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인생의 의무!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떠먹여주는, 세로토닌 뿜뿜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

이 버전 포스터가 제일 맘에 든다.

‘기쁨의 ‘강도’가 아닌 ‘빈도’를 늘리고, ‘소유’를 좇기보다 ‘존재’를 추구하며, 존재한다는 것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가능하단 걸 알고, 가족, 친구,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간다면, 당신은 꽤 행복할 것이다.’

수많은 과학적 연구가 이렇게도 분명히, 꾸준히 행복의 비밀을 발설하는데, 우리는 왜 여전히 충분히 행복하지 못할까. 행복해진다는 것은 비결이 없다는 점에서 다이어트와 비슷하다. ‘소식하고 움직이세요’가 정답이라는 것쯤 모두 알지만,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자가 극소수라는 슬픈 현실과 궤를 같이 한다. 십 킬로그램 감량이라는 큰 목표를 세우고 오늘 저녁도 간헐적 단식을 단행하지만, 자정 가까운 시간, 치킨의 유혹에 굴복할 때, 우리 뇌는 엄청난 양의 도파민을 쏟아내며 행복감을 선사한다. 이 황홀경을 잊지 못한 뇌는 우리로 하여금 치킨 뜯는 행위를 반복하게 하고, 결국 다이어트는 또 실패다. 거대 목표는 저릿한 도파민의 공격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이내 무력감이 밀려온다.

전략을 바꿔야 한다. 너무 작고 하찮아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목표를 세워야 할 때다.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해 도파민보다는 약하지만 장기적인 행복감을 제공하는 세로토닌을 공략해 보자. 십 킬로그램 감량이 아닌 하루 열 보만 더 걸어 보자는 다짐으로, 한 편의 영화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영화를 보고 행복에 관한 장면 하나, 대사 한 줄 가슴에 새기는 일,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작은 목표다. 더군다나 여기, 우리에게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그야말로 ‘떠먹여주는’ 영화가 있으니 세로토닌이 절로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꾸뻬씨의 행복여행>

“행복은 인생의 의무”

TMI: ‘꾸뻬’라는 이름은 책을 번역한 한국의 출판사에서 프랑스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 만들어낸 가공의 이름이다.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 를로르가 쓴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주인공 헥터(사이먼 페그)가 여행 중 맞닥뜨리는 다양한 인물을 비추며 행복을 고찰한다.

헥터는 런던에 사는 정신과 의사다. 멋진 여자친구 클라라(로저먼드 파이크)와 안정된 삶, 거기에 천성에 꼭 맞는 직업까지, 그의 삶은 얼핏 보면 완벽하다. 하지만 매일 같이 불행하다 외치는 환자들의 사연을 듣다 보니 헥터는 자신의 삶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에 이른다.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할까? ‘행복’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헥터는 연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작정 길을 떠난다. 그리고 발길 닿는 대로, 중국, 티베트, 아프리카, 미국을 횡단하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에드워드(스텔란 스카스가드)와 헥터(사이먼 페그)

헥터는 먼저 아시아로 향한다. 영화는 돈이 행복의 조건이라 말하는 상하이의 은행가(스텔란 스카스가드)를 통해 행복은 결코 돈에 있지 않다는 다소 진부한 진실을 말하기도 하고, 인생의 거센 풍랑을 겪었지만 순간을 살고 사소한 모든 것에 감사하며 여전히 행복하다 말하는 티베트 노승을 비추며 불행을 피하는 것이 행복을 여는 황금 열쇠는 아님을 보여준다.

