 선 안에서 말이죠.
–경험의 힘을 믿는군요.
=네. 그래서 저는 고민거리를 안고 오는 후배들에게도 늘 ‘두잉’(Doing)을 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선배들과 있을 때와 후배들과 있을 때의 당신을 다른가요?
=저는 똑같은데 형들이랑 있는 게 더 조금 더 편하긴 합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행동을 해도 형들은 귀엽게 보고, 동생들은 무섭게 보거든요. 가령 제가 술을 막 마셔요. 그랬을 때 “(형님들) 아이고~ 우리 지훈이 잘한다, 잘한다!” 랑, “(동생들) 엇! 형님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신가?” 와는 다르잖아요. (일동 폭소) 농담을 해도 형들은 귀엽게 장난으로 받아주시는데, 동생들은 “어? 현장 이야기다! 귀담아 들어야겠다” 이러기도 하고요. 분위기 자체가 아예 달라요. 의도한 게 아닌데. (웃음)
–내가 누구인지는 타인이 규정하는 것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죠.
=맞아요. 아, 동생 가게에 도착했네요.
#2. 삼청동, 주지훈 아지트 카페
PM 02:35. 1시간 30분가량의 드라이브를 끝내고 당도한 그의 친한 동생 ‘원바’(주지훈이 부르는 별명)가 기거하는, 지금은 잠시 문을 닫은 3층짜리 카페는 한때 라운지바와 키즈카페로 운영된 복합문화예술 공간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주인장의 공간답게, 느낌 있는 소품과 가구가 즐비했다.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 저는 매번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오늘 우리가 12시 5분에 만났잖아요? 만나서 점심 먹으러 XX를 갔단 말이죠. 그런데 만약 오늘이 연휴라 가게가 문을 안 열었거나, 아주머니가 실수해서 음식이 1분 늦게 나왔다고 해봐요. 그랬다면 여기 삼청동 오는 시간에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 한 명도 못 만났을 거예요.
–오…그런 생각을 하셨다니.
=1분이면, 누군가는 버스를 놓쳤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세수를 늦게 하고 나와서 그 시간 그 공간에 없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시계 톱니바퀴처럼 뭐 하나만 안 맞아도 스칠 수 없었을 거예요.
–운명을 믿으십니까.
=운명이 정해져 있다기보다, 그냥 신기해요. 연인관계도 신기하고, 동료관계도 신기하고, 지금 매일 같이 붙어 다니는 형들(정우성, 하정우 등)과의 관계도 신기합니다. 형들과는 나이 차이가 꽤 나고, 걸어온 길도 너무 다른데, 어쩌다 이렇게 만나서 함께 하고 있어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죠, 사람 사이엔.
=제가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인간은 우성이 형이에요. 그 형님은 진짜 보살이거든요, 보살. 엄청나요. 그런 우성 형처럼은 제가 어려울 것 같고. (웃음) 현실적으로는 정우 형처럼이면 참 좋겠다 싶어요.
–인생의 가장 첫 인연은 아무래도 가족이죠.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고 들었어요.
=유전자가 무섭습니다. 제가 아버지랑 똑같이 생겼는데, 무의식중에 나오는 자세나, 손 모양새, 걸음걸이조차 정말 비슷해요. 제가 여동생과는 별로 안 닮았거든요? 그런데 요즘 성별 바꾸는 페이스 앱이 있잖아요? 그거 해 봤더니, 제 동생 얼굴이 나온 거예요. 닮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내 동생이야~ (일동 웃음) 와, 핏줄이라는 게, 참. 동생과 친하냐고요? 저희 현실 남매입니다! (웃음)
–부지중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종종 언급하는 걸 봤습니다.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는 의미겠죠?
=그럼요. 어릴 때 저는 되게 행복했어요. 그런데 남들이 보기엔 가난했죠. 화장실이 밖에 있는 집에 살았어요. 왜 옛날식 화장실 있잖아요? 겨울이면 연탄불에 물을 데워 부엌에서 목욕했고요. 제가 이런 이야기 하면 주변에서 “60년대 생이냐, 넌?” 이러시죠. (웃음) 그러다가 아홉 살 때부터 우리 가족이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들과 함께 살았어요. 방 두 개 있는 12평에서요. 그래서인지, 저는 또래들에 비해 뭘 대수롭게 생각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어른들과도 굉장히 잘 어울려 지내서, 사물을 대하는 관점이나 생활방식도 나이에 맞지 않은 부분이 있고요.
–뭔가 방목형으로 혼자 쑥쑥 잘 성장했을 것 같다는 짐작을 하게 되네요.
=네. 오밤중에 깨서 비몽사몽 화장실을 가려고 방문을 열었다가, 그 문이 제 발 위로 드르륵 할퀴고 지나간 적이 있어요. 발가락 다섯 개 살이 다 들렸죠. 잠시 “아아~” 하고는 휴지로 감싸고 그냥 잤어요. (웃음) 뭐, 부러진 건 아니니까. 그런 성격이에요, 제가.
