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 타는 여자들>, 1970년대 평화시장 노동교실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진솔한 다큐멘터리

지난해 12월, <태일이>라는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스스로 생을 끊었던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22살의 어린 재단사였던 전태일은 노동 운동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더 어린 미싱 보조, ‘시다’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눈을 뜨고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바로 그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평화시장에는 청계피복노동조합이 생겼다. 소년들은 저녁 8시에만 퇴근하게 해달라며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태일이>가 그림으로 재현한 평화시장의 옛 모습은, <미싱타는 여자들>에서 오래된 사진으로 대체된다. 4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사진들. 사진의 힘은 대단하다. 카메라의 셔터가 찰칵하고 열리고 닫히는 그 짧은 순간의 시간을 영원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진 속의 10대 소녀들은 지금 중년의 여성, 어머니가 됐다.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등 <미싱타는 여자들>의 출연진은 과거 자신의 사진을 앞에 두고 그 시절을 회상한다. 시간의 무게 앞에 출연진들은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미싱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사진을 기반으로 <미싱타는 여자들>의 포스터 속 그림이 만들어졌다. 노석미 작가의 손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의 젊은 날의 초상이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삶에 대한 세심한 시선과 독특한 색채로 사랑받는 노석미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여성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노동조합의 탄생과 노조에서 운영한 새마을 노동교실의 추억을 회상하는 그들의 대화를 포착했다. 또한 그들이 카메라 앞에 서게 된 사연도 함께 소개한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많은 부분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특히 1977년 9월 9일의 사건을 주목한다. 전태일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가 구속된 뒤 청계천의 노동자들은 노동교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할복을 하거나 손목을 긋는 사람도 있었다. 이곳에 여성 노동자들도 참여했다. 노동교실은 그들의 학교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여러 명의 증언을 통해 관객은 사건의 한복판으로 안내 받는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명의 증언을 이어서 편집하는 형식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같은 방송 프로그램처럼 관객의 몰입감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은 노동사의 단순 기술이 아니다. 야만의 시대에 희생당한 사건의 고발이기도 하다. 농성 이후 경찰은 처음 약속과 달리 그들을 구속시켰다. 경찰은 그들을 간첩으로 몰았다. 9월 9일이 북한의 정부 수립일이라는 게 근거였다. 북한에서 ‘아버지 수령’이라는 말을 쓰듯이 노동자들이 이소선 여사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간첩의 이유가 됐다. 수사 과정에서의 폭력과 가혹 행위, 차별도 존재했다. 심지어 나이가 어려 소년원에 가야 하는 임미경 씨는 경찰이 허위로 기재한 주민등록번호로 가지고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영화의 후반부, <미싱타는 여자들>의 제작진은 치유의 시간을 준비했다. 영화의 홍보 문구이기도 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청춘이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온 편지’라는 말이 인상깊게 작동하는 부분이다. 소녀들이었던 여성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을 뛰어 넘어 다시 그들이 일하던 공간을 찾아간다. 또 그곳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거친다. 당시 주고 받았던 편지를 다시 읽는 시퀀스에서는 영화 속 인물도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도 눈물을 참기 어렵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소녀 미싱사들의 특별한 성장담과 그들의 빛나는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동시에 국가 권력의 폭력을 이겨낸 그 시절의 상처를 꺼내 치유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진, 편지, 많은 이들의 인터뷰 등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내 친구이자, 엄마이자, 다른 시대를 살았던 또래 여성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만들어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미싱타는 여자들>를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로 추천했다. 봉준호 감독은 “전태일 말고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 그녀들의 기억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정성스레 축복해 주는 영화적 손길. 빛과 어둠 속에서 눈물도 웃음도 하나로 뒤섞이는 라스트에 이르면, 누구나 다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왜 꼭 극장에서 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이라는 관람평을 남겼다. 봉준호 감독의 관람평처럼 <미싱타는 여자들>은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 노동자들의 사연을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기록한 영화다.

<미싱타는 여자들>의 첫 장면. 세 명의 출연진이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초록의 언덕에 오른다. 그곳에 미싱이 높여 있다.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것이 다큐멘터리 장르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이 첫 장면은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보면, 생각이 달라질 확률이 높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봉준호 감독의 평가처럼 영화의 전반부에서 그녀들의 기억을 불러내고, 후반부에서 그 기억을 축복해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작진과 연출진이 보여준 진솔한 태도는 <미싱타는 여자들>이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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