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허락 없이 음식을 먹어도 처벌이 안 된다고?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10살 소녀 치히로와 그 부모님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길을 잃고 숲속에서 수상한 터널을 발견하면서 신기한 세계로 들어가고 치히로는 온갖 모험을 겪게 되는데, 치히로와 부모님이 무사히 그 터널을 다시 나오기까지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입니다. 치히로 가족이 겪게 되는 모험 중 현실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을 법적으로 한 번 살펴볼게요.


1. 음식점 주인의 허락 없이 음식을 먹으면 처벌될까요

치히로 가족은 터널을 지나 공터로 변한 유원지를 발견합니다. 치히로의 부모님은 유원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치히로의 아빠가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난다면서 계속 안으로 들어가더니 음식이 잔뜩 쌓여있는 식당을 발견해요. 치히로의 아빠는 식당 주인을 두세 번 불러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선 먹고 보자면서 닭다리를 하나 집어 들고 먹습니다. 치히로는 주인의 허락 없이 먹으면 안 된다고 부모님을 몇 번 말리지만 오히려 치히로의 아빠는 돈도 있고 카드도 있으니까 괜찮다면서 음식을 두세 접시 더 가지고 와서 두 사람은 마구 먹어요. 즉, 치히로의 부모님은 식당 주인의 허락도 없이 음식을 먹었는데, 형사적으로 범죄가 되는지 하나씩 살펴볼게요.

치히로의 부모님이 주인의 허락 없이 음식점에 있는 음식을 먹었지만 무전취식은 아닙니다. 무전취식은 음식값을 낼 의사가 없으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말하므로, 음식값 지불의사와 지불능력이 있는지 유무가 차이점이에요. 음식값 지불의사와 능력도 없으면서 돈을 낼 것처럼 음식점 주인을 기망하여 음식을 주문하고 이에 속은 주인이 음식을 제공하자 먹은 것이 무전취식인데 일반적으로 사기죄에 해당합니다. 음식값을 낼 것처럼 주인을 속여서 이에 속은 주인이 음식을 제공한 것이므로 기망행위와 이에 속은 피기망자(주인)의 처분행위(음식 제공)가 존재하고 기망과 처분행위 사이에는 인과관계도 인정되기 때문에 사기죄로 처벌됩니다.

그러나 치히로의 부모님은 음식값 지불의사와 능력이 있습니다. 치히로의 아빠는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돈을 내려고 주인을 두세 번 불렀고, 치히로가 주인의 허락 없이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말리자 돈과 카드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음식값을 낼 의사와 능력이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치히로의 부모님이 비록 주인의 허락 없이 음식을 먹었지만 사기죄에는 해당하지 않아요.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죄명은 절도죄인데, 절도죄는 타인 소유의 재물을 절취하면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음식이 재물에 해당하는지 궁금합니다. 최근에 재미있는 판례가 나왔는데, 아내와 식사를 하던 중 언쟁을 하게 된 남편이 부인 앞에 놓인 반찬과 찌개 등에 침을 뱉은 사건이에요.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는데 재물손괴죄가 인정되어 남편한테 벌금 50만 원이 선고되고 확정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중요 쟁점은 음식이 재물이라는 전제하에 음식에 침을 뱉는 행위가 재물의 효용을 해하는 것인지 여부였는데 음식에 타인의 침이 섞인 것을 의식한 이상 음식의 효용이 손상되었다고 보아 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음식이 재물에 해당하는 것은 분명하고, 치히로의 부모님이 먹은 음식은 음식점 주인의 소유물이므로 결과적으로 타인 소유의 재물을 절취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절도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은 일응 충족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러나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타인 소유의 재물을 절취한다는 객관적 구성요건 외에 자신이 절도죄를 저지른다는 고의도 있어야 합니다. 즉, 주관적 구성요건(고의)도 충족되어야 절도죄가 성립해요. 치히로의 부모님이 허락 없이 먹은 음식은 일반적인 타인 소유의 음식과 성질이 다른데, 음식점에 팔려고 내놓은 음식은 음식값만 내면 가져가는 것이 허락된 음식이죠. 치히로의 부모님은 음식값을 지불할 의사가 있었고 주인이 불러도 나오지 않자 단지 사전에 허락만 구하지 못한 것이에요. 그러므로 치히로의 부모님한테는 타인 소유의 재물을 절취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고,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음식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인식처럼 미필적 고의조차도 없었던 것으로 보여요. 결국 치히로의 부모님이 음식점의 음식을 주인의 허락 없이 먹은 행동은 절도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에는 일응 해당하지만 주관적 구성요건인 고의가 없어서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 성립만 문제됩니다. 그러나 절도죄는 과실절도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치히로의 부모님의 행동은 무죄가 됩니다 [한편 치히로의 부모님이 먹은 음식점의 음식은 인간이 아닌 신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지만 치히로의 부모님은 음식점에 진열된 음식이 특정인(신들)한테만 제공되는 음식이라는 점을 몰랐고 그러한 안내문도 없었기 때문에 특정인에게 제공될 음식이었다는 사정(즉, 돈을 지불해도 살 수 없는 음식이라는 사실)은 치히로 부모님에 대해 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영향이 없습니다.]


2. 훔친 물건을 피해자한테 돌려주면 처벌받지 않나요

하쿠는 유바바의 지시를 받고 유바바의 언니 제니바의 도장을 훔쳐서 달아나다가 제니바의 마법에 의해 큰 상처를 입습니다. 제니바의 도장을 훔쳐서 유바바가 운영하는 온천탕으로 도망 온 하쿠가 크게 다친 것을 보고 치히로는 제니바의 집을 찾아가 제니바의 도장을 돌려주는데, 피해자한테 도장을 돌려주면 처벌받지 않을까요. 절도죄는 타인의 재물을 탈취자의 점유로 이전하면 기수가 됩니다. 구체적으로 절도죄 기수시기를 훔친 재물의 종류에 따라 살펴보면, 쉽게 운반할 수 없는 재물, 예를 들어 큰 기계, 가구 등은 피해자의 지배범위를 벗어날 때 기수가 되고, 쉽게 운반할 수 있는 재물, 예를 들어 옷, 노트북, 휴대폰 등은 손에 잡거나 주머니, 가방 등에 넣을 때 기수가 됩니다. 하쿠가 훔친 제니바의 도장은 쉽게 운반할 수 있는 재물이므로 하쿠가 제니바의 집에 있는 도장을 손으로 집었을 때 절도죄는 기수가 됐어요. 따라서 이미 성립한 절도죄는 사후에 재물을 피해자에게 반환해도 범죄 성립에 전혀 영향이 없고, 심지어 범인도 아닌 제3자가 범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재물을 반환하는 것은 범인에 대한 유리한 양형 사유로도 참작되기 어렵습니다. 치히로가 하쿠와 상의없이 제니바의 도장을 제니바한테 돌려주었다고 해서 하쿠가 저지른 절도죄에는 영향이 없는 것이죠.


글 | 고봉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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