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캐리와 미셸 공드리가 만든 성인용 미드 <키딩>을 꼭 봐야 할 이유

<키딩>의 주인공 제프 혹은 피클스 아저씨(짐 캐리)는 어린이용 방송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 극장>의 진행자다. 그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노래한다. 동심의 세계를 창조하는 신이다. 전 세계 어린이가 수십 년째 그의 방송을 보고 있다. 그런데 TV 밖의 피클스 아저씨 아니 제프는 어떤 사람일까. 피클스 아저씨 방송의 제작자이자 제프의 아버지(프랭크 란젤라)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시즌 1의 1화에서 말이다.

네 안에 두 사람이 있어. 한 명은 피클스 아저씨지. 1억 1200만 달러짜리 라이선스 사업으로 에듀테인먼트 장난감, DVD, 책들을 만들어서 이 작은 자선 단체를 굴러가게 해. 다른 한 명은 제프야. 별거 중인 남편이자 슬픔에 잠긴 아버지. 마음의 상처들을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이지. 장담컨대 두 사람은 만나면 안 돼. 안 그러면 둘 다 망가져.

한 가지, 제프의 아버지 셉이 빼놓은 게 있다. 제프는 쌍둥이 아들 가운데 한 명인 필(콜 앨런)을 자동차 사고로 잃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아내(주디 그리어)와 별거 중이며 슬픔에 잠기게 됐다. 그는 아버지에게 죽음에 대한 방송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가 위의 대사를 듣는다.

어른들을 위한 인형극(?)

자, 이제 <키딩>이 어떤 이야기인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키딩>은 어른들을 위한 다크 버전 인형극이다. 굳이 다른 제목을 달아보자면 <피클스 아저씨의 19금 리얼 극장>정도 되겠다. 포스터에 <키딩>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결을 알 수 있는 문구가 있다. ‘유감이지만 이게 현실이야.’

제프를 비롯해 ‘F워드’를 별스럽지 않게 사용하는 가족들은 모두 정상이 아니다. 제프는 아내와 아들, 아내의 새 남자친구가 사는 바로 옆집을 사들인다. 그리고는 아내 질을 훔쳐본다. 쌍둥이였지만 혼자 남은 12살 윌(콜 앨런)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마리화나를 피기 시작했다. 인형극에 쓰이는 인형을 만드는 손재주가 탁월한 제프의 누나 디어드러(캐서린 키너)도 결혼생활이 위태롭다. 남편 스콧(버나드 화이트)이 게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부모가 이혼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늦은 나이에 시험관 시술로 얻은) 그녀의 딸 매디(줄리엣 모리스)는 이유 없이 괴성을 지르는 증상이 생겼다. 이 가족의 이상한 점은 정말 많다. 하나하나 설명했다가는 정작 중요한 말을 못 하게 되고 말 것이다.

죽음과 가족의 붕괴가 핵심이고 섹스, 동성애, 마리화나, 약간의 마약과 폭력 등이 양념인 <키딩>을 보기 시작한 어른들은 이들의 기행을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골 때리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동심의 세계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점점 이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모두 어른이기 때문이다.

미셸 공드리의 세계

<키딩> 속 가족의 괴상한 행동 즉 진짜 세계는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 극장> 방송 화면의 가상의 세계와 교차되면서 보여진다. 제프는 이 방송을 통해 피클스 아저씨가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노래한다. 피클스 아저씨와 인형들은 드라마 속 또 다른 드라마라고 봐도 좋다. 그렇게 드라마와 드라마 속 드라마가 서로 겹치고 어느 순간 뚝 끊기기도 한다. <키딩>은 진짜와 가짜의 세계를 절묘하게 오가는 판타지적 구성을 가지고 있다.

