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4년, 동물이 멸종했다! 다큐와 픽션이 완벽히 결합한 하이브리드 역작 <에브리띵 윌 체인지>

사진 제공=안다미로

2054년의 동물이 멸종된 상실의 도시.

벤, 피니, 체리는 우연히 오래된 음반에서 기이한 생명체 사진을 발견한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인공지능도 알지 못하는 이 생명의 이름은 기린.

세 친구는 가까운 과거에 이 생명체와 인간이 공존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고

지구의 옛 모습을 찾기 위한 환상적인 계획을 세우는데…

2054년의 사람들은 기린을 모른다는 설정이 우습다고? 지금부터 불과 30여 년 후, 그러니까 고작 한 세대가 지나는 사이에 모든 동물이 멸종한다고? 환경운동가들이 그토록 환경 위기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고, 국제기구에서도 국가의 탄소 배출량을 조절하는 규약을 제정하는데 설마…. 너무 과한 설정이라고 느꼈다면, 미안하지만 그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말하는 영화가 있다. 11월 9일 개봉한 <에브리띵 윌 체인지>(감독 마튼 페지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2022년과 가까운 과거, 미래의 언론 기사 화면들로 시작한다. ‘100만 종 멸종 위기, UN 보고서 경고’(2019), ‘핏빛 하늘과 오존 두통’(2027), ‘마지막 남은 오랑우탄 숨져’(2032) 등의 헤드라인이 스크린 위로 무덤덤하게 지나간다. 그저 우리가 일상에서, 스마트폰 뉴스 화면을 스크롤하면서 의미 없이 넘기는 하나의 기사 타이틀처럼.

<에브리띵 윌 체인지> 스틸컷. 사진 제공=안다미로

‘공장을 돌려라! 대량 천연가스 매장지, 북극에서 발견’(2032) 기사 타이틀 뒤로 영화의 화자인 늙은 여인의 담담한 목소리가 깔린다. “불꽃이 손짓해, 남은 게 많으니 이리 오라고. 그렇게 어리석은 불을 따라가, 깊고 깊은 수렁에 빠져 다시는 헤어 나오지 못했네”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준 대가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혔던 프로메테우스는, 훗날 인간이 그 불로 자연을 파괴할 것을 정녕 알지 못했던 것일까.

벤(노아 자베드라), 피니(폴 G. 레이먼드), 체리(제사민 블리스 벨). 세 친구는 삭막한 잿빛 미래 도시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딥페이크 기술의 발전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시대. 영상 정보는 넘쳐나지만, 왜곡된 언론 지형으로 뉴스의 진위를 가릴 수 없다. 그렇다고 아나키스트가 될 수도 없는 법. 셋은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담배를 태우며 일탈을 꿈꾼다.

<에브리띵 윌 체인지> 스틸컷. 사진 제공=안다미로

<에브리띵 윌 체인지>의 세 주인공에게는 세 개의 열쇠가 주어진다. 첫 번째 열쇠는 보물찾기처럼 가끔 들르는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영화이다. 벤과 피니는 목이 긴 그 동물의 이름이 ‘기린’이며 불과 30년 전까지도 인류와 공존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겨우 30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도 기린을 기억하는 인간이 없다는 것. 기린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 친구처럼 20대는 당연하다고 해도, 그 이전에 태어났던 기성세대들도 기린을 기억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젊은이들의 호기심에 어른이 대답할 차례. 지긋이 나이 든 골동품가게 주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서랍에서 무언갈 꺼내 준다. 지도다. 그렇다. 두 번째 열쇠. 마치 진짜 보물찾기에 나서듯 들뜬 그들에게 주인장은 오래됐지만,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한 내연기관 자동차까지 흔쾌히 제공한다. 마법과도 같은 순간, 주저하는 체리를 뒤로 하고 벤과 피니는 도시 밖으로 향한다. 영화에서 본 동물은 실존했을까? 왜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까? 그곳에 도착하면 이 모든 의문에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아니, 이 보물 지도를 따라가면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 성이 나올까? 미지로의 여행 속에서 만나는 황량하고 그로테스크한 풍경들. 회색과 붉은빛이 강렬하게 대비되면서 둘의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도착한 성은 과학자들이 사는 곳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열쇠다. 두 친구는 이곳에서 방부처리 되어 유리병 속에 들어 있는 수백 수천 마리의 생물표본을 눈으로 확인하고 충격을 받는다. 이렇게나 다양한 동물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 인류와 공존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두 친구는, 생태학자, 생물학자, 환경운동가들을 만나 수많은 동물이 멸종한 이유와 더불어 그토록 빨리 잊힌 이유에 대해 듣는다.

