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기차? 제한된 장소 안에서 펼쳐지는 국내 좀비물

바야흐로 K 콘텐츠 르네상스 시대다. OTT의 발달로 한국 드라마들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그중에서도 10년 사이 눈에 띄게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은 장르가 있다. 바로 좀비물이다. 해외에서 주로 제작되었던 좀비물이 <부산행>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꾸준히 제작됐고, 이제는 한국이 좀비 콘텐츠의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2022. 신년의 포문을 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 베일을 벗었다.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 <지금 우리 학교는>과 함께 제한된 장소를 주 배경으로 두고 펼쳐지는 국내 좀비 영화, 드라마에는 어떤 작품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학교 – <지금 우리 학교는>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K 좀비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오는 1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도시 속, 고등학교에 고립된 청소년들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고군분투를 그린 드라마다. 2009년 주동근 작가의 동명의 웹툰이 원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라이징 스타 윤찬영, 박지후, 이유미를 비롯해 조이현, 로몬 등 신예 배우들이 위험에 처한 효산고등학교 학생들을 연기한다.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변해버린 학교에서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생사의 사투를 보다 생동감 있게 담아내기 위해 배우들은 촬영 3개월 전부터 액션 스쿨에 다니며 여러 훈련을 받았다고.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현재까지 국내에 많은 좀비물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좀비물은 최초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은 이성적이기보다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예상치도 못한 아이들의 행동은 기존 좀비물의 클리셰를 깨고 희망과 사랑, 우정을 찾아 나아간다. 기존 타 작품들에서 보지 못한 진화된 좀비들도 관전 포인트다. 좀비로 변하고도 논리와 사고, 악의를 가진 이들이 등장하거나 면역 반응이 있는 인물들도 등장해 또 다른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예고편에서 등장했듯 기괴하고 빠른 좀비들의 움직임은 <부산행>, <킹덤>, <반도> 등에 출연하며 좀비 특유의 움직임을 보여준 한성수 안무가와 <킹덤 시즌 2>, <방법: 재차의>에 참여했던 국중이 안무가가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무엇보다 배경이 되는 학교에 더욱 공을 들였다. 이재규 감독은 “(촬영을 위해) 4층 규모의 거대한 세트장을 지었다라며 실제 학교를 등교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실감 나는 세트장이었다. 학교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언급했다. 학교에서 펼쳐지는 액션신은 <지금 우리 학교는>만의 차별화된 장점이다. 복도, 음악실, 교무실 학교 내 익숙한 장소에서 배우들은 책상, 대걸레, 소화기 등 학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을 활용해 획기적이면서도 스릴 넘치는 액션을 소화해냈다.


KTX(기차) – <부산행>

국내 좀비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자,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 한국 영화에서는 전례 없던 대규모의 좀비들을 동원한 액션신으로 1156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공유, 마동석, 김의성 등 개성 있는 배우들의 호연과 빠르고 잔혹하게 움직이는 좀비들이 좋은 시너지를 냈지만 <부산행>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KTX’라는 공간이다. 기존 좀비 아포칼립스물의 배경이 광활한 도로 위, 또는 삶의 터전 전부였다면 <부산행>은 부산을 향해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KTX라는 공간으로 한정되어 있다. 뛰어내릴 수 없이 질주하는 기차와 폭주하는 좀비가 주는 속도감은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인물들과 대비를 이뤄내며 색다른 스릴감을 자아냈다.



<부산행> 촬영 현장


<부산행> 촬영 현장

때문에 <부산행>의 가장 큰 숙제는 어떻게 KTX 열차와 그 속도감을 생생히 구현해 내느냐였다. <부산행> 미술팀은 KTX를 수십 번 탄 끝에 직접 치수를 재고 디자인하며 KTX 내부 공간을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었다. 물론 배우들과 카메라의 위치를 고려해 실제 열차 크기보다 좀 더 크게 세트를 제작했다고. 속도감을 구현해 내기 위해선 색다른 기술이 필요했다. 이형덕 촬영감독은 실제 열차를 탄 느낌을 위해 300여 개의 거대한 LED 패널을 이어 붙여 만든 영사 장치에 사전에 촬영한 영상을 트는 ‘LED 후면 영사 기술시스템을 도입했다. 대한민국 최초다. 박정우 조명감독은 KTX의 빛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40개의 조명 채널을 설치했다. 이 모든 노력들이 어우러져 <부산행> 세트장은 실제 열차에 있는 듯한 생동감을 자아내며 관객들의 몰입을 끌어낼 수 있었다.

부산행

감독

연상호

출연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수안, 김의성, 최우식, 안소희

개봉

2016.07.20. / 2020.07.01.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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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 <#살아있다>



<#살아있다>


<#살아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주춤했던 2020년 극장가에 미약하게나마 활력을 불어넣어 준 영화 <#살아있다>. 가장 익숙하면서도 친숙한 공간인 아파트를 배경으로 살아남기 위해 생존을 도모하는 준우(유아인)와 유빈(박신혜)의 이야기를 그린 좀비 스릴러다. <#살아있다>의 공포감은 익숙한 공간과 현실이 하루아침에 뒤바뀐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안전했던 주거공간은 현관문만 열고 나서면 목숨을 위협받는 지옥으로 변해버리고, 인사를 나눴던 이웃은 호시탐탐 내 몸을 노리는 좀비가 되어버렸다. 집에서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손도끼, 식칼, 드론, 캠핑용품이 생존을 좌우하는 아이템으로 변해버린 것은 당연하다. <#살아있다>의 공포감은 이렇듯 일상적인 것에서 비롯한다.