디에고(장 르노)(좌)

영화는 이후 아프리카로 향하는 핵터를 쫓는다. 그는 이곳에서 조우한 아기를 키우는 아주머니, 거물 마약상 디에고, 그리고 의료 봉사 활동 중인 친구를 통해 국가, 가족, 직업의 관점에서 행복의 조건을 곱씹는다. 특히 도움이 절실한 환자들을 치료하며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친구 마이클의 모습은 행복은 행복 자체를 추구할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행복은 소명에 순수하게 응답하는 동안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감정인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행복에 대한 새로운 배움을 얻고 있던 헥터는 뜻밖에 강도단에 납치되는 우여곡절도 겪는다. 우연히 건넨 선의가 그의 목숨을 살리고 감금당해 죽을 뻔한 지하실을 벗어난 그가 느낀 감정은 ‘온전히 살아 있음’이었다. 헥터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행복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교훈을 ‘행복 수첩’에 기록하며 다음 행선지로 떠난다.

후덜덜한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아그네스 역의 토니 콜렛

헥터의 마지막 여행지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그는 마음 한편에 깊이 간직해온 12년 전의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단란한 가정을 꾸린 아그네스(토니 콜렛)에게 헥터는 묻는다. ‘우리가 안 헤어졌다면’ 어땠을까? 아그네스는 어이없다는 듯 ‘현실 속에서 살아’라며 일갈한다. 그녀의 반응에 헥터는 자신이 미래가 아닌 과거의 행복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생각과 의미 없는 추측하기를 멈춘다.

코먼 역의 크리스토퍼 플러머

우연히 노벨상 후보이자 뇌과학자인 코먼(크리스토퍼 플러머) 교수의 강언을 듣게 된 아그네스와 헥터는 감정의 객관적인 데이터를 추출하는 실험에 피실험자로 참여하게 된다. 실험 도중, 클라라의 전화를 받게 된 헥터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클라라이며,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클라라와 함께하는 순간임을 깨닫는다. 그동안 눌려있던 헥터의 감정들이 폭발하면서 그는 곧장 클라라가 있는 런던으로 달려간다. 긴 여정을 통해 완성한 행복에 관한 교훈을 적은 한 권의 노트와 함께.

일상을 행복의 소실이라, 권태라 믿었던 헥터는 ‘행복 여행’을 통해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다시 찾을 기회를 얻는다. 물리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그저 행복이 땅을 깊이 파 캐내고 발견해야 하는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달성해야 할 ‘인생에 주어진 의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할 때 영화가 지는 부담은 더 크다. 이미 아는 이야기를 직조해 새로운 내러티브를 짜야 하고, 독자들이 책을 보며 구축한 세계를 뛰어넘는 매력적인 영화적 이미지를 창조해 내야 한다. 영화는 영국, 중국, 티베트,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미국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따라가며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들을 쉴 새 없이 보여준다. 대리 여행의 시각적 즐거움 위에 헥터가 여행에서 만난 수많은 얼굴들, 그들의 서사 그리고 행복에 대한 배움들이 폭우처럼 쏟아진다. 자막과 애니메이션 효과를 적절히 이용해 이 모든게 과하지 않고 조화롭다.

로저먼드 파이크 착한 ver.

지금 보니 배우 조합도 대단하다. <미션임파서블>로 친숙한, 코미디 배우로 오랜 경력을 쌓아온 사이먼 페그는 권태에 빠진 정신과 의사를 찰떡같이 소화했고, <퍼펙트 케어>, <나를 찾아줘> 등에서 완벽하고 멋진 여성을 연기해온 로저먼드 파이크는 이 영화를 통해 전작에서 연기한 인물들의 ‘착한 버전’으로 분했다. <레옹>의 장 르노와 <나이브스 아웃> <유전>의 토니 콜렛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궁금한 분들을 위해, 글의 마지막은 책 <꾸뻬씨의 행복여행>에서 헥터가 행복의 비밀을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된 23개의 배움들을 열거하며 끝을 맺겠다. 필자는 배움 19번을 포스트잇에 눌러써 모니터에 붙였다.

1.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12.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15.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6. 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17. 행복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

18.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19.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21.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22.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 할 줄 안다

23.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문화기획자 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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