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홀랜드 <스파이더맨> 3부작 속 음악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를 잇는 3대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솔로 무비가 지난달 개봉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하 <노 웨이 홈>)로 벌써 3부작을 맞이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 이하 <홈커밍>),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 이하 <파 프롬 홈>), <노 웨이 홈> 3부작을 영화에 사용된 음악을 중심으로 간략히 정리했다.


“Can’t You Hear Me Knocking”

The Rolling Stones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시작하는 건 피터 파커나 스파이더맨이 아닌,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빌런 에이드리언 툼스다. 뉴욕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어벤져스>의 시점 2012년, 청소회사 사장인 에이드리언은 데미지 컨트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만 현장에서 발견한 외계 물질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로 한다. 의미심장한 웃음 뒤, 롤링 스톤즈의 ‘Can’t You Hear Me Knocking’과 함께 8년 후 에이드리언과 그의 회사 상황이 펼쳐진다. 무기는 훨신 강해졌고, 규모가 커진 회사에서 벌어들이는 돈도 짭짤하고, 에이드리언은 수트를 입하고 업무를 수행한다. 롤링 스톤즈의 걸작 앨범 <Sticky Fingers>를 통해 발표된 ‘Can’t You Hear Me Knocking’은 7분이 넘는 대곡으로, 후반부에 밴드 구성에 콩가 색소폰 퍼커션이 더해진 잼 세션이 일품이다. <홈커밍>엔 평범한 구성의 초반부가 사용됐는데, 블루지한 기타 연주 위로 믹 재거의 쾌활한 보컬이 더해지는 ‘Can’t You Hear Me Knocking’의 여유로운 활력은 짧은 신에서도 에이드리언의 사업이 얼마나 승승장구하고 있는지 단박에 설득한다.


“Blitzkreig Bop”

Ramones

에이드리언의 시그니처 송이 60년대 초 데뷔해 세계를 휩쓴 롤링 스톤즈라면, 피터 파커의 노래는 76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 펑크 밴드 라몬즈다. 토니 스타크가 준 스파이더맨 수트를 입고 동네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는 시퀀스를 라몬즈의 ‘Blitzkrieg Bop’이 꾸민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활약을 하는 건 아니다. 자전거 도둑을 잡고, 거미줄을 타고 날아다니면서 시민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를 알아본 사람의 요청에 따라 공중제비를 보여주고, 할머니에게 길을 가르쳐준다. ‘Blitzkrieg Bop’은 새로운 시작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다. 기성 록 음악의 형식을 깨부순 장르인 펑크를 정립한 첫 음반으로 손꼽히는 라몬즈의 데뷔작을 여는 첫 번째 트랙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이끌어갈 젊은 히어로의 시작을 수식하기에 제격인 셈. 시작하면 정신없이 내달리는 이 곡을 대표하는 “Hey Ho, Let’s Go!” 구절이 롤링 스톤즈가 데뷔 앨범(라몬즈와 마찬가지로 앨범 제목이 그냥 밴드 이름을 그대로 붙인 것)에서 커버한 ‘Walking the Dog’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점이 또 흥미롭다. <홈커밍>의 엔딩 크레딧에 다시 ‘Blitzkrieg Bop’이 사용되고, <파 프롬 홈>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피터와 MJ가 손을 잡고 걷는 신에선 마찬가지로 <Ramones>에 수록된 ‘I Wanna Be Your Boyfriend’가 작은 소리로 깔린다.


“I Will Always Love You”

Whitney Houston

<파 프롬 홈>의 마블 스튜디오 로고 화면은 여타 MCU 작품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휘트니 휴스턴의 그 유명한 노래 ‘I Will Always Love You’가 흐른다는 것. <어벤져스: 엔드 게임>(2019) 바로 다음에 개봉한 MCU 작품이기 때문일 터. 노래와 함께 이어지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비전을 추모 영상은 폰트하며 화면 효과하며 엉성하기 짝이 없는데, 이건 피터의 학교 방송 영상이다. 추모와 유머를 한데 녹여낸 영리한 오프닝. 한국 대중에겐 “앤다~이아~”로 친숙한 명곡 ‘I Will Always Love You’는 90년대 초반 음악/영화계 최고 스타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보디가드>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돌리 파튼이 1974년 발표한 원곡을 당대 최고의 R&B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와 함께 리메이크했다. 원곡은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서만 1위를 차지했지만, 휴스턴의 최전성기에 발표된 영화 <보디가드>에 주인공 레이첼이 부르는 노래로 사용된 ‘I Will Always Love You’는 대중가요가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영광을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록을 남겼다.


“Stella stai”

Umberto Tozzi

과학역사체험 활동을 위해 베니스로 가는 비행기. 피터는 MJ(젠데이아) 옆자리에 앉으려고 머리를 쓰다가 되려 선생님과 앉아 가게 된다. 실망한 피터의 기분과 달리, 비행기가 출발하면 청량한 노래가 시작된다. 이탈리아의 유명 싱어송라이터 움베르토 토찌의 ‘Stella stai’다. 미국인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해 1980년 말 발표한 이 노래는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토찌의 명곡이다. 특히 스페인에서 리메이크된 버전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노래로 기록될 만큼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MJ와 멀리 떨어져 앉은 피터가 베니스로 향하는 내내 우왕좌왕하는 (한편 네드는 옆에 앉은 여자애와 그새 사귀게 된다) 모습 위로 넌 나의 별이라고 노래하는 아름다운 러브송이 계속 이어진다. 베니스로 향하는 여정에 이탈리아 음악을 쓴 <파 프롬 홈>은 피터 일행이 배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에 카테리나 발렌테의 ‘Bongo cha cha cha’, 광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미나의 ‘Amore di tabacco’를 사용했다.


