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며 등장한 이래 꽤 흥미로운 지점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추가한 히어로다. 숨겨진 강국 와칸다의 왕이었다는 점부터 시작해 미지의 물질로만 여겨졌던 비브라늄을 어벤져스들에게 대거 공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 독특한 수트와 전투방식 역시 그랬다.
전세계적으로는, 솔로무비가 별도로 존재하는 히어로들 중에서는 최초로 흑인 히어로였다는 점 역시 그랬다. 와칸다는 가상의 국가지만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문명의 특성을 다수 포함하고 있는 설정을 갖고 있었는데, 이 점이 전세계 흑인들 특히 미국 내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흑인들에게 꽤나 큰 매력포인트로 작용하기도 했다.
인기에 힘입어 <블랙 팬서>는 2편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를 일찍이 확정짓고 제작 과정에 돌입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무기한 연기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티찰라 역을 맡아 멋진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채드윅 보스만이 갑작스런 비보를 전하면서 난관을 겪게 됐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제작에 돌입하여 최근에는 MIT(메사추세츠 주립공대)에서 촬영 중인 스틸컷을 공개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 진행 중인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이야기를 천천히 정리해 본다.
작중의 와칸다는 숨겨진 왕국이다. 와칸다라는 국명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 중에서도 최빈국이었을 뿐, 수많은 양의 비브라늄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세계 어떤 국가보다도 과학적으로 발전되어 있다. 자기부상열차를 대중교통으로 이용할 정도임은 물론이고, 국가를 외부로부터 숨기기 위해 거대한 홀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외부인들 중 거의 유일하게 와칸다의 정체를 인지하고 있었던 율리시스 클로는 와칸다에 대해 상상 이상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으며, 와칸다의 잠재능력에 대해 전설 속 엘도라도에 빗대기도 할 정도였으니 작중 와칸다의 강대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전편인 <블랙 팬서> 마지막 장면에서 티찰라가 와칸다를 외부에 공개하기 전까지 MCU 내부에서 와칸다는 베일에 싸인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칸다는 전세계의 고통받는 흑인들 앞에 서기 위해 글로벌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차이며, 작중에 와칸다가 등장하지 않던 시간들 동안 어떤 일을 해냈으며 전편에서 짧게나마 언급되었던 여러 가지 와칸다의 계획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역시 2편에서 주목해 볼 만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시리즈의 시작인 <블랙 팬서> 1편에서는 비브라늄과 더불어 와칸다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토대로 제작한 발명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앞서 언급했던 공중부양 열차와 호버크래프트(에어쿠션을 이용한 공중부양 수송 수단), 상용화된 지 오래인 것처럼 보이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비브라늄으로 제작된 최첨단 무기들과 전투복 등. 여기에 블랙 팬서와 슈리, 오코예 등이 사용하는 다양한 아이템들 역시 그랬다.
아이언맨이 최후를 맞이하면서 어벤져스 내에는 이런 ‘테크니션’이 없어진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추후 슈리가 어벤져스의 브레인이자 사이언티스트로서 합류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다양한 아이템과 장비를 제공하며(스파이더맨의 수트,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등) 어벤져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던 토니 스타크의 빈자리를 와칸다를 위시한 슈리가 채우지 않겠느냐는 것이 요지였는데.
때문에 이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와칸다가 어벤져스는 물론 히어로들 전체에게 미칠 영향은 꽤나 크다고 할 수 있다. 슈퍼히어로 무비의 묘미 중 하나인, 공상과학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첨단 신기술을 눈으로 마주치는 그 감각을 와칸다를 통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먼저 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주연배우인 채드윅 보스만이 지난해 8월에 대장암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채드윅 보스만의 투병 사실에 대해서는 마블의 수장인 케빈 파이기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2016년에 암 선고를 받고 무려 5년이나 투병 중이었던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동시에 와칸다의 얼굴이기도 했던 ‘블랙 팬서’ 채드윅 보스만의 부재 속에 2편에 대한 질문들도 이어지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그랬듯 CG로 복원하는 방식으로라도 등장시키지 않겠느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채드윅 보스만은 CG로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며 배우 교체 역시 없을 것이라는 공식 입장이 밝혀지면서 2편에 대한 호기심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결론적으로는 티찰라 역시 작중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개될 예정으로 보인다. 촬영 시작 후 한달만인 7월 말에 유출된 촬영장 사진에 의하면 와칸다 왕궁 내부에 왕을 추모하는 메시지가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티찰라의 사망 이후 새롭게 ‘블랙 팬서’, 즉 와칸다의 국왕 자리를 누가 이어받게 되었는지 역시 2편의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와칸다의 다음 국왕이자 ‘블랙 팬서’가 될 만한 캐릭터들은 꽤 있는 편이다. 차기 블랙 팬서 혹은 아이언맨을 이어받을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있었던 슈리도 있고, 원작에서의 부활 스토리를 그대로 따온다면 티찰라에게 패배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에릭 킬몽거 역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작에서는 티찰라와 와칸다의 전반적인 세계관에 대한 소개에 전력을 쏟다 보니 여타의 캐릭터들이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2편에서는 전편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와칸다의 면면이라든지, 와칸다 왕가와 그 주변 인물들의 더 개인적인 이야기라든지-을 좀 더 펼쳐놓을 생각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인피니티 워를 위시한 사건들을 거치며 기존 어벤져스 캐릭터들과 친화되었을 와칸다의 다양한 인물들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외에, MCU에 등장하지 않은 히어로 캐릭터들 중 자주 언급되었던 네이머가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현지 언론에 따르면(루머일지도 모르겠지만) 와칸다가 아틀란티스와 충돌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이 주요한 골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마블 세계관에도 아틀란티스 왕국이 등장하게 된다면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 볼 수 있을지도.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든 캐릭터들을 통틀어 가장 멋진 등장 중 하나였던 ‘블랙 팬서’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물론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채드윅 보스만의 모습을 다시는 마주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리라.
장장 5년간이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심지어 마블 측에서도 몰랐다고 하니…) 외로운 투병생활을 이어갔을 채드윅 보스만의 의지는 어찌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최초의 흑인 히어로이자 마블에서도, 헐리우드 영화 전체에서도 유의미한 성과였던 <블랙 팬서>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채드윅 보스만의 확고함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마블이 채드윅 보스만을 CG로 복원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채드윅 보스만의 연기를 통해 와칸다의 더 많은 모습을 만나볼 수 없게 된 것은 아쉽기 그지없는 일일 것이나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작중에 와칸다의 모습을 더욱 상세하게 엿볼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어쩌면 1대 블랙 팬서로 남게 될 ‘티찰라’ 채드윅 보스만에 대한 추모이자 또 다른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7월 8일, 이제 채 1년도 남지 않은 개봉일을 기다리며.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