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웨이와 박해일은 샤도네이? 피노누아? <헤어질 결심>과 페어링한 와인 6종 시음한 SSUL

안 마셔도 취한다 크으

영화와 술

술에 관련한 영화는 많다. <어나더 라운드> (2020)는 술과 세월과 삶의 염증에 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었다. 삶에 있어서 소중한 것에 대한 선택을 이야기하는 <소공녀>(2018)에서는 월세가 올라 집을 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단골 바에서 마시는 한 잔의 글렌피딕이 주는 포근함은 포기하지 못한다.

소주가 나오지 않는 홍상수 영화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의 영화는 비슷한 듯 다채롭지만, 절대 빠지지 않는 장면은 테이블을 경계로 마주않아 풀쇼트로 잡히는 남성과 여성이 초록색 소주병을 기울이는 이미지다. 유럽쪽 영화제에서는 저 녹색병이 뭐길래 마시기만 하면 진실을 말하게 되는지 신기해했다. 부산영화제에서 혹시 한국에도 압생트가 유행하냐는 질문을 받아본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압생트는 19세기 후반부터 전 유럽을 뒤흔든 녹색의 독주다. 고흐가 마시고 귀를 잘랐다는 설이 있으며, 프랑스의 시인 랭보가 즐겨 마시다가 급기야는 현기증을 눈앞에 보이는 시를 썼다고 한다. 이는 <토탈 이크립스> (1995)에서 확인 할 수 있다.

<토탈 이크립스>에서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물을 볼 수 있다.

<헤어질 결심>의 소품

<헤어질 결심>에서 기도수는 롤렉스 데이데이트 시계를 착용하고 슈어의 값비싼 이어폰으로 말러의 교향곡 5번을 들으면서 암벽등반을 하는 캐릭터다. 그런 그가 마시는 술은 카발란이라는 비교적 매니악한 성격이 있는 위스키다. 고위도가 아닌 아열대 기후인 대만 출신의 이 술은 여느 유명한 제품과는 달라서 기도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좋은 역할을 한다.

위스키만큼이나 <헤어질 결심>을 보여주기에 용이한 술은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풍미가 다양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극도의 부드러움부터 강력한 피니시까지 가진 넓은 레인지의 차이점에서 <헤어질 결심>을 형용해줄 수 있는 특성을 품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주말에 모 극장에서 이 영화를 와인으로 해설하는 행사가 있었고, 이것은 미디어를 바라보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실시간 상영되는 가운데, 6잔의 와인이 서빙되며 감상을 이어나갔다. 4D극장에서 미각까진 정복할 수 없다는 점을 착안해서 볼 때, 아주 독특하지만 영화적인 기획이라고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포에서는 경주법주 16도를 마신다. 사실, 탕 종류의 안주에 어울리는 술은 아니다.

<헤어질 결심>과 페어링 된 와인 6종

1 안개와 바다 – 포스 그헬리. 샤도네이50%+피노 누아50%

바다가 융기하면서 생성된 토양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며 바다를 연상 시킬 수 있도록 약간은 짭짤한 맛을 품고 있다. 안개로 가득한 이포, 그리고 비교적 부드러운 부산의 바다를 설명하는데 알맞았다. 스파클링 와인의 특성상 살짝 머금은 기포가 나는야 바다 사나이! 를 외치는 해준의 재치와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안개낀 바다와의 앙상블

2 해준의 캐릭터 – 크로제 에르미타쥬 2018. 시라

그는 매사 깔끔하고 아무 초밥이나 먹지 않는 꼼꼼함을 지니고 있다. 그러는 동시에 강력계 형사로서 칼을 든 범인을 폭력으로 제압하기도 하고, 총을 쏘기도 한다. 시라 syrah 라는 품종의 특성상 선이 굵고 타격감있는 남성적인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제조사의 시라는 앞에 여성관사가 붙어 La syrah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다. 터프한 품종에 섬세한 노력이 들어갔다는 의미를 이렇게 담았다. 입체적인 성향의 해준을 설명하는데 더 없이 알맞은 것이다.

그런데 여러 해의 품종 중에서 하필 2018년 산 제품이 서비스된 사연이 흥미롭다. 기획자는 가장 성공적인 수확으로 꼽는 2017년산을 테스트를 하다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향이 내내 아름답게 유지되는, 지나치게 좋은 품종인 나머지 변화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상보다 향이 빨리 날아가 그야말로 ‘붕괴되는’ 심상을 지닌, 매우 더웠던 2018년의 재료로 만든 제품이 선정됐다.

