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우리도 특정 인종을 향한 인종주의적 선동과, 성적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 장애인들을 향한 공격,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광장 가득 울려 퍼지는 세월을 산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나치즘에 심취한 10살짜리 히틀러 유겐트 소년 요하네스 ‘조조’ 베츨러(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의 성장기를 다룬 반전영화 <조조 래빗>(2019)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건 ‘캡틴 K’ 클렌첸도르프 대위(샘 록웰)였다. 클렌첸도르프는 철십자훈장, 전차격파은장, 보병돌격동장 등을 수훈한 전장의 베테랑이지만, 오른쪽 눈 시력을 잃었다는 이유로 후방으로 밀려나 히틀러 유겐트 훈련교관이 되었다. 흐트러진 군복 차림에 언제나 술에 취해 있는 듯한 말투를 자랑하는 클렌첸도르프는, 히틀러 유겐트 소년소녀들을 앞에 두고 본심을 숨기지 못한다. 소년들에게는 “어차피 전쟁에서 우리가 지고 있다”라고 말하고, 소녀들에게 나치가 여성들에게 요구했던 “중요한 여성의 의무”를 이야기할 때엔 밀려오는 회의감에 한 호흡 쉬었다가 말을 잇는다. “상처 소독, 침대 정리… 그리고 임신하는 법.”
처음엔 국가를 향한 자신의 헌신이 배반당했다는 분노 때문에 저렇게 냉소하게 된 건가 싶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클렌첸도르프의 나치즘을 향한 냉소는 더 근원적인 것 같았다. 조조가 유태인을 신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클렌첸도르프는 돌격대-게슈타포-수용소로 이어지는 복잡한 신고절차를 이야기하며 비아냥대듯 덧붙였다. “그리고 별 상관없는 사람들도 보험 삼아 좀 잡아가겠지. 정신 나간 시대니까.” 클렌첸도르프는 조조의 집에 게슈타포의 불신검문이 들이닥쳤을 때 한달음에 달려와 조조를 보호했다. 조조의 집에 숨어 살고 있는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가 조조의 누나 잉거인 척하며 위기를 넘어가려 했을 때, 그 사실을 눈치 챘으면서도 묵인하고 넘어간 것도 클렌첸도르프였다. 전역하지 않고 군에 남아있기를 결심한 사람이, 왜 나치즘의 이념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듯 구는 걸까?
의문의 실마리는 영화가 끝나갈 무렵 잡혔다. 나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질 대로 짙어진 베를린 공방전, 전쟁의 참화 속에서 헤매는 조조의 눈 앞에 클렌첸도르프와 그의 부관 핀켈(알피 앨런)이 등장한다. 언젠가 조조에게 보여줬던 “적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군복 개량” 도안 그대로 만든 군복을 입고. 핑크색 가죽과 금속 스터드, 소매에 단 붉은 색 태슬, 군모에 단 화려한 깃털,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붉은 망토, 눈가에 짙게 칠한 검정색 아이쉐도우. 조조와 눈이 마주친 클렌첸도르프와 핀켈은 싱긋 웃는다. 그리고 클렌첸도르프의 군복 가슴에 주렁주렁 달린 훈장들 사이로, 큐빅을 둘러 훈장처럼 꾸민 핑크색 역삼각형 표식이 달려있다. 나치가 동성애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식별기호, 핑크색 역삼각형 말이다.
유대인 혐오 조장은 나치가 집권하기 전인 1920년대부터 나치의 공식적인 아젠다였다. 그러나 동성애자 탄압은, 적어도 나치가 집권하고 돌격대장 에른스트 룀이 처형당한 1934년 이전까지는 공식적인 아젠다가 아니었다. 물론 나치 내부에는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들이 득시글거렸다. “강인한 남성미가 돋보이는 건강한 육체”를 찬양하고 “독일인은 국가를 위해 더 많은 순수 독일 혈통 아이들을 낳아야 한다”고 주장해 온 나치 입장에서, 동성애자는 인구 재생산에 도움이 안 되며 이상적인 남성향을 해치는 퇴폐적인 무리로 보였다. 그러나 당장 나치 집권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돌격대의 돌격대장 에른스트 룀부터가 게이였다. 아직 룀이 필요하던 시절, 히틀러는 룀의 성 정체성을 문제 삼는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업무와 무관한 사생활은 문제삼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집권 이후 돌격대를 정치적으로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히틀러는 룀을 반역 혐의로 처형한다. 그리고 그 뒤로 나치의 동성애 혐오는 거리낄 게 없었다. 룀은 권력 내부의 파워 게임 때문에 토사구팽 당한 것이었지만, 나치는 대외적으로 룀이 퇴폐적이고 비도덕한 동성애 행위를 즐겼던 것이 큰 문제였던 것처럼 선전했다. 동성애 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었고, 게이 클럽들은 몰수되어 나치의 선전사무실로 개조 당했다. 게슈타포는 동성애 성향이 밝혀진 이들을 체포하며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공표해 대중의 모욕과 조롱을 유발했고, 다른 게이들의 이름을 대라고 고문해 재판에 넘겼다. 수많은 게이들이 수용소로 끌려갔고, 가슴에 핑크색 역삼각형 표식이 달린 죄수복을 입었다. 어떤 이들은 적극적으로 레지스탕스 운동에 결합해 활동했지만, 어떤 이들은 제 정체성을 숨긴 채 숨 죽여 그 시기를 버텼다. 아마 클렌첸도르프도 그 시기를 버티려고 군에 남았던 거겠지.