두 세계를 잇고 끊는 장면의 연결, 컷의 구성이 다채롭고 절묘하다. 마약에 쩔어살던 여성이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의 한 장면에 감명을 받고, 새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방 안의 모습이 변화하는 과정을 담은 2분 롱테이크 시퀀스나 멕시코의 농장에서, 공장으로, 슈퍼마켓으로, 그리고 필이 죽은 사고를 낸 트럭 기사의 집까지 이어지는 피클의 이동 과정은 눈호강이라고 봐도 좋을 촬영과 편집이다. 여기에 드라마의 흔히 볼 수 있는 뻔한 카메라의 배치와 움직임 대신 창의적인 숏을 보여준다. 특히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앞 사람의 어깨를 화면 한쪽에 배치하고 두 인물이 대화하는 오버 더 숄더 숏이 거의 없다. <키딩>의 훌륭한 점은 또 있다. <키딩>은 한 편의 에피소드 안에서 완결된 구성을 보여준다. 에피소드를 시작할 때 짧은 프롤로그가 등장하고 이에 관한 본편이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에필로그로 끝나는 구성이 돋보인다. 에필로그와 본편 사이 제목 키딩(Kidding)의 알파벳을 종이 공예를 통해 짧게 보여주는 타이틀 시퀀스도 인상적이다. 매번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터널 선샤인>의 화면 전환을 기억하는가, <수면의 과학> 속 인형과 세트를 기억하는가. 그렇다. <키딩>은 미셸 공드리의 작품이다. 단, 그가 모든 에피소드를 연출한 것은 아니다.

짐 캐리의 세계

미셸 공드리의 아름답고 세계의 주인공은 짐 캐리다. 짐 캐리의 이름을 너무 늦게 불러낸 듯하다.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맨 마지막에 먹는 심정이랄까. 짐 캐리의 연기에 대해서 뜸을 들이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짐 캐리의 연기는 탁월하다. ‘에스콰이어’는 <키딩>에서 보여준 “짐 캐리의 연기를 지난 10년 이상 보여준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라고 치켜세웠다. 첨언하자면 굳이 10년(more than a decade)이라는 말을 붙여야 했을까 싶기도 하다.

제프/피클스 아저씨를 연기하는 짐 캐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짐 캐리가 단순히 코미디영화의 개그 연기만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새삼 그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모두 있다. 그의 작은 표정, 몸짓, 손짓, 눈동자, 눈썹, 입꼬리의 움직임 등 모든 게 뛰어나다. 타고난 재능인 것 같다. 카메라가 짐 캐리의 얼굴을 클로즈할 때는 (이제는 많이 늙은 그의) 미간 주름마저 연기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키딩>의 크리에이터, 쇼러너인 데이브 홀스타인은 짐 캐리를 염두에 두고 이 드라마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짐 캐리가 아니면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짐 캐리의 제프/피클스 아저씨를 보면 과거 그의 필모그래피를 떠올릴 수도 있다. 특히 <트루먼 쇼>와 <이터널 선샤인>이 떠오른다. <트루먼 쇼>가 피클스 아저씨쪽 이라면 <이터널 선샤인>은 제프에 가깝다.

모든 아픔의 이름

어른들을 위한 19금 다크 버전 인형극 <키딩>은 미셸 공드리가 창조한 기묘하고 놀라운 세계이면서 짐 캐리의 연기가 일품인 잘 만든 드라마다. 블랙 코미디로서 <키딩>은 웃기고 슬프고 짠하다. 제프와 가족 모두가 그 나름의 사정이 있으며 상처가 있다. 제프는 “모든 아픔에는 이름이 필요하다”고 소리친다. <키딩>은 그 아픔, 필의 죽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혼돈을 보여준다. 이윽고 점점 깨닫게 된다. 이름이 정말 필요할까. 모든 아픔은 치유된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물론 가족도 당신의 편이다. 제프는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리고 가족과 함께 보내라고 말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제프의 아버지의 대사가 조금 더 이어진다.

네 상처가 낫길 바라. 하지만 나아야 하는 건 제프지. 피클스 아저씨는 멀쩡하니까.

결국 <키딩>은 진짜의 세계에 사는 제프의 이야기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키딩>을 볼 수 있는 어른이고 진짜 세계에 살고 있다. 부디 그가 상처를 후벼파고 괴로워하는 과정을 보며 자신의 아픔에 이름을 붙이려고 하지말자.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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