그를 설명하는 가장 거대한 심상은 결국 ‘붕괴’ 아니겠는가

3 서래의 캐릭터 – Hey you girl with the brown shoes on . 샤도네이

브라운 슈즈라는 이름의 샤도네이 와인이 추구하는 방향은 완벽이 아니라 우연이 만들어 내는 기적에 가까운 유니크한 맛이다. 이에 일부 매니아들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한다. 이로 인하여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향을 풍기지만, 되려 와인 고유의 향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수고로운 과정은 와인을 공기와 접촉해둠으로써 점점 사라진다. 이는 마치 안개가 점점 사라져 본질을 보게되는 극중의 구성과도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엄마를 죽인 뒤 밀입국하고, 두 명의 남편을 죽였으며, 한국말도 서툴지만 매력이 가득한 서래의 매력을 보여주는 질료가 된다. 서래는 스스로도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해준이 잠들도록 도우면서 벽에 가득한 미결 사진을 떼어낸다. 그러나 예쁘게 인화된 서래의 사진을 떼어내는 그녀를 해준이 말린다. 이에 웃으며 서래는 “내가 어떻다구요?” 하며 불쑥 전진해온다.

이에 3번 와인을 마시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과일의 씨를 문것 같은 향이 입안 가득퍼졌고, 캐릭터를 미감으로 받아들이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어졌다. 그녀의 매력은 여러번으로 나뉘어 다층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가장 많이 나누어 마신 와인이기도 하다. 한 잔이라는 리미트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예, 압니다.

4 붕괴, 그리고 사랑 – Now is when I know I love you. 샤도네이

해준은 붕괴되지만 그 순간의 서래는 그렇지 않다. 서래는 해준에게 사랑을 말했지만 해준은 깨닫지 못한다. 이 안타까운 두 지점은 극 중에서도 엔딩과 더불어 가장 미어지는 어떤 정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에 어울리게끔 페어링된 와인은 과일향과 산미가 완벽하게 어울려, 밸런스가 좋은 와인이었다. 이 어긋남을 표현하는 대위적 선정에 그들이 울리는 안타까움이 더욱 간곡히 전해졌다. 실제로는 영화가 뿜는 감정이 강력해서 잔을 손에 쥔채 잘 마시지 못하기도 하는 지점이었다.

그 시작을 왜 당신만 모르느냐, 남자여.

5 서래를 찾는 해준 – &suddenly she had to go. 그르나슈 누아

해준은 위치 추적 장치로 서래의 위피를 알게됐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것은 폰만 남겨진 빈차였다. 여기서 제공된 와인은 허브와 과일의 산미가 잘 어우러진 그르나슈 품종이었다. 높은 도수에 약간은 공격적인 열매의 풍미가 서래를 얼른 찾아야 하는 해준의 정서를 대변했다. 덕분에 단숨에 마신 다음에 인물에게 조금 더 집중 할 수 있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경계는 마치 서래의 측면을 보는 것 같다

6 엔딩 : 푸오리 달 템포. 샤도네이60% + 쇼비뇽 블랑 40%

서래는 마지막에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그리고 아마도 해준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씬, 마지막 컷, 그것의 엔드 지점에서 더욱 강조되어 강한 여운으로 남는다. 제공된 와인인 푸오리 달 템포는 ‘시간을 넘어서 beyond the time’ 라는 뜻인데, 이름에 걸맞게 지금, 현재를 지나 강한 여운을 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동안 조금씩 홀짝이는 것도 좋겠지만, 엔딩과 동시에 흡입하여 길게 제공되는 피니시의 시간을 음미하는 것도 좋은 감상 방법이었다. 혀로 느낄 수 있는 원초적 맛이 지나면 기분 나쁘지 않은 텁텁함이 찾아왔다. 5분 9초간의 크레딧이 끝날 동안 향과 질감은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이윽고 영화가 던지는 마지막 여파가 완연하게 내 안에 들어왔다.

먹먹

6종의 와인들

영화를 묘사하는 다양한 방법

영화라는 미디어에 대한 인상을 남기는 방법은 글이 가장 흔하지만, 여타의 경로를 통해 감상을 전달하는 수 만가지 방법이 있다. <헤어질 결심> 내에서는 와인이 직접적 이미지로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학의 제유법을 통해서 새로운 사고가 가능하듯, 이런 방식으로 의견을 내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시야를 확장할 파격적인 기회였다.

흥미를 넘어선 자신만의 분야가 있을 것이다. 본인이 머금은 가장 나 다운 방식으로 각종 감상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넘어 스스로의 저변을 넓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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