제 정체성을 숨긴 채 숨 죽이고 살았을 클렌첸도르프의 삶이 어땠을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1934년 전까지만 해도 ‘유대인’에게 몰렸던 증오와 혐오가, 룀의 처형 이후 동성애자들에게도 몰리기 시작했을 때 클렌첸도르프가 느꼈을 당혹감을 상상해 볼 수는 있다. 아, 이런 거였구나. 광기 어린 혐오 선동에 몰려서 공격당하고, 터전을 빼앗기고, 대중에게 조롱당하고, 수용소에 갇히는 건 이런 거였구나. 더구나 여전히 훌륭한 사격 솜씨를 자랑함에도 한쪽 눈 시력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후방으로 밀려났을 때, 클렌첸도르프는 나치즘이 표방하는 ‘정상성’, ‘아리아인의 우월함’이라는 게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치는 전쟁과 건설을 수행할 수 있는 건강하고 강인한 육체를 찬양했고, 그랬기에 장애인에 대한 탄압도 꼼꼼하게 했다. ‘위대한 제3제국’에 이상적이지 않은 육체를 지닌 사람 따위는 눈에 안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클렌첸도르프의 캐릭터 설정은 개봉 당시 <조조 래빗>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클렌첸도르프의 존재가 “나치 안에도 사실은 착한 사람이 있었다” 같은 주장으로 이어져 나치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착시를 유발한다는 지적도 있었고, 나치 치하의 동성애자들이 수행했던 저항운동과 감내해야 했던 고난을 납작하게 축소한 채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만 소비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클렌첸도르프 캐릭터야말로 ‘혐오하는 이들은 한 가지 혐오만 하지 않는다’는 걸 상기시키는 장치라는 생각을 했다. ‘정상성’을 강요하며 인종혐오를 하는 이들은, 마찬가지로 ‘정상성’을 강요하며 성적소수자를 혐오하고, 장애인을 짐으로 여기며 혐오하고, ‘정상가정’을 강요하며 여성들의 일을 임신과 출산, 양육과 가사로 제한하려 든다. 자신의 성 정체성과 장애 정체성이 공격과 비하의 대상이 된 걸 알고 있는 클렌첸도르프가, 조조의 집에 숨어 사는 엘사를 묵인한 건 어쩌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리라.
다시, 조조와 엘사, 클렌첸도르프가 살았던 1940년대 나치 독일을 생각한다. 그 시절 독일을 지배했던 이들은 특정 인종을 향해 “우리 민족 공동체에 융화될 생각은 안 하면서 돈만 밝히는 수전노, 우리 민족이 어렵게 모은 자산을 빨아먹는 기생충, 끝내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유지하며 정치적 음모를 꾸미는 존재들”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성적 소수자들을 향해서는 “사회의 도덕과 윤리를 해치는 퇴폐적이고 부도덕한 존재”이며 “인구 재생산에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책무는 “아리아인의 인구를 늘리고 사랑으로 양육하는 위대한 모성”에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장애인들은 수용소로 보내자고 말했다.
글쎄, 잘 모르겠다. 2022년의 한국과 어디가 얼마나 다른 걸까. 지금의 우리도 특정 인종을 향한 인종주의적 선동과, 성적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 장애인들을 향한 공격,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광장 가득 울려 퍼지는 세월을 산다. 터져 나오는 헛구역질을 참다가, 나는 문득 클렌첸도르프가 자신의 가슴에 훈장처럼 단 핑크색 역삼각형을 떠올렸다. 게이 시각장애인 나치라는 뒤틀린 정체성을 품고 끙끙 앓으며 살다가,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에서야 그걸 훈장처럼 꺼내 보인 한 뒤틀린 사내를 떠올렸다.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클렌첸도르프를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