“Back In Black”

AC/DC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의 공격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피터는 해피를 호출한다. “토니는 엉망진창이었고 후회할 일 투성이었지만 너를 선택한 것만큼은 후회하지 않았어”라는 말을 듣고 런던으로 가 다시 미스테리오와 맞서기로 하고 스파이더맨 수트를 맞춘다. 피터가 수트 구성에 열중인 가운데 해피가 틀어주는 음악은 AC/DC의 ‘Back in Black’이다. 허나 노래를 듣자마자 피터가 하는 말은 “저도 레드 제플린 좋아해요!” 자국 호주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로 성장한 하드록 밴드 AC/DC의 최고 히트곡은 그 자체로 에너제틱한 기운을 부여하지만 실은 더 깊은 의미가 있다. ‘Back in Black’은 1980년에 나온 앨범 <Back in Black>에 실렸는데, 이 앨범에는 <아이언맨 2> 예고편과 <어벤져스>에 쓰여 아이언맨의 주제가라 해도 무방한 AC/DC의 ‘Shoot to Thrill’도 수록됐다. 피터와 그의 대부와도 같은 토니 스타크의 연결고리를 고려한 선곡이다.


“Vacation”

The Go-Go’s

<파 프롬 홈>의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곡은, 고고스의 ‘Vacation’이다.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유럽에서 보낸 휴가가 모두 끝난 시점을 고려한 선곡일 것이다. 음악이 멈추고 하늘을 날던 MJ와 피터는 미스테리오가 스파이더맨의 이름이 피터 파커라는 걸 폭로하고, 크레딧은 마저 이어진다. 멤버 다섯 명이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밴드 고고스는 첫 앨범 <Beauty and the Beat>를 성공시키고 꼭 1년 만에 2집 <Vacation>을 발표했다. ‘Vacation’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할 정도로 상업적인 성공을 기대하면서 만든 앨범은 첫 싱글이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Get Up and Go’가 <리치몬드 연애 소동>(1982)에 쓰이는 등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I Zimbra”

Talking Heads

<노 웨이 홈>은 미스테리오가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폭로하는 그 장면에서 곧장 이어진다. 사람들이 MJ를 추궁하려 들자 스파이더맨은 MJ를 안고 달아난다. <파 프롬 홈>에서 봤듯이 MJ는 스파이더맨 품에 안겨 하늘을 나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흥분과 불안이 뒤섞인 이 상황을 수식하는 음악은 토킹 헤즈의 ‘I Zimbra’다. 이렇다 할 보컬 없이 주문 같은 코러스만 간간이 튀어나오는 ‘I Zimbra’는 당시 밴드 리더 데이비드 번이 빠져 있었던 아프리카 음악(훗날 번은 숨은 라틴/아프리카 음악을 발굴하는 레코드사 ‘Luaka Bop’을 운영한다)의 영향이 짙은 리듬만 무심히 이어지는 연주곡이다. 빌딩 숲과 지하철을 헤쳐 겨우 피터의 집에 도착하면 음악은 뚝 멈춘다. 토킹 헤즈의 세 번째 앨범 <Fear Music>의 1번 트랙 ‘I Zimbra’는, 다시 한번 브라이언 이노가 프로듀서를 맡은 다음 앨범 <Remain in Light>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Scraper”

Liquid Liquid

혼란은 계속 된다. 3학년 첫 날, 역시나 사람들은 학교 앞에 모여서 열렬히 그들을 지지하거나 비난한다. 앞서 소개한 ‘I Zimbra’처럼, 리퀴드 리퀴드의 ‘Scraper’ 역시 피터와 MJ가 그들에게 열광하는 군중을 통과 할 때 등장하는 셈이다. 실제로 통통 튀는 타악 비트 위로 베이스 라인이 침착하게 이어지는 아프리칸 리듬은 ‘I Zimbra’와 ‘Scaper’가 모두 공유한 요소이기도 하다. 마치 연주곡으로만 이루어진 오리지널 스코어처럼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The Magic Number”

De La Soul

힙합 트리오 델 라 소울의 ‘The Magic Number’는 이전 두 편보다 훨씬 난리법석인 <노 웨이 홈>을 마무리 하는 트랙이다. <노 웨이 홈>을 아무 정보 없이 즐기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노래를 듣지 않거나, 사용됐다는 사실을 몰라야 한다. 제목부터 결정적인 스포일러이기 때문이다. 제목의 의미 외에도 ‘The Magic Number’의 배치가 의미심장한 건, 70년대 초반에 발표된 롤링 스톤즈의 노래로 시작한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 3부작’이 70년대 중후반의 펑크, 80년대 초반의 뉴웨이브를 지나 1989년 발표된 힙합 음악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이다. 이런 흐름으로 보자면 <노 웨이 홈>을 잇는 네 번째 시리즈는 90년대 초를 대표하는 장르와 함께 시작될 것 같다. 아님 말고.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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