“당시 우리의 사회는 눈앞의 이득으로만 움직이는 사회였어요. 가령 이런 것이었죠. 코끼리를 죽이자 상아를 얻게 됐고, 재규어를 죽이자 가죽을 얻게 됐죠. 결국엔 손쓸 수도 없이 멸종 위기종이 급증했죠. 하나의 종이 우리를 떠나면 언론에서도 공공장소에서도 사라졌고, 존재조차 가르치지 않았어요. 너무 빠른 속도로 동물들이 사라져서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꼈던 거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렇게 빨리 잊힌 게 신기하기도 해요. 아니면, 잊고 싶었던 걸까요?”

<에브리띵 윌 체인지> 스틸컷. 사진 제공=안다미로

마튼 페지엘 감독은 여기에 흥미로운 개념을 설정해 덧붙였다. ‘기준점 이동’이라는 개념인데, 새로운 세대는 자기가 경험한 생태 환경을 기준으로 삼기에 과거에 소멸된 생물종을 알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이 증후군에 빠지게 되면 악화하는 환경과 현상에 익숙해지고, 결국은 끓는 물 속의 개구리 같은 상황에 놓인다는 지적이다.

영화에서 한 과학자는 이렇게 분석한다. “인간은 즉각적인 위협에는 강한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빨리 공격하면 자동으로 피하잖아요. 그런데 아주 천천히 공격하면 아무 반응을 안 하죠. 멸종도 다양성 손실도 이렇게 진행된 거예요. 아주 느릿느릿하게요. 한 종이 멸종해도 신문에 나지 않았죠. 그냥 사라져버린 거예요.”

로드무비 대표 감독으로 불렸던 빔 벤더스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일까. 마튼 페지엘 감독 역시 <에브리띵 윌 체인지>에서 로드무비 형식을 십분 활용한다. 세 친구가 그들만의 아지트를 벗어나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기괴하지만 묘하게 아름다움을 간직한 풍광을 건너 과학자들이 사는 방주에 도착하는 여정이 바로 그것. 아, 빔 벤더스 감독도 영화에 출연하니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에브리띵 윌 체인지> 스틸컷. 사진 제공=안다미로

나레이터의 목소리로 읽어주는 동화 형식에서 세 친구를 보여주며 픽션으로 전환했던 영화는 과학자들이 등장하는 지점부터 한 번 더 형식을 바꾼다. 다큐멘터리로. 그런데 2020년의 지구가 처한 환경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등장해 조목조목 설명하는 이 다큐멘터리 부분이 대단히 매끄럽게 전환한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 쉽게 검색할 수 있어 익숙한 환경 뉴스들과 생태 다큐멘터리들을 적절히 교차 편집한 점, 그리고 2020년 우리의 선택으로 근미래에 지구 환경이 급격하게 위기를 맞는다는 뉴스로 연결한 점, 결국은 30여 년 만에 모든 동물이 멸종해 버리는 과정을 생태학적, 환경학적 관점에서 전문가의 진단으로 영화의 적재적소에서 적확하게 짚어낸다는 점에서 관객을 더 몰입시킨다. 영화 도중에 형식 전환이 성공한 케이스다.

영화는 단순히 성장 패러다임에 빠진 인류를 탓하는 목소리만 내지는 않는다. ‘인간은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양철학에서 가장 눈여겨 볼 부분 중 하나는 ‘인간과 자연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라고 봤다는 점이다. 기독교적인 뿌리에서도 인간을 자연과 분리시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했다. 기독교뿐이랴, 세속 철학의 데카르트 역시 자연에서 오직 인간만이 인지 능력을 부여받은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과연 인간만이 특별할까? 원자를 이해할 수 있으면서 빅뱅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 자연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감독이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강조하는 메시지다.

<에브리띵 윌 체인지> 스틸컷. 사진 제공=안다미로

불과 언어를 사용하면서 자연을 벗어나 진화하기 시작하며 다른 동물 종과 차별화한 존재가 된 인간. 호모 사피엔스가 특별한 이유는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에 있다고 감독은 설파한다. 고고학적 증거로 인간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보면, 이미 5~6만년 전부터 인간은 동물을 멸종시켜왔다. 매머드, 아메리카사자, 아이리쉬엘크와 같은 거대한 동물들은 자연에 적응했고, 한 때 인간과 공존했지만, 결국 인간에 의해 멸종했다. 농경을 시작한 1만 년 전부터는 더욱 동물의 종에 대한 인간의 개입이 심화했다. 그리고 2022년, 지금 우리는? 지구를 위한 CPR은 가능할까?

영화 말미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각한 세 친구는 다시 뭉친다. 젊은이답게 에너지를 폭발시켜 세운 세상을 바꿀 대담한 계획은 영화에서 확인하시길. 다큐멘터리와 픽션, 그리고 동화가 결합한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영화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결말이 극장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윤상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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