–그래서일까요. 당신 과거 인터뷰를 찾아보면, 현장이 ‘힘들었다’거나 하는 투정이 거의 없더군요. 현장에서의 고난기는 배우들 인터뷰의 단골 메뉴이기도 한대요.
=왜냐하면… 그건 당연히 힘든 거니까요. 가령 여름엔 더운 거고 겨울엔 추운 거잖아요. 액션영화를 찍으면 액션이 많아서 힘들고, 액션이 없는 걸 찍으면 ‘아, 차라리 몸으로 하는 게 낫다’ 하죠. 저는 모든 배우가 같은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있는 핸디캡은 핸디캡이 아니죠.
–모두에게 있는 핸디캡은 핸디캡이 아니다… 훅 왔어요. (웃음) 인간은 누구나 자격지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과가 확연히 갈리는 배우 세계는 특히 더 그러겠죠?
=자격지심, 당연히 있죠. 저도 있어요. 다만 그걸 어떻게 담아내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토사물(부정적)로 만드느냐, 향기(긍정적)로 내뿜느냐의 차이인 거죠. (웃음)
–어떻게 향기로 내뿜을까요.
=자격지심이 있을 땐 연습이지 않을까 싶어요. ‘토사물이긴 한데, 저건 우리 집 화분에 좀 주고 싶어. 그럼 비료가 될 것 같아!’ 하는 쪽으로 저를 바꿔야죠. (기자가 배꼽을 잡고 웃자) 왜 고래 토사물이 그렇잖아요. 그게 냄새가 되게 심한데 최고급 향수(용연향) 원료에요. 작은 게 몇 억씩 해요. 힘들긴 해도, 향수의 원료처럼 되려면 연습밖에 없다고 봐요.
–이 말은 개인적으로도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웃음) 참, 가족처럼 여기는 반려견이 있죠? ‘부탄 아빠’로 불리시던데.
=하하. 지금은 엄마가 키우고 있어요. 지방 갈 때마다 엄마에게 맡겼는데, 엄마가 너무 정이 들었는지 돌려주지 않겠대요. (웃음) 우리 엄마가 부탄이를 얼마나 아끼냐면, 한여름에 제가 가도 에어컨을 안 틀어줬었어요.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그런데 이번 여름에 부탄이가 헉헉 댄다고 24시간을 틀었대요. 하, 부탄이에게 내가 밀렸어~ (일동 폭소) 날도 선선하고, 기분도 좋고… (원바에게) 와인 있나? 화이트 와인 한 잔, 괜찮으세요?
-(화색) 물론이죠!
=웬만하면 안 마시려고 했는데 오늘 결국 대리운전을. (웃음) 요즘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하루하루의 이런 ‘모멘텀’이 너무 소중해요. 20대 때는 보너스가 한 번은 더 올 거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어요. 여전히 청춘물을 하는 30대 형들을 보며, 시간의 거리감을 크게 느끼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지금 제가 30대 후반이에요. 이제 똑같은 시간이 지나면 40대 후반이 돼 버리잖아요? 지금, 이 순간이 제가 청년으로 머무를 수 있는 마지막 시간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것들이 지금 작품을 더 많이 하게 하는 이유일 수도 있어요.
PM 06:00 이날 서울은 하루 종일 맑았고, 기온도 적당했다. 시침이 저녁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자 하늘이 불그스름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주지훈은 “이 시간 풍경을 봐야 한다”며 2층 테라스로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사실 2층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1년 중에 그리 많지 않거든요. 겨울에 춥고, 여름엔 덥고, 초여름까진 또 미세먼지에 황사에. 오늘은 정말 최적의 날이네요.” 과연, 올해 본 풍경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노을이, 바람이, 해와 달이 눈앞에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린 배달 음식과 와인을 먹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뜨거운 지지를 보내주는 팬들이 많아요. 그러나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당신을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음…당신에게 그런 시선은 견뎌야 하는 일일까요.
=(생각) 그건…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제가 서른일곱이고, 키가 187cm이고, 우리 아버지 아들인 것처럼, 나의 실수로 잘못을 한 것은 지울 수가 없어요. 저를 볼 때 불편한 분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에겐 정말이지 죄송해요. 그런데 그 반대의 목소리들이 있는 것도 알아요. 가령 “저는 우울증이고, 무기력한데, 당신 작품을 보고 나서 희망을 얻었다”라는 편지들도 받거든요.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여전히 많지만, 그러다가도 나를 좋아해 주는 분들을 보면 제가 그래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들을 위해 연기를 한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하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상쇄시켜주는 일을 한다는 건 확실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저도 힘들 때 많은 영화를 보면서 버텼거든요.
–이전의 당신은 잘 모르지만, 지금의 당신은 참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엄청난 긍정의 에너지가. (웃음)
=형들 만나서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오늘 지긋지긋 형들을 말하고 있는데, 진심이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말이 나오는 거예요.