<#살아있다>


<#살아있다>

관객들의 두려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작진들의 탁월한 선택은 바로 개방형 복도 구조의 아파트다. 길게 트인 복도는 탈출과 도망에 유리하지만, 동시에 언제 열릴지 모를 수많은 문들은 생존율을 현저히 떨어트리는 위험 요소로 둔갑해버린다. 안도감과 동시에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장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이 또 다른 영화의 주인공인 셈. 때문에 제작진들은 3개월에 걸쳐 1천 평 부지에 아파트 세트를 제작해 <#살아있다>만의 고유한 비주얼을 완성했다. 최소 15년 이상의 연식이 된 아파트라는 설정을 구현하기 위해 약 200여 곳의 아파트들을 방문해 데이터를 구체화했고, 그로 인해 타 영화와는 다른 <#살아있다>만의 현실성과 차별성을 갖추게 됐다.

#살아있다

감독

조일형

출연

유아인, 박신혜

개봉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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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 <해피니스>



tvN <해피니스>


tvN <해피니스>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생존 드라마도 있다. ‘이 시국 드라마로 불리며 작년 하반기 높은 화제성을 보인 <해피니스>. <해피니스>의 좀비는 일반 좀비와는 다르다. 피를 갈망하고 폭력성을 보이기에 좀비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광인병 걸린 환자에 더 가깝다. 광인병이란 코로나 이후 등장한 신종 전염병으로, 넥스트라는 약물로도 감염된다. 좀비와 비슷한 행동방식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성을 다시 찾는다는 점에서 일반 좀비와는 다르다. <해피니스>는 바로 이 지점을 이용해 단순히 생존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오락적으로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에 대한 고찰을 다룬다.



tvN <해피니스>

<해피니스>가 이 시국 드라마라는 별칭이 붙은 건 코호트 격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감염자 수의 증폭을 방지하기 위해 당국은 감염자가 많은 지역 중 하나로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세양숲 르시엘 아파트를 봉쇄하기에 이른다. 감염 질환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을 통째로 봉쇄하는 코호트 격리를 아파트에 시행한 셈이다. 그 안에서도 아파트 주민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단지가 아닌 한 동을 또다시 격리하기에 이른다. 감염자와 함께 고립된 아파트 주민들의 생활 범위가 줄어들면서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긴장감을 장착한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두렵게 느껴지는 건 광인병에 걸린 감염자들이 아니다. 바로 살아남고 싶은, 그저 평범한 생존자들이다.

해피니스

연출

안길호

출연

한효주, 박형식, 조우진, 박형수, 박희본, 문예원, 김영웅, 나철, 차순배, 유지연, 서현철, 정재은, 이주승, 한다솔, 강한샘, 배해선, 이준혁, 박주희, 백현진, 한준우, 홍순창, 이주실, 이지하, 정운선, 주종혁, 송지우, 백주희

방송

2021,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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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 <스위트홈>



넷플릭스 <스위트홈>

좀비는 아니지만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크리처물 한 편을 더 소개한다. <스위트홈>은 누적 조회 수 12억 뷰를 돌파한 동명의 인기 웹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어느 날 갑자기 내면의 욕망이 극대화된 인간들이 괴물로 변해가면서 아파트 그린홈에 갇히게 된 현수(송강)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어느 누가 욕망에 잠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쉽게 밖으로 나갈 수도, 원인을 알 수도 없는 이들은 괴물 그리고 내면의 욕망 그 자체인 자기 자신과 싸워야만 한다.



<스위트홈> 그린홈 내부


<스위트홈> 그린홈 내부

<스위트홈>의 장점은 괴물의 디테일과 인물들의 개성도 있지만 그보다 주된 배경이 되는 그린홈 그 자체다. 공간마다 펼쳐지는 에피소드 속에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가 변화하는 만큼 드라마에서 배경이 주는 영향이 상당하다. 이응복 PD폐쇄된 장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재밌어서 도전해 보고 싶었다라고 언급했듯이 그 배경이 되는 그린홈을 구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회당 30억의 제작비를 투자한 <스위트홈>은 외부 3500, 내부 2000평대로 그린홈 아파트를 실제로 설계해냈다. 디테일 역시 남달랐다고. 편상욱을 연기한 배우 이진욱은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도 완벽히 세팅되어 있었다. 카메라가 어딜 비춰도 빈 곳이 없을 정도였다며 세트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궁 – <킹덤>, <창궐>



넷플릭스 <킹덤>


넷플릭스 <킹덤>

제한된 장소는 아니지만 이색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한 좀비물도 있다. 조선시대 궁을 배경으로 한 시리즈 <킹덤>과 영화 <창궐>이다. 두 작품 모두 백성들의 좀비화를 두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궁중의 정치 암투극을 더해 새로운 긴장감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킹덤><창궐>이 성취해낸 결과는 사뭇 다르다. <싸인>, <시그널> 김은희 작가와 <터널> 김성훈 감독이 의기투합해 만든 한국의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은 압도적인 좀비의 속도감을 내세우며 <부산행>에 이어 한국형 빠른 좀비를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뿐만아니라 4K의 고화질 영상,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궁을 담은 미장센, 사운드처럼 연출 방면에서 평단과 대중들의 큰 호평을 받았다. 각기 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의 조화와 개연성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창궐>은 좀비를 주 소재로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떨어지는 긴장감과 개연성의 부족 등으로 혹평을 받으며 159만 관객을 동원, 흥행에 실패했다.

<창궐>
창궐

감독

김성훈

출연

현빈, 장동건

개봉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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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문선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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