–진심인 게 느껴집니다.
=제가 형들 만나고 여러 가지로 바뀌었어요. 지출에 대한 부분도요. 개인마다 ‘이 가격은 나에게 조금 센 것 같은데?’ 하는 기준이 있잖아요? 아끼는 사람에겐 좋은 술을 살 수도 있는데, 제가 가난하게 자란 것도 있고, 또 아끼는 버릇이 있다 보니 너무 비싼 술은 주저했던 순간들이 많아요. 그런데 형들은 항상 “우리 지훈이 좋은 거 먹여야지” 하면서 늘 베푸세요. 그들이 결코 돈이 많아서가 아니에요. 그건 그냥 습성이고 성격인 거예요. 그 형들은 과거에도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 쪼개서 후배들 밥 사 먹이고 그랬어요. 그런 형들을 보면서 돈을 펑펑 쓰는 게 아니라, 어떤 지출이 가치 있는 지출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주지훈은 연신 형님들의 사랑을 고마워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형님들의 사랑이 넘치는 건 그들의 성정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지훈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언제고, 주지훈을 바라보는 형님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싹싹하고, 수더분하고, 분위기도 잘 띄우는데, 심지어 믿음직스럽기도 한 주지훈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엔 누구 할 것 없이 미소가 한 가득 떠 있었다.
=제가 형들에게 결제나 이런 걸 배운 게 아니라 아름다움을 배운 거예요. 아름다움. 오글거려서 쓰지 않았던 말인데, 나이 들수록 심플하고 대단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치 있는 지출이란 말이 참 좋습니다. 하지만 미디어의 속성은 엔터테이너들을 혼란스럽게 하죠.
=아직 자아가 형성되기 전에 나라는 인간의 가치를 좋은 물건, 좋은 차에 맞추는 건 조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사랑해서 좋은 물건들을 나에게 덧입혔을 때의 느낌을 좋아해야지, 내가 이 물건을 착용했을 때 자신감이 올라오는 건 되게 허망하거든요, 인생이.
–이전의 당신은 어땠나요.
=저는 조금 반대되는 지점이 있었어요. 제가 이전에는 시사회를 갈 때 ‘조리’(플립플롭스) 신고 가고 그랬어요. 그때 아는 형이 그러더군요. “지훈아, 너는 네가 그냥 멋있지?” (일동 웃음) 그땐 “친구 시사회 놀러 가는 건데, 굳이 차려입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주장을 이기적으로 읊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또한 ‘나 느낌 있어. 나 좀 봐 줘’ 인 게 아니었나 싶거든요.
-‘난, 외부 시선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야’ 라는 느낌이었던 걸까요.
=그랬던 거죠. (웃음) 저는 진짜가 되고 싶은데, 사실 진짜가 뭔 줄 모르겠어요. 허상을 원하면서도 싫어하고요. 어떨 때는 타인의 평가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생각하다가도, 어떨 때는 또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도 되게 고뇌하는 30대인 거예요. 결론이 나질 않아요. 계속 생각만 많지. 다만 그때그때 트라이를 해 보는 거죠. 그러면 욕을 먹을 때도 있고, 칭찬을 받을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존경하는 건 뭔가요.
=진실! 정우성, 하정우, 김용화, 황정민, 윤종빈, 한재덕! 자신들이 한 말을 지키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사람들이 진짜가 되는 것 같아요.
–당신도 진실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이란, 확신이 오늘 들었어요.
=어우~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마치 뭔가 아는 것처럼 지냈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 등골이 오싹해져서 묻게 돼요. ‘와, 진짜 축복이다. 내가 그러고도 살아남았구나.’ 부끄럽죠. 그런 것 같아요. 인정하면 편한 것 같습니다. 나는 한낱 나약한 인간일 뿐이구나, 인정하고 나를 제대로 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PM 09:30. 나는 그가 수다쟁이라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건 몰랐다. 그러니까 주지훈은 ‘공간능력’은 떨어지지만, ‘공감능력’은 뛰어난 사람이었다. 이날 대화 도중 ‘역 인터뷰’를 당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는데(녹취를 풀면서 뒤늦게 머리를 뜯었다), 상황을 파악하고도 주지훈에게 말려든 건(?), 그가 지닌 특유의 ‘공감능력’ 때문이었다. 그의 ‘공감능력’이 강력한 건, 그것이 책상머리에서 습득해서 나온 게 아니라 직접 넘어지고 깨지고 다시 일어나며 터득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어서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린 헤어지며 ‘혹시 못다 한 대화가 있다면 다시 만나자’는 합의를 했는데, 그의 드라마 촬영이 본격 시작되는 시점이라 성사될 수 있을까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이 한 말은 어떻게든 지키려’하는 주지훈은 정말로 바쁜 일정을 쪼개 자신의 시간을 다시 한 번 내줬다.
*주지훈과의 두 번째 만남은 2부로 이어집니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